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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귀하다는 생각, 공존의 가장 큰 적이죠"

■ '존재의 다양성' 그림책 내놓은 이성표 작가

어린 소년·애벌레의 시선으로

'작은 존재도 소중' 메시지 전달

인간사회서도 차별·억압 많아

그림이 가진 '위로의 힘' 믿어

아픈 영혼에 따뜻한 감정 선물

이성표 작가가 서울 수유동 자택에서 자신의 작품에 넣을 호랑이 그림을 그리고 있다.




“세상의 모든 생명체는 그 자체로 귀한 존재입니다. 아무리 사소해 보여도, 아무리 몸집이 작아도 그 나름대로 지니는 존재의 가치가 있습니다. 존재 그 자체를 인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혹은 인간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게임 업체 엔씨소프트의 비영리 재단 NC문화재단이 최근 출간한 세 번째 그림책 ‘난 크고 넌 작다’의 이성표(64) 작가는 21일 서울 수유동 자택에서 “나 혼자 귀하다고 생각하는 오만이야말로 다양성과 공존의 가장 큰 적”이라며 이같이 강조했다. 이 그림책은 어린 소년과 애벌레가 각자의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알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홍익대 시각디자인과 겸직교수를 지낸 이 작가는 1982년 잡지 ‘마당’에 실린 그림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이후 2005년에는 그림책 ‘호랑이’로 한국출판문화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 작가가 사는 곳은 여름이면 숲의 초록 내음이 가득하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계곡 바로 건너편이다. 이곳은 숲과 계곡 안으로 조금 더 들어가 약간만 자세히 보면 전혀 다른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애벌레들의 세상이다. 누구는 징그럽다고 끔찍해하고 없애기 바쁘지만 그는 이들을 보면서 혐오의 대상이 아니라 친구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이번 그림책도 존재의 다양성과 공존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 그린 작품이다. 다르다는 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세상을 경험하고 살아가는 방식의 차이일 뿐이다. 그림책에서 소년은 애벌레보다 빨리 뛸 수 있지만 날지는 못한다. 반면 애벌레는 당장은 꾸물거리며 기어 다니지만 나중에는 나비가 돼 하늘을 난다. 서로의 삶이 그만큼 다른 것이다. 그는 “사는 곳이 다르고 생활이 다르지만 소년과 애벌레는 그 자체로 귀한 존재”라며 “마치 인간만이 최고인 양 행세하면서 저지른 많은 실수와 편견들을 이들의 입을 통해 전달하고 싶었다”고 작품 의도를 설명했다.



이성표 작가


존재의 다양성과 공존은 자연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 사회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이 작가의 시선에서 한국 사회는 공존하기 힘든 곳이다.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그렇고 강자가 약자를 억누르는 분위기가 그렇다. 실제로 캐나다에 살고 있는 자녀들에게 물어보면 소아 당뇨를 앓는 아이들을 병자 취급하거나 장애인이 취업하는 데 문제가 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그는 “우리 사회가 이전보다 많이 좋아지기는 했지만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부족한 것은 사실”이라며 “다수의 힘을 가진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소수를 용납하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지적했다.

이 작가가 그림책을 그리는 것은 그림이 갖는 위로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자극적이고 부정적인 것이 판치는 세상에서 자신만이라도 조금은 따뜻하고 다정한 감정을 전해야 하겠다는 일종의 사명감이다. “그림을 봤을 때 평온하고 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를 통해 아픈 영혼을 어루만지고 인간을 보다 선한 방향으로 끌어들였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그림책은 7세 이하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만든 것이지만 그가 하고 싶은 것은 따로 있다. 모든 연령대의 독자들이 읽을 수 있는 동화, 특히 20~30대 어른들을 위한 동화가 바로 그것이다. 쉬운 일은 아니다. 어린이를 위한 책은 비유가 많이 필요하지 않고 그림도 단순하면 된다. 성인을 위한 그림책은 다르다. 은유적인 표현이 많이 들어가고 그림도 세밀할 필요가 있다. 이 작가는 “앞으로 나올 그림책들은 0세부터 100세까지를 대상으로 하는 책들일 것”이라며 “이를 통해 아직 세상은 따뜻하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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