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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잠수함에 美핵탄두 싣는다면'…문턱 밟은 한국형 핵공유'

[민병권의 군사이야기 증보판]

소련 위협에 1950년대 美핵우산 시험대 서

유럽서 핵무장 기류일자 美 핵공유로 달래

핵잠수함·폭격기 다국적병사 탑승 검토키도

한국도 북핵 위협에 美 핵우산 논란 불거져

한미, 확장억제 공동기획, 정보공유 등 추진

향후 '한국판 핵기획그룹→핵공유'추진 기대

EDSCG 보강, 한미 핵방어위원회 신설 필요

美LA급 잠수함 리스해 韓해군 운용 검토할만

한미혼합군 편성…美 폭격기 등 탑승 고려해야

미 해군의 로스엔젤레스급 핵추진잠수함 'USS 키웨스'호가 지난 2022년 10월 31일 부산에 입항하고 있다. 향후 중장기적으로 한미간 핵공유가 현실화한다면 미 핵추진 잠수함을 우리 군이 리스해 운용하면서 핵탄두를 탑재하는 방안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사진제공=미 해군




'러시아에 맞설 창과 방패를 달라.’

1957년 유럽연합군 최고사령관(CACEUR) 로리스 노스타드(Lauris Norstad) 장군은 미국에 이 같은 취지의 요청을 했다. 그가 언급한 창은 소련을 타격할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방패는 재래식 전력이었다. 당시 소련이 유럽전역과 미국 본토까지 타격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술을 과시하자 공포에 질린 유럽의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들을 대표해 노스타드 장군이 미국의 핵우산에 불안감을 표출한 것이다.

이미 당시에는 미국의 전술핵이 유럽에 배치돼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투발할 수 있는 미사일은 사거리 수백km수준의 단거리탄도미사일(SRBM)이나 그보다 사거리가 낮은 야포, 적의 대공방어에 취약한 전략폭격기 뿐이었다. 더구나 유럽에 배치된 핵무기의 관리, 발사권한은 미국이 독점하고 있었다.

옛 소련시절 개발됐던 소유즈(R-7) 우주로켓의 최신 버전이 발사되는 모습. 개발된지 60여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개량형 로켓이 최고의 가성비로 운용될 정도로 세계적 베스트 셀러 로켓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소련이 1957년 R-7로켓에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탑재해 쏘아올릴 당시에, 서방권은 소련이 해당 로켓에 핵탄두를 탑재해 공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사진출처=나사


불만을 달래기 위해 미국은 1957년 12월 파리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에서 나토와의 첫 핵무기 협정을 제안해 수용됐다. 미국 핵무기를 나토의 유럽 동맹국에 배치하되 실질적인 관리 및 통제는 미국이 하다가 전시에 나토 연합군의 최고사령관이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핵탄두를 인계(release) 받아 사용하도록 하기 위한 협정이었다. 미국과 유럽간 ‘나토식 핵공유’의 원형이 되는 협정으로도 볼 수 있다. 해당 협정 체결 당시엔 구체적으로 핵 공유의 책임을 어떻게 분담할지 등이 구체적으로 기술되지 않았다. 약 10년 뒤에 이 같은 이슈를 협의할 상설기구인 핵기획그룹(NPG)이 나토 산하에 출범하면서 실질적으로 핵공유 체계가 기본적인 골격을 갖추게 됐다.

미국 핵공유를 공유해 배치한 유럽국가 현황. 2019년 기준으로 150개가량의 'B61' 핵폭탄이 유럽에 배치돼 있다.


이 같은 나토식 핵공유 및 NPG 창설 과정은 한층 고조된 북핵 위협 앞에 놓인 한미동맹에도 적지 않은 시사점을 준다. 현재 한국 내에서도 미국의 핵우산이 북핵 위협에 대해 실효성이 있는지 의구심을 갖는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응해 한미는 이달초 양국간 안보협의회의(SCM)을 통해 확장억제 전략·작전을 공동기획하고, 미국 전술핵 정보 공유 및 운용 참여 등을 구체화하는 방안 등을 논의했다. 사실상 한국형 NPG 설립의 초기 단계로 보인다. 해당 작업이 순항시 중장기적으로는 한미 핵공유도 기대할 수 있게 된다. 한국형 핵공유의 문턱을 밟은 셈이다.

앞으로의 과제는 한미가 조 바이든 정부의 임기 2년 내에 한국형 핵공유 실현을 위한 기반 체계를 확실히 마련하는 일이다.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군)의 핵공유 방식을 벤치마킹하되 우리의 지정학적 특성, 군사력 등을 감안해 발전시켜야 한다.

이번 ‘군사이야기(증보판)’은 앞서 본지가 지난 12일자 조간으로 게재했던 ‘시동 걸린 한국식 핵공유’기사를 보강해 나토의 NPG 창설 당시 상황을 되짚어 시사점을 찾고, 한국형 핵공유의 방향을 제시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한미판 NPG 시스템을 구축하고, 이를 어떤 전략자산을 통해 어떻게 운용해야 할지를 살펴본다.

이탈리아 아비아노에 위치한 나토 공군기지에서 미 공군 요원들이 'B 61계열'의 핵폭탄을 F16전투기에 탑재하는 훈련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미 공군




◆나토 전술핵 배치의 시발점

나토의 핵공유를 논의하기에 앞서 먼저 되짚어 봐야 할 것은 유럽에 미국의 전술핵이 배치된 과정이다. 1947년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의미 심장한 보고서를 작성했다. 1951년이면 소련 및 그 동맹국들이 재래식 전력에서 서방 유럽국가들을 압도할 것이라는 분석이었다. 1954년이면 소련이 나토의 강대국들에 대해서도 지속적이고 심각한 안보 위협을 가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곁들여졌다. 이에 따라 미국은 1953년 7월 유럽에 전구급(theater) 핵무기 배치를 약속하고 1954년 9월 공식적으로 첫 원폭 무기를 유럽에 전개했다. 다만 이는 공식적인 배치를 기준으로 한 것이며 비공식적으로는 더 앞서서 배치된 것으로 보인다. 노스타드 장관의 기록에 따르면 미국의 핵무기는 1952년 유럽에 전개됐다.
어찌됐든 미국의 핵무기가 유럽에 배치되면서 미국의 핵무기 담당자들은 딜레마에 빠졌다. 미국 본토가 아닌 유럽에 배치한 핵무기를 누가 어떻게 보관·관리하고 유사시 발사 결정권은 누가 갖게 되느냐는 문제였다. 당시 개정된 나토 방위계획은 소련과의 잠재적 전쟁 상황에서 핵무기를 조기에 그리고 신속히 사용하도록 하는 원론적인 내용만 담겨 있었다.


소련이 1953년 8월 12일 현재의 카자흐스탄 지역에 해당하는 곳에서 실시한 최초의 수속폭탄 실험 장면. 약 400kt규모의 폭발로 발생한 화염이 버섯형태의 구름과 함께 치솟고 있다. 유튜브 화면 캡처




◆급부상한 소련 핵미사일 위협...불신 받은 美핵우산

미국의 전술핵 배치에도 불구하고 유럽의 나토 회원국들은 미국 핵우산에 대한 불안감을 지우지 못했다. 소련이 재래식 군사 위협 뿐 아니라 핵-미사일 능력까지 고도화했기 때문이다. 소련은 1949년 원자폭탄 실험, 1953년 수소폭탄 실험에 성공했다. 이어서 1957년 10월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스푸트니크) 발사에 성공하면서 서방권을 긴장시켰다. 스푸트니크를 우주공간으로 올려보낸 로켓(발사체)은 '소유즈(R-7)’인데 사실상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으로도 쓰일 수 있었다. 해당 로켓의 상단부에 위성 대신 핵탄두를 탑재하면 유럽 전역 및 미국을 핵타격할 수 있다는 뜻이다.

미군이 1950년대부터 운용한 탄도미사일 PGM-11 레드스톤의 발사장면. 사거리가 최대 320km로 짧아 광대한 영토의 러시아 종심을 타격하는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사진출처=미 육군


이에 1957년 당시 유럽연합군 최고사령관(CACEUR)이었던 노스타드 장군은 소련 영토 깊숙한 곳까지 핵으로 타격할 수 있는 IRBM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유럽은 물론 미국에도 아직 실전배치된 IRBM은 없었다. 당시 미국이 보유한 핵미사일은 육군의 ‘레드스톤(PGM-11)’정도였다. 이는 사거리가 최대 약 320km정도(약 2톤대 탄두 탑재 기준)에 불과해 광대한 영토의 소련을 견제하는데 한계가 뚜렷했다.

미사일 전력의 열세는 미국의 핵우산 신뢰성에 대한 유럽국가들의 불신을 초래했다. 미국이 본토에 소련의 핵ICBM 공격을 받을 위험을 무릅쓰며 유럽을 지켜주겠느냐는 것이었다. 미국은 IRBM급 미사일 개발부터 서둘렀다. 그 결과 미 공군은 1959년부터 토르미사일(PGM-17)을 생산해 영국 등에 배치했다. 육군도 1950년대 중후반부터 ‘주피터(PGM-19)’를 양산해 전력화했다. 미 해군은 1960년 사거리 2000km의 세계 최초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폴라리스’의 첫 시험발사를 성공시켰다.

미국의 첫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PGM-17A 토르 미사일'. 1950년대 중후반부터 미군에 배치됐다. 사진제공=보잉


◆핵무기 권한의 딜레마...‘누가 언제 어떻게 보관·관리하고 통제·발사하나’
미국의 핵미사일 기술이 소련과 쌍벽을 이루게 되자 이번에는 핵무기 운용의 주권 문제로 쟁점이 번졌다. 미국이 유럽에 배치한 핵무기를 누가 관리, 통제하고, 발사결정은 누가 어떻게 내리느냐는 문제였다.
이를 되짚으려면 1957년으로 시계를 되돌려야 한다. 그해 12월 파리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 기간 중에 미국은 나토 동맹국 내 핵무기 비축에 관한 초안을 제시했다. 나토 북대서양위원회(NAC)는 이를 수용해 12월 19일 장관급 성명서를 발표했다. 성명서는 “현재의 소련 신무기정책을 고려해 위원회는 중거리탄도미사일(IRBM)이 유럽 연합군 최고사령관에게 맡겨져야 한다고 결정했다”고 명시했다.
이 같은 합의를 기반으로 핵무기는 유럽내 나토 회원국에 배치하되 미국이 실질적으로 관리 및 통제를 맡게 됐다. 전시에는 나토 최고사령관이 사용하기 위해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인계(release) 받을 수 있다. 미국 핵탄두들을 탑재하도록 설계된 포, 항공기, 폭탄, 및 미사일들은 미국으로부터 핵탄두들을 인계 받아 나토가 관리하는 시점 이후에만 핵무기를 장착할 수 있었다.

로버트 맥나마라 미국 국방부 장관이 지난 1962년 5월 4~6일 나토 장관급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그리스 아테네에 도착해 환영인파와 환담을 나누고 있다. 맥나마라 장관은 미국 핵우산에 대한 유럽 동맹국들의 불신을 해소하기위해 동분서주했다. 사진제공=나토.


◆“핵사용 발언권 달라”...미국을 움직인 서독의 외침

이 같은 조치에도 불구하고 유럽에선 미국 핵우산에 대한 불안감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특히 프랑스는 1960년 독자 핵실험을 하며 마이웨이에 나섰고, 서독도 프랑스처럼 독자 핵 보유 가능성을 물밑에서 모색했다.
이런 가운데 1961년 소련이 베를린에서 서방 무장병력의 철수를 요구하며 갈등을 고조시키고 동독이 베를린 장벽을 치는 ‘베를린 위기’가 터졌다. 이듬해에는 소련의 쿠바 내 미사일 기지 건립을 놓고 미소간 핵전쟁 직전까지 치닫는 ‘쿠바사태’가 발발했다.

존 F. 케네디(오른쪽) 미국 대통령이 1962년 12월 4일 덴마크 외무장관 (가운데) 등과 함께 핵무기 사용에 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그는 대통령이 핵무기 사용결정권한을 갖는 것에 대해 비판적 입장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사진제공=존 F. 케네디 대통령 도서관


핵전쟁 위협이 현실화하자 유럽의 나토회원국들은 한층 더 불안에 떨었다. 프랑스가 독자 핵무장 행보를 강화한 가운데 이에 합류하려는 기류가 확산됐다. 1963년 2월 미국 국방장관 로버트 맥나마라는 향후 10년내에 미국, 영국, 소련, 프랑스에 더해 8개국이 핵보유국 반열에 오를 수 있다고 존 F. 케네디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충격을 받은 케네디 대통령은 핵무기 확산을 막기 위한 투 트랙(two track) 정책을 폈다. 첫째는 아일랜드 주도 하에 유엔이 힘써온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하는 것이다. 둘째는 동맹국들이 핵무장을 추구하지 않도록 적극적인 안보보장 약속을 하는 방안이었다.
문제는 서독이었다. 서독은 자체 핵무장을 포기하는 대신 미국 핵무기에 대한 유럽 나토 회원국들의 실질적 발언권을 요구했다. 미국이 반대하더라도 회원국이 다수결로 찬성하면 미국 핵무기를 유럽국가들이 쓸 수 있도록 하려는 취지였다.
하지만 미국으로선 자국의 핵무기 사용을 동맹국들이 다수결로 정하도록 할 수는 없었다. 미국 국내 법상 미국 핵무기의 사용 결심은 오로지 군통수권자인 미국 대통령에게만 위임된 권한이었기 때문이다.

미국과 나토가 모색했던 다국적혼합군(MLF, Multi-lateral Force)을 다룬 해외만평. 영국의 잠수함에 탑재된 핵미사일을 동승한 독일병사 등이 함께 운용하되 미국 대통령이 최종 발사권한을 갖는다는 것을 시사한 그림이다. 1963년 4월 만평화가 베른트(Behrendt)가 그렸다.


◆소련도 떨게 한 미국의 제안...“다국적혼합군(MLF)에 핵무기 맡기자”

딜레마 속에서 타협안을 발굴해 낸 사람은 국무부 정책기획실장을 지낸 로버트 A. 보위(Robert A. Bowie) 하버드대 교수였다. 그가 1960년 제시한 해법은 ‘다국적혼합군(MLF, Multilateral Force)’을 구성하는 것이다. 미군과 유럽 나토회원국의 병사들이 혼합된 부대를 창설해 핵미사일을 탑재한 잠수함 및 수상전투함의 운용을 맡기는 방식이다.
미국은 1960년 12월 16일 NAC에 나토 다국적혼합군(MLF)를 창설하겠다는 뜻을 알리면서 세부 사항은 추후 결정하기로 했다. MLF제안은 1962년 12월 21일 열린 케네디 재통령과 해롤드 맥밀란 영국 총리의 정상회담 이후 공개 발표됐다. 두 정상은 공동성명을 통해 MLF를 폭격기, 잠수함 및 전술핵으로 구성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해당 무기체계에 유럽 최고사령관의 지휘를 받는 다국적 요원들을 탑승시키자는 뜻이었다.
유럽 국가들은 이에 관심을 보였다. 미군 수상함과 이탈리아 잠수함에서 시범운용해보기도 했다. 소련은 나토의 MLF 설립 추진에 강하게 반발했다. 특히 당시 상황을 분석한 복수의 자료를 살펴보면 소련은 서독이 MLF를 통해 사실상 전시 핵무기 운용권한을 갖게 된다는 점에 큰 우려를 가졌던 것으로 전해진다.

핵공유에 관한 외신기사.




정치적 견해 차이, 비용부담 등으로 이견을 좁히지 못해 채택되진 못했다. 무엇보다도 미국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해 유럽의 동맹국들의 의견을 결집시키는데 실패했다. 그 분기점이 된 것이 1963년 2월이었다. 당시 미국은 MLF를 해군 수상함에 기반해 운용하자는 쪽으로 방향을 틀어 제안했다. 앞서 정상회담을 통해 미국을 지지했던 영국은 뒷통수를 맞은 듯했다. 영국은 수상함이 아닌 폭격기, 잠수함 기반의 MLF를 추구했기 때문이었다. 영국은 미국의 변절(?) 이면에는 서독의 입김이 있을 것이라고 의심했다.
미국과 유럽은 그래도 MLF를 창설하려고 애썼다. 나토는 1963년 10월 일명 ‘파리워킹그룹(PWG)을 창설해 주요 8개국을 중심으로 MLF의 세부안을 조율하려했다. 미국도 린든 존슨 대통령 취임 후인 1964년 4월 MLF 추진을 위한 정부차원의 테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그러나 여전히 진통이 이어졌다. 서독이 수용할 만한 안은 영국이 반대하고, 영국의 입장은 서독이 어깃장을 놓는 상황이었다.

린든 존슨 미국 대통령이 알렉세이 코시긴 소련 각료평의회 의장과 만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존슨 대통령은 미국-유럽 동맹간 다국적혼합군(MLF) 창설이 어렵게 되자 나토 회원국과 핵기획 등의 협의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핵우산 신뢰도를 높였다.


◆MLF의 좌초...핵공유 주춧돌 ’NPG‘의 탄생
결국 미국은 MLF 추진을 포기했다. 존슨 대통령은 해당 방안이 완전히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존슨 대통령은 방향을 바꿔 나토의 핵기획 및 협의 메카니즘을 개선하기로 했다. 맥나마라 국방장관이 총대를 맸다. 그는 1965년 5월 31일부터 이틀간 파리에서 열린 나토 국방장관 회의에서 ’특별위원회‘ 구성을 제안했다. 특별위를 통해 나토 회원국들이 핵문제에 대한 협의 양식을 논의하자는 것이었다. 그의 제안은 수용됐다. 특별위는 기존의 나토 PWG를 대체해 1965년 11월 27일부터 회의를 개시했다.
여기서 주목해봐야 할 것은 PWG 산하의 3개 분과 워킹그룹이다. 정보 및 데이터 공유, 통신, 핵기획의 3개 분과로 워킹그룹이 나뉘었다. 이중 핵기획워킹그룹은 전략적 핵위협, 가용한 국방전력, 기획 및 핵 전쟁의 잠재적 결과를 분석해 나토의 핵무기 계획을 검토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해당 그룹에선 표적, 임무, 핵공격 전력에 이르는 구체적인 내용까지도 논의됐다
이는 현재 한미가 확장억제 실행력 제고를 위해 추진 중인 협의강화 방안과 오버랩 된다. 확장억제 강화는 6개 범주로 나뉘어 협의가 진행 중인데 그중 ’정보공유‘, ’공동기획‘ 등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북핵에 대응한 핵우산 신뢰 강화를 위해 추진 중인 한미간 논의가 약 57년전의 미국-유럽 간의 나토식 핵공유 초기 상황과 비슷하다는 점은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같은 작업을 기반으로 마침내 1966년 마침내 핵공유 체제의 전기가 마련됐다. 나토에 ‘핵방어위원회’를 설립하고, 그 하부 기구로서 ‘NPG’를 창설하기에 이른 것이다. NPG는 설립 초기 나토 회원국중 순번제 등을 통해 정해진 7개국을 멤버로 운영돼다가 점차 멤버가 확대돼 현재는 모든 나토 회원국(프랑스 제외)이 참여하고 있다. NPG에서는 핵무기의 배치, 운용, 교리 등 다양한 정책에 대한 의사결정이 이뤄진다


핵무기를 탑재할 수 있는 미 공군 전략폭격기 B-52 스트라토포트리스(맨앞)가 지난 2016년 6월 9일 발틱해 상공에서 미국, 독일, 스웨덴, 폴란드 전투기들과 편대비행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미 공군


◆NPG 운용 현황은

NPG는 기본적으로 각국 국방장관들이 참여하는 고위급 협의체다. 실질적인 업무는 NPG 산하의 고위급그룹(HLG)이 맡아서 한다. 차관보 및 국장급 등의 실무담당자들 중심으로 운영되는 HLG가 주요 이슈에 대해 연구하고, 제안을 마련해 올리면 NPG에서 장관들이 협의해 결정하는 방식이다. NPG는 유럽연합군 최고사령부(SHAPE)도 산하에 두고 있어서 군의 작전에 대해서도 깊숙이 관여할 수 있다. NPG에서는 핵무기의 배치, 운용, 교리 등 다양한 정책에 대한 의사결정이 이뤄진다.

유럽의 나토 회원국들(프랑스 제외)은 그동안 NPG를 통해 미국의 핵우산 정책방향과 핵전력의 기획 및 배치 등을 조율해왔다. NPG는 나토 핵공유의 정책방향을 좌우하는 핵심 협의기구다. 나토는 NPG 협의 결과를 바탕으로 유럽 나토회원국에 공유된 미국의 전술핵무기는 운용한다. 해당 핵무기들은 평시에는 5개국(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벨기에, 튀르키예)에 배치돼 현지 주둔미군이 관리하다가 유사시 해당 5개국의 전투기 등에 탑재해 운용한다. 즉, 평시에는 미군이 관리하고 전시에는 유럽 동맹국이 넘겨 받아 운용·발사하는 방식이다. 이 경우에도 핵무기의 최종 발사결심 권한은 미국 대통령에게 있다. 다만 이를 탑재해 운용하는 것은 유럽 동맹국이기 때문에 핵열쇠를 2개 나눠 갖는 뜻으로 ’이중열쇠(Dual Key)’체계로 불리기도 한다. 그만큼 동맹국이 미국의 핵무기 운용에 대한 강한 발언권을 갖게 되는 것이다.

미국의 LA급 핵추진잠수함 아나폴리스함. 한미 핵공유를 추진시 LA급 잠수함을 우리 해군이 리스한 뒤 미국 핵탄두를 탑재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사진출처=나무위키





◆한국형 NPG 창설한다면…한미 ‘핵방어위원회’ 검토해볼만

한미는 정보 공유, 공동 기획, 위기 협의, 연합연습, 전략자산 전개의 6개 범주에서 확장 억제 체계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해당 범주에 대해 우리 정부의 의견이 적극적으로 반영될 수 있도록 정책 소통을 강화하는 것이다. 이는 사실상 NPG를 벤치마킹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종섭(오른쪽 일곱번째) 국방부 장관과 오스틴(〃여덞번째) 미국 국방장관이 지난 3일(현지시간) 미국 메릴랜드주 소재 앤드루스(Andrews) 공군기지를 방문해 유사시 북한을 핵타격 할 수 있는 전략폭격기 ‘B-1B 랜서’를 둘러본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국방부


전문가들은 한국형 NPG 구축 방안에 대해 기존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 조직 편제를 개편·강화하는 것, 혹은 별도의 장관급 고위 협의체를 신설하는 것 등을 저울질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EDSCG는 박근혜 정부 시절이던 2016년 한미 외교·국방(2+2) 장관 협의체 산하에 신설됐다. 문재인 정부 시절엔 EDSCG의 개최가 중단됐다가 올해 윤석열 정부 출범 후 복원됐다. EDSCG를 기반으로 한국형 NPG를 설립한다면 확장 억제 수단 중 핵무기 분야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실무 보좌 조직 등을 EDSCG 산하에 설치하고 수시로 한미 간 정보 공유 및 물밑 조율이 이뤄지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

다만 장관급 협의체인 NPG와 달리 2+2장관 협의체 하에 예속된 EDSCG는 차관급 협의체라는 한계가 있다. 또한 국방뿐 아니라 외교 당국자도 참석하기 때문에 대내외적으로 민감한 핵 작전 보안 사안을 한미 국방 당국이 내밀하게 협의하는 데 한계가 있고 유사시 긴박한 군사적 결심이 필요한 상황에서 외교적 판단에 의해 의사 결정이 희석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대안으로 양국 국방 당국 간 장관급 연례 채널인 한미안보협의회의(SCM) 산하에 한국판 NPG를 두는 방안, 혹은 아예 나토처럼 한미 간 별도의 ‘핵방어위원회’를 설치하고 그 산하에 한국형 NPG를 설치하는 방안 등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미국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인 ‘트라이던트 2 D5’가 수중에서 잠수함을 통해 발사되고 있다. 해당 미사일에는 유사시 전술핵 핵탄두 등이 탑재될 수 있다. 사진 제공=미 해군





◆'K-전략 플랫폼' 확보해 핵공유 시대 대비해야

한국형 NPG를 비롯한 한미 간 협의 및 의사 결정 체계가 안착되면 향후 나토처럼 한미 간, 혹은 역내 다자간 핵공유가 현실화될 가능성도 있다. 미국의 핵무기를 동맹국의 플랫폼에 탑재하는 나토와 같이 우리 군도 중장기적으로 우리의 지정학적 환경에 맞는 핵공유용 전략자산 플랫폼 확보를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조비연 한국국방연구원(KIDA) 연구위원은 영국식 해상 플랫폼 기반의 핵공유 방식을 조망했다. 우리 군의 잠수함에 미국의 핵탄두를 탑재하는 방식이다. 다만 핵미사일을 탑재하는 잠수함은 장기간 은밀히 수중 작전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재래식 잠수함이 아닌 핵추진 방식의 잠수함이어야 한다고 조 위원은 지적했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부 장관이 지난 3일(한국시간) 미국 워싱턴DC의 펜타곤(국방부청사)에서 제 54차 한미안보협의회의(SCM)을 열기에 앞서 청사 입구에서 의장대 영접 행사를 지켜보고 있다. /사진제공=국방부


한국이 직접 자체적으로 핵추진잠수함을 개발해 전력화하려면 최소한 10여년 이상이 소요돼 당면한 북핵 위협에 대한 대책이 되기는 어렵다. 따라서 퇴역 예정인 미국의 LA급 핵추진잠수함 등을 우리 해군이 리스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군 관계자들은 지적하고 있다. 혹은 콜린스급 핵추진잠수함 리스를 검토 중인 호주를 벤치마킹하는 것을 고려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경우 우리 해군이 리스한 핵추진잠수함의 기항지 및 핵탄두 보관소를 미국 괌기지로 하면 한반도 비핵화 파기 논란을 해소하면서도 한미 간 핵공유를 효율적으로 이룰 것으로 전망된다.

핵추진잠수함 리스를 단기적으로 추진하기 어려울 경우 과거 보위 교수가 나토에 제안했던 ‘MLF’를 벤치마킹해 한미 양국 간 혼성군(Bilateral Force)을 편성한 뒤 이를 바탕으로 우리 군이 미국의 전략폭격기, 잠수함 등 전략자산에 탑승해 간접적인 핵공유 효과를 내는 방법도 고려해볼 만하다.

이종섭(오른쪽 두번째) 국방부 장관과 오스틴(〃 첫번째) 미국 국방장관이 3일(현지시간) 미국 메릴랜드주 소재 앤드루스(Andrews) 공군기지를 방문, 전략폭격기인 B-52와 B-1B의 능력과 작전운용에 대해 브리핑 받고 있다. 사진제공=국방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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