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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유권자의 기억력

국제부 김태영 기자





얼마 전 치러진 미국 중간선거 결과는 한마디로 ‘절묘한 균형’이었다. 하원은 공화당이, 상원은 사실상 민주당이 다수당 자리를 차지했다. 선거 직전 조 바이든 행정부가 인플레이션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여론이 커지자 언론과 조사 기관들은 공화당이 하원에서 무난히 이기고 상원까지 탈환할 가능성을 거론했다. 더군다나 조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은 40% 전후의 낮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예측들은 틀린 셈이 됐다. ‘현직 대통령의 무덤’으로 불리는 중간선거에서 하원에서도 신승을 거둔 공화당은 쓴맛을 삼켜야 했다.

심판의 순간에 민주당은 왜 선전한 것일까. 인플레이션 파고에 밀린 줄 알았던 낙태권 폐지 판결과 2020년 대선 부정선거 음모론이 유권자들을 공화당에 등 돌리게 만든 주요 요인이라는 것이 많은 외신들의 해석이다. ‘초격전지’ 펜실베이니아에서 낙태 강경 반대론자이자 2020년 대선 부정론자인 공화당의 더그 마스트리아노 주지사 후보를 누르고 민주당이 주지사·상원·하원 모두 승리한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민심은 개인의 권리, 그중에서도 낙태권에 민감한 젊은 여성들일수록 더 매서웠다. CNN 출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하원 선거에서 20대 여성 중 72%가 민주당에 투표했다. 이를 두고 뉴욕타임스(NYT)는 “민주주의와 낙태라는 두 쟁점이 이례적인 결과를 만들었다”고 진단했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유권자의 머릿속에서 희미해진 줄 알았던 낙태가 선거에 영향을 미쳤다”고 평했다. 공화당은 뒤늦게 자신들의 극단주의적 행보를 반성하고 있다.

한국 정치권이 이를 남의 일로만 치부하지 않기를 바란다. 한 달 전 일어난 이태원 참사는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 충격을 안긴 비극이었다. 그만큼 모두의 뇌리에 오래도록 각인될 사건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슬퍼한다. 2014년 세월호 참사를 겪고도 젊은이들을 또 잃고야 만 현실을. 그리고 궁금해한다. 수없이 많은 사전 경고와 대응 인력 요청과 사고 신고에도 공권력이 참사를 막지 못한 이유를. 또 분노한다. 책임지려 하지 않는, 한편으로 이 비극에서 정치적 반사이익을 누리려는 그들의 행태에 대해. 이 또한 잊힐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우리는 이미 미국 중간선거에서 교훈을 얻지 않았는가. 유권자의 기억력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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