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9일 이태원 참사가 벌어진 직후 분초를 다투듯 사력을 다해 달려든 기관은 소방이 유일했다. 경찰의 경우 현장 관리자는 물론 수뇌부가 참사가 벌어진 한참 뒤에야 사건을 인지해 적절한 대응을 못해 아쉬움을 샀고 지자체와 행정안전부는 참사 희생자들의 시신이 수습되고 나서야 사후 행정에서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최성범 용산소방서장이 경찰청 특수수사본부에 입건되자 ‘무리한 수사’라는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특수본은 최 서장이 참사 발생 전후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한 정황이 포착됐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서울경제가 단독 입수한 이태원 참사 당시 소방 무전 기록을 보면 최 서장은 경찰력 추가 배치, 소방 인력 추가 투입, 현장 관리 등을 나 홀로 지시하며 소방 임무를 넘어선 ‘컨트롤타워’ 역할을 다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수본 등 수사 당국이 설명한 최 서장 입건 사유는 사고 발생 이전인 10월 29일 오후 8시와 9시께 경찰이 요청한 두 건의 공동 대응에 대해 구급 인력을 현장에 투입하지 않았다는 점 등이다. 하지만 소방 당국 확인 결과 경찰의 공동 대응 요청 건은 신고자가 구급차가 필요 없다고 말한 것으로 확인됐다. 종로소방서 구급차가 용산소방서 구급차보다 현장에 먼저 도착했다는 일각의 문제 제기 역시 용산소방서와는 관계가 없다.이태원 참사 이전 벌어진 환자 처리에 용산구급차가 투입됐기 때문에 소방방재센터가 종로소방서의 구급차 투입을 지시했기 때문이다.
본지가 확보한 소방 무전 기록에서는 최 서장이 직접 지휘권을 선언한 10월 29일 오후 11시 5분부터 쉴 새 없이 현장을 지휘하는 등 직무유기나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볼 만한 행적은 드러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경찰 수뇌부가 사고 발생을 인지하지 못한 시각에도 소방 인력과 장비, 경찰 추가 배치 등을 요청하는 등 소방과 경찰을 넘나드는 전방위적 현장 지휘에 나섰다.
최 서장은 지휘권을 선언한 후 첫 무전에서 “해밀톤호텔 뒤편으로 추가 구급 요청”을 지시했다. 호텔 뒤쪽부터 쓰러진 사람들을 빼내야 앞쪽에 깔린 부상자들을 구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의 지시가 있기 전까지는 상황을 모르는 구급 인력이 앞쪽에 깔린 부상자를 구조하기 위해 참사가 벌어진 골목 앞쪽으로만 몰려드는 상황이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최 서장은 경찰 투입을 요청하라는 지시를 수도 없이 반복했다. 그는 오후 11시 16분께 “해밀톤호텔 뒤편으로 경찰력이 많이 필요하니까 경찰력 추가 비발 요청하도록”이라고 강조했다. 경찰기동대 투입도 당부했다. 그는 오후 11시 23분께 “서울경찰청에 연락해서 특수기동대 빨리 비발시킬 수 있도록 해, 해밀톤호텔 뒤편이 통제가 안 된다”고 지시했다.
더 나아가 그는 사고 현장이 수습되고 심폐소생술이 벌어지는 사이 환자 수송을 위한 교통 통제를 지시하는 등 경찰 지휘부의 역할까지 대신했다. 그는 오후 11시 31분께 “지금 구급차가 대로변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어. 경찰력을 빨리 추가 배치하도록 해라”고 말했다.
희생자들이 수습되는 순간 그는 언론 브리핑에도 나서야 했다. 이 때문에 현장 지휘 중에서도 본부에 불려가거나 카메라 앞에도 서야했다.
경찰은 적절한 조치 등이 이행됐는지 확인한다는 입장이지만 이태원 참사 직후 언론 보도 등을 통해 현장을 누비던 최 서장을 지켜본 국민들은 최 서장의 입건에 대해 의구심을 보내고 있다.
소방 내부에서도 최 서장의 입건에 대해 반발 기류가 거세다. 김길중 소방노조 사무처장은 “용산서장님은 하위직 직원들에게 굉장히 잘하는 사람으로 유명한데 안 좋은 일을 당해서 참 안타깝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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