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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 폭스뉴스의 세련된 포퓰리즘 연출, 노동자를 트럼프 편에 세웠다

■폭스 포퓰리즘

리스 펙 지음, 회화나무 펴냄

트럼프를 대선 승리로 이끈건

가짜 뉴스 아닌 보수 브랜드화

대중 언어·공감·스타일 통해

백인 노동계급 지지자로 흡수

정치 양극화·사회갈등 조장 등

영향력 커진 황색언론에 경종





‘자신의 사회적 계급에 불리한 정당이나 후보에 투표하는 현상’인 ‘계급배반투표’가 얼마 전 화두가 된 바 있었다.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선거에 출마한 이재명 후보는 “고학력·고소득자 등 부자들은 민주당 지지자가 더 많고, 저학력·저소득층이 국민의힘 지지자가 많다”고 말하며 논란을 일으켰다.

발화의 진의가 무엇이었던 간에, 또 민주당이 과연 국민의힘에 비해 노동계급에게 이익이 되는 정당인가는 논외로 하더라도 계급배반투표가 실존한다는 것은 일정 부분 사실이다. 이번 대선에서도 월소득 200만 원 이하 근로자의 60% 이상이 윤석열 후보에 투표했다는 조사가 있었다. 생산직의 과반수 역시 윤 후보를 찍었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의 ‘브라만 좌파’의 한국판인 ‘강남 좌파’도 이런 맥락이다.

언뜻 보면 비합리적인 계급배반투표는 왜 발생하는 것일까. 이재명 후보는 위 발언에 이어 “안타까운 일이다. 언론 환경 때문이다”라는 말을 하며 언론에게 그 원인을 돌렸다.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는 “사람들은 자기 이익에 따라 투표하지 않는다”며 “정체성과 가치관에 따라 투표하는 것”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이에 비춰 보면 정체성과 가치관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는 언론의 영향력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지지자들이 8월 9일(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에 있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마러라고 저택 밖에서 연방수사국(FBI)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FBI는 전날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백악관 기밀문서를 유출한 혐의로 마러라고 저택을 압수 수색했다. EPA연합뉴스.


이런 현상은 당연히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 모두가 힐러리 클린턴이 승리할 것이라 예상했던 그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는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승리를 거뒀다. 그리고 트럼프의 승리를 만들어낸 것은 보수를 지지하는 노동 계급이었다.

신간 ‘폭스 포퓰리즘’은 트럼프의 성공과 지지층을 만들어낸 것이 보수 언론 폭스뉴스의 브랜드화임을 강조한다. 뉴욕시립대학교 미디어문화학과 부교수인 저자는 폭스가 “대중언어와 스타일을 통해 보수를 노동계급의 브랜드로 만들어 냈다”고 폭로한다.



폭스의 힘은 진보 진영이 비판하는 가짜 뉴스나 극단적 사상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폭스의 힘은 오히려 세련된 문화적 전략에서 나온다. 폭스는 엘리트 진보주의로 인해 사장됐던 계급 논의를 보수 진영에서 부활시켰다. 진짜 노동계급의 지지자는 월가의 화이트칼라 진보와 민주당이 아닌, 공화당과 트럼프라는 점을 연출해 냈다. ‘공동의 적’을 만들어냈다는 점도 중요하다. 백인 노동계급이 차별받는 계급이 되며 다른 소수자 집단인 이민자·흑인·성소수자 등은 주요 관심사에서 멀어지게 됐다.

“폭스는 자유시장주의적 싱크탱크에서 생산된 이론적 지식을 프로그램의 번역을 거쳐 접근성 있고 대중적인 언어로 전환할 능력이 있었다”는 지적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폭스는 자신의 당파성과 정치성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폭스는 자신들이 ‘공정과 균형’의 원칙이 있는 언론으로 보이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노동계급과 같은 문화를 향유한다는 점을 은연 중에 드러냈다. 이런 전략 속에서 대중들은 자연스럽게 “우리들은 진보에게 억압받았다”는 서사를 주입받았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8월 9일(현지시간) 뉴욕 트럼프 타워에 도착하고 있다. 연방수사국(FBI)은 전날 백악관 기밀문서 불법 반출 혐의 등으로 팜비치에 있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마러라고 저택을 압수 수색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 압수수색에 대해 사법 체계를 무기로 활용하는 직권 남용이라고 반발했다. 로이터연합뉴스


결론 부분, 저자는 폭스의 성공 방식을 진보 언론 역시 받아들여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진보 언론이 내세웠던 지식인 페르소나와 중도주의가 노동자들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데 실패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변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진보 진영과 진보 언론은 포퓰리즘적 연출 방식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철학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에 도전할 때, 대중적이고 민주적인 요소를 빼앗아 오는 것이 중요하다”는 주장과 궤를 같이 한다.

그러나 보수·진보 언론 모두가 포퓰리즘적 연출에만 몰두한다면, 이는 오히려 정치적 양극화와 갈등만을 심화시킬 우려가 있다. 지지층은 결국 보수·진보의 양 극단에 쏠릴 것이 자명하다. 극우·극좌 포퓰리즘을 표방하는 황색 언론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는 시점에서 언론의 책임은 더욱 막중해지고 있다. 진실과 사실이 흐릿해지는 시대, 언론의 나아가야 할 길은 어때야 할까. 2만 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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