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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범 66% 벌금·집행유예 선고…솜방망이 처벌이 화 키웠다

[진화하는 불법 다단계 사기]

<하> 유사수신 판결문 58건 전수 분석

동종 전과 처벌 받은 사례도 34%에 달해

미국은 동종 사기에 수십녀의 중형 선고

감형 받기위해 비대위 구성 협상 '꼼수'도

불법 다단계 업체 직원들이 제작한 홍보용 팸플릿. 대체불가능토큰(NFT)와 암호화폐 등에 투자해 고수익을 올리고 있다며 고령층을 현혹하고 있다. 이건율 기자




대체불가토큰(NFT), 암호화폐 등 신기술을 이용한 불법 다단계 사기 피해가 급증하고 있지만 정작 범죄를 저지른 사기범의 절반은 벌금이나 집행유예 등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고 있다. 유사수신행위를 엄벌하는 미국 등 선진국과는 다른 솜방망이 처벌에 동종 전과자가 또다시 불법 다단계 사기를 벌이며 범죄가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9일 서울경제가 올해 선고된 유사수신행위 혐의 1심 판결문 58건을 전수 조사한 결과 사기범의 66%는 벌금형과 집행유예 등 비교적 가벼운 처벌을 받는 데 그친 것으로 확인됐다. 징역형의 중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33%에 불과했다. 그나마도 이 중 3분의 1은 1년 이하의 징역형에 그쳤다.

사진 설명


피해 금액이 100억 원을 넘는데 집행유예 처분을 받은 사례도 있었다. 대구지방법원 서부지원은 올해 2월 유사수신행위의 규제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을 받는 A 씨에게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A 씨는 원금 보장과 고수익을 약속하며 2017년 9월부터 6개월간 약 109억 7140만 원을 투자금으로 챙긴 혐의를 받는다. 재판부는 “피해액이 크고 수사를 피해 도망쳤으며 동종 전력이 있다”면서도 “뒤늦게나마 수사기관에 자수하고 잘못을 뉘우치고 있다” 등의 이유로 집행유예 판결을 내렸다.

3년간 피해자 41명에게 약 17억 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는 B 씨도 징역 3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올해 2월 수원지방법원 안양지원 재판부는 유사수신행위의 규제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를 받는 B 씨에 대해 “유사수신행위 범죄는 경제 질서를 교란하고 많은 피해자를 양산하며 피해 회복도 어려워 사회적 해악이 크므로 엄중하게 처벌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피고인이 범행을 인정하면서 반성하고 있고 상당수 피해자들과 합의했다”며 양형 이유를 밝혔다.



법조계에서는 이 같은 솜방망이 처벌이 다단계 사기 피해를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강봉성 법무법인 보정 변호사는 “미국은 같은 범죄에 대해 재판부가 징역 80년·100년씩 선고하다 보니 비슷한 사기 범죄가 줄어드는데 한국은 비교적 가벼운 처벌을 받는 데 그치고 있다”며 “형사처벌에 따른 위험 비용보다 범죄행위로 인한 경제적 이득이 훨씬 크다 보니 불법 다단계 사기가 끊이지 않고 반복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사기범의 상당수가 불법 다단계 업체를 운영하다가 붙잡혀 징역을 살고 나온 뒤에도 같은 범죄를 저질렀다. 본지가 분석한 판결문 58건 중 피고인에게 동종 전과로 처벌을 받은 전력이 있다고 명시된 판결문은 34%(20건)에 달했다.

불법 다단계 업체들이 입주해 있는 한 건물의 모습. 한 층에 10개가 넘는 업체가 사무실을 임대해 사용하는데 약 6개월을 주기로 흔적을 감춘다. 이건율 기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법 다단계 업체 운영자들이 재판에서 낮은 형량을 받은 이유 중 하나는 피해자와 합의를 한 데 있다. 업자들은 이를 악용해 피해자들에게 원금의 10%도 되지 않는 금액을 제시하면서 합의를 종용했다. 생활비조차 없는 피해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제안을 수락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출금으로 투자를 시작한 이들은 불어나는 이자를 막기 위해 합의하기도 했다.

재판 경험이 많은 불법 다단계 업체는 감형을 위해 ‘꼼수’를 쓰기도 한다. 원금 회수를 위해 피해자들에게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자고 제안한 뒤 지인 중 몇 명을 피해자인 척, 소위 ‘프락치’로 심는 방식이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피해자들은 비대위 설립에 안심하지만 실상 비대위는 “경찰에 신고하면 원금을 돌려받을 확률이 희박해진다”고 주장하며 고소·고발을 막는 역할만 수행한다. 피해자가 수천 명에 달하는 불법 다단계 사기 사건에도 경찰에 신고한 피해자가 몇십 명뿐인 경우도 많다.

익명을 요청한 업계 관계자는 “피해자들은 이미 수중에 돈이 한 푼도 없는 상태인 경우가 많고 일부는 생계가 벼랑 끝까지 몰리는 등 생활이 어려워진 사람이 대부분인데 비대위는 이 점을 악용한다”며 “피해 금액이 8억 원이 넘어도 8000만 원만 주면서 합의를 해달라고 하면 피해자들은 서로 먼저 돈을 받아가기 위해 수락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강남·선릉 일대 다단계 판은 정말 처참한 상황”이라며 “말 그대로 ‘사회의 악’이라고 불릴 만한 업체들이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피해가 반복되고 있는데도 아무도 해결해주지 않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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