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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 잉카는 왜 극빈층에 '머릿니 세금'을 걷었나

■세금의 흑역사

마이클 킨·조엘 슬렘로드 지음, 세종서적 펴냄

인류역사 함께한 국가 통치 수단 '세금'

고대 이집트서 현재 다국적 기업까지

황당 징세부터 과세 공정성 사례 담아

불평등 해소 위한 미래 세금제도 전망

"법인세, 기업 아닌 부유층 주주에 과세

유전자별로 세금 차별화 사회 올 수도"

세금 납부 영수증이 새겨진 고대 수메르 점토판./사진제공=세종서적




세금 관련 내용이 적힌 고대 이집트 로제타석./사진제공=세종서적


1794년 5월8일은 세무 관리 역사상 최악의 날 가운데 하나다. ‘현대 화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프랑스 화학자 앙투안 로랑 드 라부아지에는 “불쌍한 사람들의 피를 빨아먹는” 세리(稅吏)였다는 이유로 단두대에서 처형됐다. 세금은 문명 발전의 기본 동력이자 국가의 가장 강력한 통치 행위이기도 하다. 기원전 2500년 세금 납부 영수증이 수메르의 점토판 기록으로 남아 있을 정도로 인류 역사와 함께 왔다.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의 비밀을 해독하는 열쇠가 되었던 로제타석도 세금 관련 내용이다.

그러나 ‘역사학의 아버지’인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가 “세금은 약탈”이라고 말할 정도로 일반적인 인식이 좋지 않다. 사회계약설의 토머스 홉스는 “인간은 세금 부담 자체를 불평등 못지 않게 고통스러워한다”고 봤다. 이 때문에 프랑스의 중상주의 정치가인 장 바티스트 콜베르는 “조세 기술은 소리는 가장 적게 내면서 가능한 한 가장 많은 거위의 깃털을 뽑는 것과 같다”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미국 독립운동의 시발점이 됐던 1733년 ‘보스턴 차 사건’을 묘사한 그림./사진제공=세종서적


최근 번역 출간된 ‘세금의 흑역사’(원제목 ‘폭동, 악당, 그리고 세수’)는 국가와 시민 간의 영원한 도전과 응전이었던 세금의 역사를 들려주면서 로봇세, 유전자 과세, 암호화폐 과세 등 세금의 미래도 예측한다. 저자는 국제통화기금(IMF)의 공공재정국 부국장인 마이클 킨과 미국 미시간대 경제학과 교수인 조엘 슬렘로드다. 슬렘로드는 ‘상속세율이 떨어질 것 같으면 사망 신고를 늦춘다’는 사실을 밝혀내 기발한 연구에 주는 이그 노벨상을 공동 수상했다.



책은 이집트 파라오 시대부터 지금의 다국적 기업까지 정부의 징세 노력과 기술, 세금을 내지 않으려는 기발한 발상, 과세의 공정성, 각국 세금 정책의 성공과 실패 사례, 나쁜 세금과 좋은 세금의 차이 등을 담았다. 다양하고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통해 세금을 둘러싼 역사속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가령 “세금 반란의 궁극적 목표는 단지 세금 제도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권력을 재분배하는 것이다. 저항함으로써 국가의 가장 기본인 강제력 행사의 정당성과 실질적 가능성을 동시에 부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는 통찰이 대표적이다.

저자들은 우리 선조들이 세금을 설계할 때 창의적이었고 오늘날 우리 고민과 같은 문제로 고민했다고 말한다. 지금 잣대로는 황당한 조세도 공평 과세, 부의 재분배, 최적 과세, 조세 회피 대처 등 원칙을 세우려는 과정에서 나왔다. 가령 고대 잉카는 극빈층에는 사람 몸에 기생하는 이를 세금으로 대신 내도록 했다. 이는 누구든지 어느 정도 세금을 내야 한다는 원칙에서 비롯됐다.

1745년 영국 정부가 유리 제품의 무게에 따라 세금을 부과하자 생산된 속이 텅 빈 목손잡이가 달린 유리잔./사진제공=세종서적




또 영국은 1697~1851년 집에 달린 창문의 개수에 따라 세금을 부담하도록 했다. 이 같은 창문세를 피하기 위해 폭이 극도로 좁은 기형적인 건물이 생겨났지만 당시로서는 부의 수준에 따라 세금을 부과하고 쉽게 검증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나름대로 타당한 아이디어였다. 러시아 표트로 대제는 전통 귀족 특권층의 후진적인 턱수염에 대해 세금을 부과했다. 수염세는 세수 증대가 아니라 근대화 개혁이 목적이었다. 이처럼 세금을 정책 목표로 활용하려는 시도는 오늘날 기후위기 때문에 도입한 탄소세와 비슷하다는 것이 저자의 시각이다.

러시아 표트르 대제가 수염을 기른 귀족들에게 사도록 한 수염 토큰./사진제공=세종서적


책에 따르면 민주주의 발전의 역사는 누구에게 어떤 세금을 걷을 것인가라는 고민과 함께 진화해왔다. 인류 문명의 초기 세금은 이웃 나라를 정복해 약탈한 곡물과 귀중품이 대부분이었다. 나아가 패전국 사람들을 노예로 부리고 매해 금전이나 공물을 바치게 했다. 아테네의 경우 전쟁 등과 같은 국가적 행사 때 귀족들이 자발적으로 헌납하기도 했지만 일반인에게 세금을 걷는 것은 일상적인 행위가 아니었다. 또 중세 시대 왕실은 전쟁처럼 큰 돈이 필요하면 소득세를 걷기도 했지만 채권 발행을 선호했다.

20세기 초반 영국 여성조세저항연맹의 ‘대표 없이 과세 없다’는 슬로건./사진제공=세종서적


서구에서 근대적인 세금 구조는 18세기에나 출현했다. 영국 왕당파와 의회파의 내전, 미국 독립전쟁, 프랑스 혁명 등으로 재정이 거덜나자 토지에 대한 세금 할당제, 관세 수입, 소비세 등이 속속 도입되고 세금을 관리하는 관료제가 확립된 것이다. 조세 저항이 강한 소득세와 법인세가 도입된 것도 제1차 세계대전의 여파다.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걷어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전쟁 특수를 누린 기업으로부터 세금을 징수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저자가 ‘가장 천재적인 세금’으로 일컫는 부가가치세는 1960년대 전세계를 강타하며 각국 조세제도의 중심으로 자리잡았다.

보이지 않는 세금도 있다. 국채가 대표적이다. 정부 부채는 미래 세대가 갚아야 한다는 점에서 과세를 연기하는 것에 불과하다. 또 정부는 중앙은행을 통해 돈을 찍어내고 인플레이션을 일으켜 우회적으로 세금을 걷어가고 있다. 군대 징집과 같은 노역 세금, 과도한 벌금, 주파수 경매와 같은 공공재 판매 등도 일종의 세금이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에서 초인플레이션 발생으로 지폐가 휴지조각으로 전락하자 어린이들이 마르크화를 장난감처럼 갖고 놀고 있다./사진제공=세종서적


그렇다면 미래의 세금 제도는 어떤 모습일까. 우선 저자들은 불평등 해소가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문제로 여겨지면서 증세, 특히 부유층의 세금을 더 늘려야 한다는 압박이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또 기업이나 부유층이 세금이 적은 나라로 이동하는 사태를 막기 위해 전세계 세금 규칙을 제정하고 집행하는 ‘세계세무기구’가 하룻밤에 생겨날 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디지털화도 세금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인이다. 저자들은 먼 이야기지만 블록체인 기술로 모든 거래 과정이 밝혀지면 부가세가 필요 없어질 것으로 내다본다. 법인세 역시 소득에 대한 과세를 기업이 아닌 주주들에게 직접 부과할 수 있다고 본다. 나아가 인간 게놈 지식이 쌓이면 유전자별로 세금이 차별화된 사회가 올 수도 있다고 예상한다. 2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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