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우크라이나 4개 주와 병합 조약을 체결한 지 사흘 만에 이들 주에서 주요 방어선을 잇따라 내주고 있다. 체면을 구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결국 핵을 사용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는 러시아의 핵실험이 임박했다는 첩보를 입수해 회원국들에 경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3일(현지 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우크라이나군은 남부 헤르손주 전선을 깊이 파고들며 러시아군 보급로 완전 차단을 목전에 뒀다. 러시아 국방부의 이고리 코나셴코프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헤르손주 졸로타발카와 올렉산드리우카 방면에서 우크라이나군이 수적으로 우세한 전차를 앞세워 우리 방어선을 깊이 파고들었다”고 밝혔다. 러시아군이 자국의 후퇴를 인정한 것은 이례적이다. 로이터는 “전쟁 발발 이후 남부 전선에서 우크라이나군이 거둔 가장 큰 성과”라고 평가했다.
우크라이나군은 다른 러시아 점령지에서도 약진하고 있다. 병합 조약 하루 만인 이달 1일 루한스크주의 요충지인 리만을 탈환했고 최근에는 크렘리나에서 20㎞ 거리인 토르스케 마을까지 점령한 것으로 전해졌다. 우크라이나 군사 전문가 올레 즈다노우는 “(크렘리나는) 루한스크 전역을 통제하기 위한 핵심 지역”이라며 “이 도시 뒤에 러시아 방어선이 더는 없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로이터는 “러시아가 병합을 선언한 4개 주(도네츠크·루한스크·자포리자·헤르손) 중 헤르손과 루한스크 등 2개 주에서 상당한 진전을 이루고 있다”고 전했다.
승기를 잡고 기세를 올리는 우크라이나와 달리 러시아는 병합한 4개 주의 국경선을 어떻게 설정해야 할지를 놓고도 혼란을 겪고 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도네츠크·루한스크의 경우 2014년 친러 분리주의 세력과 우크라이나 정부 간 분쟁 발발 전 행정 경계선을 국경으로 봐야 한다”며 “그러나 자포리자와 헤르손은 우크라이나와의 국경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러시아가 수세에 몰릴수록 다급해진 푸틴 대통령이 결국 핵 카드를 꺼낼 것이라는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영국 더타임스는 러시아가 핵실험을 할 수 있다는 첩보를 나토가 입수해 회원국들과 공유했다고 이날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나토는 회원국 등에 러시아가 ‘지구 종말의 무기’로 불리는 핵 어뢰 ‘포세이돈’을 실험할 계획을 하고 있다는 첩보를 보냈다. 신문은 포세이돈을 실은 러시아 잠수함 ‘K 329 벨고로드’가 북극해를 향해 출항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이탈리아 신문 라레푸블리카도 러시아 북극해 카라해 지역에서 실험이 임박했다고 보도했다.
지상에서의 움직임도 포착됐다. 더타임스는 러시아 국방부의 핵 장비 전담 부서 열차가 우크라이나 전방으로 이동하는 모습이 지난 주말 사이 러시아 중부 지역에서 포착됐다고 전했다. 친러시아 성향의 텔레그램 채널 ‘리바르’는 대형 화물열차가 신형 병력수송차와 장비 등을 싣고 이동하는 영상을 인터넷에 올렸다. 폴란드의 국방 전문가 콘라트 무시카에 따르면 이 열차는 러시아 국방부에서 핵 장비와 유지, 관리, 수송, 부대 배치를 담당하는 제12총국과 연계돼 있다. 더타임스는 한 국방 부문 고위 소식통을 인용해 “우크라이나 남부와 접한 흑해에서 러시아가 핵 활동을 할 수도 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도발 수위를 ‘무력 시위’ 정도로 조절할 것으로 보고 있지만 ‘전술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관측했다.
하지만 러시아의 핵 무기 사용은 러시아에도 위험한 선택지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크렘린궁(대통령실) 대변인도 4일 “서방 정치인과 국가 원수들이 언론을 이용해 핵 관련 ‘허언’ 기술을 연습하고 있다. 우리는 이에 관여할 듯이 없다"며 핵 도발 강행 의사가 없다는 뜻을 일단 밝혔다. 뉴욕타임스(NYT)는 “푸틴이 핵무기를 사용하면 러시아는 국제적 ‘왕따’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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