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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십자각] 이중고 빠진 ‘피해자 마음을 읽는 이들’

안현덕 사회부 차장





고용 불안, 업무 과다.

최근 만난 검찰 고위 관계자는 대검찰청 소속 진술분석관이 처한 현실을 두 마디 말로 표현했다. 일선 검찰청에서 의뢰받아 피해자 진술을 분석하는 업무는 해마다 급증하고 있으나 진술분석관 인원은 단 18명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이원석 검찰총장이 아동 학대, 디지털 성범죄 등을 사회적 약자 대상 ‘4대 범죄’로 규정하면서 올해 6명이 늘었다. 2013년(12명)부터 지난해까지 약 10년간 11~13명 수준이었다. 게다가 진술분석관 지위도 단 16%(3명)를 제외하고 100% 공모(계약)직에 머물고 있다. 대검이 최근 몇 년 동안 진술분석관을 정식 직제화하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실패한 탓이다. 대검은 올해도 법무부를 통해 9명을 추가로 정식 직제에 포함시켜 달라고 행정안전부에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스토킹 범죄 등 피의자에 대한 심리·감정·분석을 위한 인력 2명이 추가됐을 뿐 진술분석관에 대해서는 변화가 없었다.

2006년 처음 도입된 진술분석관은 이른바 ‘피해자의 마음을 읽는 이’로 꼽힌다. 아동과 장애인 등이 실제 경험한 성폭력·학대 피해가 범죄 사실과 얼마나 일치하는지 과학적으로 분석하기 때문이다. 아동·장애인 학대나 성폭행은 목격자나 증거가 없는 경우가 많다. 특히 범죄가 가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이뤄지는 경우 피해자들은 ‘가족이 붕괴된다’거나 ‘부모·형제 등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등 압박감에 피해 사실을 제대로 밝히지 못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실제로 A 지방검찰청은 수년 동안 계부에게 성폭행을 당한 10대 피해자에 대해 대검에 진술 분석을 의뢰했다. 당시 피해자는 ‘어머니가 충격을 받을 수 있다’는 걱정에 선뜻 피해 사실을 밝히지 못했다. 반면 계부는 ‘사실 무근’이라고 주장했다. B 진술분석관은 반구조화된 인터뷰(포렌식 인터뷰), 진술 내용 분석(CBDA), 타당성 요인 검토 등을 거쳐 진술에 대해 100% 신뢰할 수 있다고 판단했고 결국 계부도 범행을 시인했다.



문제는 아동·장애인 성폭력이나 학대 사건 수사 과정에서 피해자 진술 분석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점이다. 진술분석관의 경우 진술 분석의 대상이 되는 범죄에 지역 한정이 없다. 또 지난해 8월부터 13세 미만 아동 성범죄뿐 아니라 아동 학대 범죄 피해까지 진술 분석 대상에 포함되는 등 업무 영역이 확장됐으나 인력은 여전히 10여 명에 불과하다. 한정된 인원으로 진술 분석 업무에 나서다 보니 한 주에 서너 차례나 지방 출장에 나서는 게 진술분석관들에게는 일상이 된 지 오래다. 게다가 법정에서는 피의자 측 변호사들이 계약직이라는 진술분석관의 지위를 문제 삼는 경우까지 발생하고 있다. 법정에서 진술 분석 분야의 최고 전문가로 피의자 진술을 분석해 증거로 제출해도 ‘공무원이 아닌 계약직이 작성한 자료를 신뢰하지 못한다’는 취급을 받는 것이다.

검찰은 최근 몇 년 동안 수사 과정에서 인권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피해자 인권과 직결되는 진술 분석 분야 지원에 소홀하면서 자칫 아동·장애인들을 범죄 피해 ‘사각지대’로 몰 수 있다는 우려마저 제기되고 있다.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이를 통해 피의자에 대한 범죄 처벌이 이뤄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때 검찰이 추구하는 인권 수사도 완성되지 않을까. ‘소외 피해자들을 위해서는 진술분석관을 직제화하고 인원 수도 늘려야 한다’는 현장 목소리가 그냥 나오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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