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각종 청탁의 대가로 10억원 대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를 받는 더불어민주당 이정근 전 사무부총장의 숨겨진 휴대전화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부총장이 정치권 유력인사들과의 친분을 내세워 여러 이권에 관여한 정황이 드러난 만큼, 휴대전화 속 내용에 따라 사건이 ‘게이트’로 확대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검찰은 구속기한에 맞춰 이 전 부총장을 재판에 넘긴 뒤 압수물 분석을 토대로 민주당 인사들의 개입 여부를 파악할 전망이다.
폭우로 분실한 휴대전화, 모친 자택서 발견
19일 서울경제의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김영철 부장검사)는 최근 이 전 부총장 모친의 자택을 압수수색해 그가 쓰던 휴대전화를 확보했다. 앞서 검찰은 8월 18일 이 전 부총장의 자택 등을 압수수색해 휴대전화를 확보했지만, 이는 의혹이 불거진 후 교체한 기기로 전해졌다. 이 전 부총장 측은 서울에 폭우가 쏟아질 당시 휴대전화를 분실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법조계 안팎에선 이 전 부총장의 휴대전화가 ‘판도라의 상자’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전 부총장은 2019년 12월부터 올해 1월까지 공공기관 인사 청탁 및 마스크 사업 인허가 등에 대한 청탁의 대가로 브로커 박모씨로부터 수십 회에 걸쳐 9억5000만원을 수수한 혐의(특가법상 알선수재·변호사법 위반)를 받는다. 또 같은 인물로부터 2020년 2~4월 선거 비용 으로 3억3000만원을 수수한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도 있다.
금품제공자인 박씨는 그 동안 이 전 부총장이 문재인 정부 당시 민주당 유력인사들과 친분을 과시하며 지속적으로 돈을 요구했다고 주장해왔다. 문 정부 청와대 비서실장을 비롯해 다수의 민주당 전현직 의원·고위급 공무원들의 이름이 거론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마스크 사업 인허가와 관련해 이 전 부총장이 류영진 전 식약처장과 접촉하기도 했다.
검찰은 이 전 부총장의 휴대전화가 정치권 인사들이 연루된 ‘로비 의혹’의 실체를 밝힐 핵심 단서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이 전 부총장이 자신의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고 있는 가운데 검찰의 수사는 계좌추적과 박씨의 진술 및 휴대전화 등에 의존해야만 했다. 하지만 이 전 부총장의 휴대전화를 확보한 만큼,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이 전 부총장의 휴대전화에 대한 디지털 포렌식 결과를 토대로 전화통화, 문자메시지 등 그와 실제로 접촉한 인물들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이에 검찰은 휴대전화 분석을 마치는 대로 관련자들에 대한 소환 조사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19일 구속기한 전 기소…로비 의혹은 계속 수사
검찰은 일단 이날 구속기간이 만료되는 이 전 부총장을 구속기소한다는 방침이다. 검찰이 입수한 계좌거래 내역에 이 전 부총장이 박씨 측으로부터 금품을 전달받은 내용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만큼, 혐의 입증에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다. 서울경제가 확보한 박씨의 과거 수행비서 이름으로 된 차명계좌 거래 내역을 보면, 이 전 부총장에 대한 현금 전달은 2020년 3~7월까지 8차례에 걸쳐 이뤄졌다. 돈은 박씨의 아내(아내 오빠)→수행비서→이 전 부총장(이 전 부총장 동생) 순으로 흘러갔다. 박씨의 아내가 수행비서에게 돈을 입금하면 짧게는 2분, 길어도 몇 시간 이내로 이 전 부총장에게 곧바로 입금됐다. 이렇게 전달된 돈만 2억7500만원에 달한다.
이 전 부총장이 아닌 인물들과의 의심쩍은 거래내역도 포착됐다. 해당 계좌에서는 한국남부발전 간부들로부터 2020년 5월과 7월 각각 3500만원씩 입금된 내역이 기재됐다. 검찰은 해당 돈의 성격이 청탁을 주고받은 흔적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또 현금과 수표 등 한 번에 수 천 만원에서 수억원의 뭉칫돈이 빠져나간 흔적도 나와 이 돈들의 사용처도 검찰의 수사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박씨 역시 청탁 의혹에 깊숙이 연관돼 있지만, 형법상 알선수재의 공여자 처벌 조항이 없어 검찰은 박씨를 일단 이 전 부총장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건넨 혐의로만 기소할 전망이다.
/이진석 기자 lj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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