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24일, 미국 남부 텍사스에서 출발한 버스 3대가 워싱턴DC의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관저 앞에 중남미 불법 이민자 약 130명을 내려놓았다. 조 바이든 정부의 느슨한 이민정책에 강한 불만을 제기해온 공화당의 주지사가 항의 차원에서 벌인 일이다. 미국에서 남서부 국경을 넘은 불법 입국자 수는 지난해만 64만 명 넘게 늘었다.
인권 논란을 불러일으킨 이 사건은 ‘이민자의 나라’ 미국에조차 이민 문제가 얼마나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는지 보여준다. 국경 관리에 대한 공화당의 맹공과 여론 악화로 정치적 부담이 커진 바이든 대통령은 올 초 자신이 비판해 왔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불법 이민자 즉각 추방 정책, 일명 ‘타이틀42’ 확대 방침을 밝혔다.
이민자를 바라보는 시선은 두 가지로 갈린다. 저출산 고령화로 인구 위기가 현실이 된 지금 외국인 이주자는 인구 감소를 저지하고 부족한 노동력을 채워줄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해법이다. 1985년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유럽에서 두 번째로 높았던(15%) 영국의 고령화율이 현재 유럽에서 4번째로 낮은 19%에 머무는 것은 1990년대부터 본격화한 외국인 유입 정책 덕이다. 오랫동안 외국인 수용을 거부해온 초고령국가 일본은 2019년 결국 외국인 체류 자격을 대폭 확대하며 이민 국가로의 전환을 시도하고 나섰다. 1985년 10%이던 고령화율은 그사이 가파르게 치솟아 현재 29%에 달해 있다. 이민 인력이 견인해온 미국 경제는 트럼프 정권 이래의 이민 규제와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이민자 유입이 감소하면서 전례없는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물론 출신도, 언어와 문화도 다른 이들을 받아들이는 것이 긍정적 효과만 낳을 수는 없다. 급증하는 이민자는 내국인들에게 일자리와 치안,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위협 요인으로 인식돼 심각한 사회불안을 초래하곤 한다. 미국과 유럽 곳곳이 반(反)이민 정서에서 비롯된 혐오 범죄와 극우 정치의 대두, 때로는 국가의 근간을 흔들 정도의 정치적 격변에 몸살을 앓고 있다.
2016년 영국 국민들이 경제적 쇠락에 대한 우려를 무릅쓰고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를 결정한 데는 급증하는 이민자에 대한 사회적 반감이 크게 작용했다. 유럽에서 가장 이민에 개방적이었던 스웨덴에서는 2015년 유럽 난민 위기 당시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온 난민들로 사회불안이 고조되면서 급기야 반이민을 앞세운 극우 정당이 제2당으로 약진, 진보 중심이던 정치 지형을 뒤흔들었다. 정부의 관리가 자칫 삐끗하면 이민자에 대한 사회의 시선은 순식간에 뒤집히고 만다.
이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한국도 더는 미룰 수 없게 됐다. 지난해 합계 출산율 0.81명, 생산연령인구는 2012년 73.4%에서 2070년 46.1%까지 급락한다는 전망이 나올 정도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저출산 고령화 국가가 바로 한국이다. 윤석열 정부는 외국인을 국내 고용 시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본격적인 이민정책 수립에 착수했다. 올해 안에는 이민정책을 총괄할 이민청(가칭)도 설립될 예정이다.
국가 경제의 지속 가능한 성장, 나아가 국가 존속과도 직결되는 이민 문호 개방을 질서 있게 이뤄내려면 초기 시스템 정립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당장 인력난이 시급하다는 이유로, 또는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 성급히 빗장을 푸는 것이 아니라 어떤 기준으로 얼마나 많은 외국인을 받아들일지, 이들을 어떻게 사회에 통합시킬지, 합법적 이민과 함께 불어날 불법 체류를 어떻게 단속하고 국경을 관리할지 등에 대한 철저한 연구와 논의를 거쳐 국민들이 안심할 수 있는 촘촘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이민정책에 성공한 나라로 평가받는 캐나다의 비결에 대해 제프리 캐머런 맥매스터대 교수는 “정부가 이민을 확실히 관리하고 국민들은 이민자들이 국가에 보탬이 되도록 관리되고 있다고 신뢰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민 국가로의 전환이라는 중차대한 변곡점에서 그 신뢰의 토대를 쌓는 작업을 맡은 윤석열 정부의 책임이 막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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