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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몸 같은 두 회사, 경영진은 '패밀리'…FTX 예고된 몰락 [정혜진의 Whynot 실리콘밸리]

샘 뱅크먼-프리드의 소왕국

증빙 없이 메신저로 결재, 승인

내부 서클 한 집에서 생활

"경영 통제에 완전히 실패한 사례"

/AFP연합뉴스




실리콘밸리 금수저의 잘못 꿴 단추

샘 뱅크먼-프리드(SBF)는 2017년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에 한 사무실을 임차해 암호화폐 투자 회사를 세웠다. 회사의 이름은 '알라메다 리서치'였다. 부모가 둘다 스탠퍼드대 로스쿨 교수로 재직해온 만큼 어린 시절부터 실리콘밸리의 창업 열기를 멀지 않게 접했던 터였다. 매사추세츠공대(MIT)를 졸업한 후 월가의 투자사 '제인 스트리트'에서 트레이더로 일했던 경험을 살렸다. 그의 거래 대상은 암호화폐였다. 당시 암호화폐 가격의 급격한 상승으로 뱅크먼-프리드는 금세 수백만 달러를 벌었다. 전 직장 동료인 캐롤린 엘리슨 등 몇몇 트레이더들과 무리를 이루어 거래를 진행했다. 2019년 그는 회사를 홍콩으로 옮겼다. 미국보다 규제에 친화적인 곳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이때 그는 암호화폐 거래소 FTX를 세웠고 자체 코인인 FTT 발행에 나섰다.

문제는 거래소인 FTX와 투자회사인 알라메다 리서치가 너무도 긴밀하게 연결돼있었다는 점이었다. SBF를 비롯해 소수의 인원에게 정보와 권력이 집중됐고 막대한 자금을 댔던 벤처캐피털(VC)도 회사 운영을 감시하기 힘든 구조였다.

캐롤린 엘리슨 알라메다 리서치 CEO


SBF, 연인 엘리슨 …패밀리

알라메다 리서치의 경우 최고경영자(CEO)를 맡은 캐롤린 엘리슨이 운영했지만 규모가 큰 거래에 대해서는 뱅크먼-프리드가 직접 개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엘리슨 역시 FTX의 거래 데이터를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이 두 회사의 경영진은 사실상 한 회사에 있는 것처럼 움직여 '방화벽'이 거의 없었던 점도 위험요소였다. 이들은 연인관계였으나 지금은 관계를 정리했다는 게 SBF의 입장이다.

뱅크먼-프리드와 엘리슨 외에도 고위 임원들은 하나의 '패밀리'처럼 지냈다. FTX의 CTO인 개리 왕, 람닉 아로라 제품 총괄 등이 패밀리의 일원이다. 지난해 뱅크먼-프리드가 FTX 소재지를 바하마로 이전한 뒤 이 같은 경향은 더욱 심해졌다. SBF가 바하마의 알바니 지역에 사들인 2.4㎢(약 73만평)에 달하는 호화로운 펜트하우스에서 이들은 함께 생활했다. 펜트하우스 가격은 4000만 달러(약 537억원)에 달했는데 이 역시 회삿돈으로 마련됐다. SBF는 최근 뉴욕타임즈(NYT)의 인터뷰에서 ‘이 패밀리에 너무 의존적이었던 것 아니냐’는 질문에 “가까운 동료들이 15명 가량이었고 현실적으로 이 이상의 사람들과 긴밀하게 소통하기는 힘들다”고 설명했다.

FTX에는 300여명의 직원들이 있었지만 SBF를 중심으로 한 내부 서클의 결속이 뿌리깊게 박혀있었다. 이로 인해 직원들과 어드바이저의 경우 회사 자금으로 집을 구매하거나 개인 용품을 살 때도 흔한 서류 증빙조차 없이 일을 처리하는 일이 흔했다. 각종 거래 집행이나 결제 내역에 대한 승인 역시 내부 메신저에서 이모지 등으로 가볍게 이뤄졌다. 사실상 기업 경영을 했다기 보다 SBF를 중심으로 한 소왕국을 운영하는 것에 가까웠다. 한 때 기업 가치가 320억 달러(약 42조원)로 평가받고 고객 예치금이 160억 달러(약 21조원)에 달했던 암호화폐 거래소로서는 믿기 힘든 운영 방식이다. 이에 FTX의 파산 보호 신청 후 청산 절차에 착수한 존 레이 3세는 “40년 간 기업의 청산을 비롯해 구조조정을 맡아왔지만 이 같이 경영 통제에 완전히 실패한 사례는 처음”이라며 “규제 바깥에서 방만하게 운영되면서 시스템이라고는 찾을 수 없고 미숙한 소수의 경험 없는 이들에게 통제권이 집중됐다”고 지적했다.



/로이터연합뉴스


규제 제안과 긴급 금융 …기이한 행보

누구보다 규제 바깥에 있었지만 SBF는 정치권에 규제를 구체화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워싱턴에 수백만 달러에 달하는 기부금을 후원하며 영향력을 높였다. 정치인들을 만난 자리에서 경쟁사인 세계 최대 거래소 바이낸스가 규제 바깥에서 움직인다며 이를 지적하기도 했다.

업계의 소방수로 오지랖을 과시하기도 했다. 지난 5월 스테이블코인 테라USD(테라)와 암호화폐 루나 가치가 급락하면서 암호화폐 시장이 위험에 빠지자 유동성 위기에 빠진 기업들에 자금을 댔다. 알라메다 리서치는 암호화폐 대출 업체 보이저 디지털이 유동성 위기를 겪자 2억 달러(약 2700억원)의 현금을 지원하는가 하면 블록파이의 인수권을 확보했다. 이후 7월 SBF는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 나서 “디지털 자산 업계의 유동성 위기 속에서 신음하는 업체들을 지원하는 데 있어 아직 수십억 달러의 여력이 있다”며 자신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시기 SBF는 직원들에게도 주요 결정들을 제대로 공유하지 않았고 실제로 수조원에 달하는 유동성은 뱅크런에 취약했다.

FTX의 대차대조표에는 구멍이 가득했다. 그러다 지난 2일 암호화폐 전문 매체인 코인데스크에서 알라메다 리서치의 대차대조표의 상당 부분이 자체 코인인 FTT 코인으로 이뤄져 있고 FTT 담보 대출량이 상당하다며 재무 건전성에 취약하다고 보도했다. 이후 지난 6일 창펑 자오 바이낸스 창업자가 불을 붙였다. 어느 정도는 SBF에 대한 반발심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자신의 트위터 계정을 통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FTT 코인을 전량 매각하겠다고 밝히자 다른 투자자들이 동요했다. 이날 하루에만 50억 달러에 달하는 대량 인출 사태가 벌어졌다. 이어 다음날도 이 같은 대량 인출이 벌어지자 FTX의 유동성이 바닥났고 급기야 인출 중지 조치가 취해졌다. 위기에 몰린 FTX와 바이낸스 사이에 급하게 이야기가 오갔다. 바이낸스가 FTX를 인수하겠다는 내용의 투자 의향서까지 작성했지만 이후 자오는 말을 바꿨다. “미안하지만 이 거래를 계속하지 못할 거 같습니다. FTX에 문제가 너무 많아요.” 급기야 자금 수혈에 나서던 SBF는 지난 11일 파산 보호 신청을 했다.

창펑 자오 바이낸스 창업자 /AP연합뉴스


자동청산 예외 알고리즘 등 끝나지 않은 논란

충격은 그치지 않았다. FTX가 고객의 예치금 160억 달러 중 100억 달러에 달하는 돈을 알라메다 리서치로 보내 투자 운용 자금으로 활용했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이를 임원들이 인지했다는 점도 알려졌다. 이미 유동성에 심각한 위협이 있던 상황이었다. 투자자들의 손실은 80억 달러(약 10조7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지만 각종 회계, 재무 자료 등이 심각하게 부실해 피해 규모를 산정하는 데도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SBF의 많은 결정 역시 메신저의 자동 삭제 기능으로 사라졌다. 또 FTX의 자동청산 알고리즘 등에서 알라메다 리서치의 경우 일종의 면제(예외)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논란을 빚고 있다.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는 SBF는 16일 미디어 복스와 트위터 메시지로 진행한 인터뷰를 통해 “내가 다 망쳤다. 그것도 여러 번이었다”며 “만약 파산 보호신청을 하지 않았다면 더 많은 문제들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가 망친 일이 여기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게 더욱 우려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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