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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 성(城) 안의 근로자, 성(城) 밖의 근로자

<김정곤 사회부장>

노동시장은 이미 계급화…1차시장의 공고한 벽

정규직·비정규직 소득 3배, 근속연수 6배 격차

플랫폼근로자, 원·하청 등 노동시장 갈등 주원인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불공정·불평등의 다른 이름

이중구조 개선, 노동의 미래 담보할 시대적 소명

김정곤 사회부장




“민주노총에는 투쟁과 교섭이라는 두 바퀴가 있지만 투쟁의 바퀴는 크고 교섭의 바퀴는 작다. 그러면 제자리에서 뱅뱅 돈다. 대화와 투쟁이 같이 굴러가려면 크기가 같아야 한다. 굴러가야 할 방향은 민주노총이 잘 먹고 잘사는 게 아니라 ‘모든 노동자를 위한 민주노총’이어야 한다. 사업장·산업별 교섭뿐 아니라 사회 전체를 위한 대화가 같이 진행돼야 한다. 단위 사업장이 갖게 되는 기업 복지, 복리후생, 고용 안정이 공장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사용자 단체도 바뀌어야 한다. 대기업도 내부 노조만 관리하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김명환 전 민주노총 위원장이 2020년 8월 서울경제와 단독 인터뷰에서 밝힌 얘기다. 김 전 위원장은 급변하는 노동환경에서 민주노총뿐만 아니라 한국노총 등 양대 노총의 전향적인 노선 수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당시 인터뷰에 자세히 담지는 못했지만 그는 특히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에 대한 우려가 컸다. 단위 사업장의 문제가 공장(회사)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기성 노조 내부의 문제로만 머물러 있다는 게 그의 지적이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이 노동계의 화두로 떠올랐다. 윤석열 정부도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을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란 노동시장이 임금, 일자리 안정성 등 근로 조건에서 질적 차이가 있는 두 개의 시장으로 나뉘어 있는 현상이다. 1차 노동시장에는 대기업 정규직, 공무원과 공공기관 종사자가 자리 잡고 있다. 2차 노동시장에는 중소기업과 영세기업, 비정규직 근로자가 있다. 국내 근로자의 90%가 2차 노동시장에서 일한다.

문제는 1차 노동시장의 벽이 갈수록 공고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1차 시장에 있는 근로자들은 그들만의 성(城)을 쌓고 문을 굳게 닫아걸었다. 2차 시장에 있는 근로자들은 성안으로 들어갈 방법이 없다. 더욱이 2차 시장에 있는 근로자들의 숫자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급속한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온라인 플랫폼 기반의 새로운 고용 형태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근로자 숫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기업·정규직·노조원과 중소기업·비정규직·비노조원의 임금 격차는 2.8배, 평균 근속 연수는 6배에 달한다. 중소기업에서 대기업, 비정규직에서 정규직 등 기업 간, 고용 형태 간 이동 사다리도 사실상 끊겨 있다. 하청 업체 근로자가 원청, 중소기업 근로자가 대기업으로 옮겨가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다. 한국 노동시장은 노동시장 이중구조라는 덫에 갇혀 있다.

노동시장은 이미 계급화돼 있다. 고임금을 받는 대기업 정규직이 주축이 된 소수 노조가 노동시장 이슈를 독점한다. 노동시장에서 보호받아야 할 다수의 중소기업 근로자, 비정규직·프리랜서가 소외되는 이유다. 노동 학계에서도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노사 갈등과 노노 갈등을 유발하고 결국 사회적 양극화로 이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불공정과 불평등의 또 다른 이름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독일의 ‘하르츠 개혁’을 언급하며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등 노동 개혁을 지시했다. 하지만 노동시장 개혁은 결코 쉽지 않은 과제다. 구호만 외친다고 가능하지 않다. 고르디우스의 매듭(풀리지 않는 난제)을 한칼에 끊어낸 알렉산드로스대왕처럼 리더의 결단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기성 노조와 사용자들의 저항도 만만치 않다. 이해관계자들을 설득하고 또 설득해야 한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청년 실업, 여성 고용 부진, 저출산율, 자영업의 과도한 비중 등 노동시장의 모든 문제와 연결돼 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은 현세대는 물론 미래 세대를 위해 반드시 추진해야 하는 시대적 소명이다. 당장 시작하지 않으면 노동의 미래도 담보할 수 없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깨져야 노동의 미래도 있다. 성 밖의 근로자는 성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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