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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에너지 수급 위기 '원료비 연동제'로 극복해야

최봉석 국민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국민생활 안정이라는 모호한 기준에

원료비 연동제 비상시 제역할 못해

가스公 미수금 5조·한전 30조 적자

신속한 시장가격 회복 절실히 필요





올해 하반기로 접어들면서 글로벌 천연가스 시장 상황이 심상치 않다. 유럽의 천연가스 가격은 지난해 1월과 비교해 12배 이상 급등했고 동북아 액화천연가스(LNG) 현물 가격도 9배 넘게 올랐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까지 LNG 확보 경쟁에 가세하면서 천연가스 가격 급등세는 당분간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분위기 속에 국내 언론들도 연일 천연가스 수급을 우려하는 기사들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우려와 달리 장기 계약 및 현물 구매 등으로 재고 수준이 꾸준히 높아지면서 1일 기준 재고율은 86.9%로 증가했다. 한국가스공사 역시 겨울철 천연가스 수급 상황을 우려해 만반의 대비를 하고 있다는 의미다.

국제 LNG 시장의 수요와 공급은 일반 시장의 메커니즘과는 구조적으로 매우 다르다. 수요 측면에서는 수요량의 변동 폭이 크고 예측이 쉽지 않은 반면 공급 측면에서는 액화 플랜트 프로젝트 투자에 막대한 시간과 재원이 소요되기 때문에 장기 계약 중심으로 미리 결정된다. 전 세계 LNG 공급자 역시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에 한정돼 전통적으로 공급자가 시장 우위에 있었다.

셰일가스 혁명 이후 미국 중심의 비전통 가스 공급자 등장은 LNG 시장 판도를 한동안 소비자 중심으로 바꿔 놓았다. 2019년에는 최종 투자 결정이 이뤄진 신규 프로젝트 규모가 약 7000만 톤에 달했고 2020년 이후 코로나 확산으로 수요가 줄면서 LNG 현물시장 상황은 매우 여유가 있었다. 당시 일부 언론에서는 가스공사가 장기 계약 위주로 공급 계약을 체결해 현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LNG를 도입하는 정부와 공사의 비효율적 의사 결정을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모든 상황이 뒤바뀌었다. 전 세계가 탄소 중립을 향해 출발하던 그즈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면서 지구촌은 에너지 안보 위기에 휩싸였다. 이제는 언론에서도 에너지 안보와 LNG 장기 물량 확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문제는 유럽이 에너지 비상사태에 대비한 대대적인 절약 캠페인과 요금 인상으로 소비가 줄고 있는 것과 달리 우리나라는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우리 소비자들은 왜 이러한 상황에 반응하지 않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도시가스 원료비 연동제가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원료비 연동제는 특정 분기에 물가가 집중 상승하는 것을 방지하고 요금 상승 요인을 연중 분산해 반영하는 제도다.

하지만 비상시에만 유보하도록 돼 있는 원료비 연동제는 ‘국민 생활 안정’이라는 포괄적이고 모호한 이유로 수시로 시행이 유보돼 정작 지금과 같은 비상시에는 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정부의 공공요금 동결 조치로 원료비 연동제 시행은 유보됐고 가스공사 미수금은 4조 6000억 원까지 누적됐다.

이후 미수금을 회수하는 데만 6년이 걸렸다. 하지만 2020년 7월 요금이 잠시 인하된 후 잦은 요금 동결은 지속됐다. 잇따른 원료비 연동제 유보로 6월 말 기준 가스공사의 미수금은 5조 1000억 원이 쌓여 있다.

올해 한국전력 적자가 최대 30조 원을 내다보는 시점에서 에너지 시장의 ‘원칙 없는 요금 동결’로 시장 가격의 효율적 자원 배분 기능은 잃어버린 지 오래고 그 대가에 대한 청구서는 계속 날아오고 있다.

대한민국은 그동안 위기에 강한 나라의 면모를 보여왔다. 이번에도 올겨울 에너지 수급 위기를 잘 극복할 수 있도록 신속한 시장 가격 기능의 회복과 에너지 절감노력에 다 같이 힘을 모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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