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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위기 장기화…전기료 더 올리고 다소비문화 바꾸는 기회로” [청론직설]

◆손양훈 전 에너지경제연구원장(인천대 교수)

위기 근원 ‘투자 부진 따른 공급 부족’ 해소 3~4년 걸려

文정부 탈원전 탓에 한전 적자 눈덩이·에너지안보 위태

한전채 발행 확대는 임시변통…전기료 현실화가 해법

에너지 절약 ‘1석5조’, 고통 감내로 ‘전화위복’ 삼아야

에너지경제연구원 원장을 지낸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가 16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을 밀어붙여 에너지 안보를 위태롭게 하고 한전을 적자의 늪에 빠뜨렸다”면서 “이념에 휘둘려 정책을 다루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권욱 기자




따뜻한 겨울 날씨 등으로 국제 천연가스 가격 급등세가 진정되면서 에너지 위기가 사그라들 것이라는 낙관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또 윤석열 정부가 올해 1분기 전기 요금을 ㎾h당 13원 10전 인상함에 따라 한국전력의 적자 해소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에너지경제연구원 원장을 지낸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16일 진행된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에너지 위기는 앞으로 3~4년 이상 지속될 것”이라며 “절제와 고통 감내를 통해 에너지 다(多)소비 문화를 바꾸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전의 눈덩이 적자를 해결하기 위해 전기 요금 현실화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하면서 “값싼 전기료 유지는 미래 세대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것으로 공정하지 않은 일”이라고 지적했다.



-에너지 가격 급등세가 진정 기미를 보이고 있다.

△최근 국제 에너지 시장에서 가격이 크게 하락해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으로 돌아갔다. 특히 천연가스가 폭등세를 멈추고 전쟁 발발 전 수준으로 회귀했다. 유럽에 비정상적으로 따뜻한 겨울이 왔고 비축해놓은 천연가스가 거의 소진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근본 원인이 해소되지 않았으므로 위기가 끝나지는 않았다.

-에너지 쇼크가 길어질 수 있다는 얘기인가.

△우크라이나 전쟁이 에너지 위기를 증폭시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근본 원인은 에너지 공급 능력이 전반적으로 위축돼 있다는 것이다. 지난 7~8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 에너지 투자가 매우 부진했다. 환경·사회·지배구조(ESG)에 대한 요구가 열풍처럼 번졌고 각국 정부도 탄소 중립을 선언했다.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 화석에너지를 줄이고 재생에너지는 늘리는 에너지 전환을 도모했다. 기업들은 에너지 투자의 장기적 리스크가 높다고 보고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더욱이 코로나19로 인해 수요가 대폭 감소했다. 일정 기간 에너지 투자가 줄어들면 수년 후에 반드시 공급 부족이 발생하게 된다. 에너지 수요는 거의 줄지 않았는데 공급이 쪼그라들면 에너지 확보의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에너지 저(低)투자, 공급 능력 위축, 에너지 가격 상승의 장기 사이클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에너지 위기 상황이 근본적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앞으로 3~4년 이상 이런 상황이 지속될 수 있다.

-에너지 위기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에너지 위기가 올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사실 별로 없다. 국제 에너지 시장의 변동이나 지정학적 격동은 우리가 제어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주요 전략은 에너지 가격 변동의 리스크를 줄일 수 있도록 ‘에너지 믹스’를 잘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가 무리하게 탈(脫)원전 정책을 밀어붙이고 송전 설비 투자를 게을리한 탓에 그것마저도 어려운 실정이다. 새 정부가 들어서고 원전 정책을 180도 선회했지만 그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단기적으로는 무력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더라도 대처 방안을 찾아야 할 텐데.

△사실 우리나라만 에너지 위기를 겪고 있는 것이 아니다. 유럽 각국들은 에너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전기 요금을 대폭 올리는 동시에 처절하게 수요 관리를 하고 있다. 투자 부진으로 초래되고 있는 국제 에너지 시장의 공급 부족 현상은 상당한 시간이 지나야 해소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국내 에너지 수급에 숨통이 트이는 데도 수년의 시간이 걸린다. 전기 요금을 대폭 올리는 것 말고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은 없다. 누구도 원하지 않는 일이지만 절제와 고통을 감내하는 시기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그동안 에너지 효율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지만 성과가 없지 않았나.

△역대 정부도 여러 정책을 펴고 투자도 많이 한 게 사실이다. 그러나 효과는 미미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에너지 가격이 싸기 때문이다. 에너지 정책의 중심을 공급 늘리기에 두고 절약이나 효율을 높이는 데는 무관심해 에너지 과소비를 방조했다. 전기·가스 요금이 저렴한데 아껴 쓰려고 하겠는가.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8번째 에너지 다소비국이다. 2021년 기준 연간 2억 3466만 TOE(석유환산톤·석유 1톤이 연소할 때 발생하는 에너지)를 사용했는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의 1.7배가 넘는다.

-지금의 위기 상황은 이전과는 차원이 다르지 않은가.

△맞다. 이제 전기 요금을 올리게 되면 전혀 다른 국면이 전개될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민들이 상황의 긴박성을 느끼고 있는 만큼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다. 지금껏 효과가 없었던 정책이나 제도가 효험을 나타낼 가능성이 높다. 에너지 절약은 여러 가지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는 최선의 정책이다. 당장 돈이 적게 들고 국제수지도 개선되며 환율도 안정시킬 수 있다. 발전소나 송전선을 설치하는 부담도 줄게 된다. 무엇보다 깨끗한 환경을 만드는 데 크게 기여한다. ‘1석 5조’인 셈이다. 에너지 가격의 변동은 늘 있기 마련이다. 가격이 높을 때 에너지 다소비 생활 습관과 문화를 바꿔야 한다. 고통스럽지만 위기를 통한 변화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 위기 때 구조 조정이라는 고통을 통해 제조업 경쟁력을 높였던 것처럼 이번에도 에너지 효율을 제고하고 새로운 소비문화를 정착시키는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한전의 적자 문제가 심각하다.

△한전은 과거에도 적자를 기록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한 해 30조 원이 넘는 적자는 상상하기 힘든 수준이다. 우리나라는 국제 에너지 가격이 상승하면 운명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모든 에너지를 수입에 의존하는 고도 산업 국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에너지 안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데 지난 정부가 무리하게 추진한 탈원전으로 무기력한 상태에 빠졌다.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인가.

△지난 정부 이전인 2015년에 만든 7차 전력수급계획을 보면 7년 후인 2022년의 기저 설비 규모를 71.6GW로 책정했다. 기저 설비는 원자력과 석탄 발전을 합한 개념으로 24시간 가동이 가능한 저비용의 주력 전원들이다. 하지만 현재 기저 설비는 60.6GW에 불과하다. 당초 계획보다 11GW나 적은 수준이다. 11GW는 우리나라 전체 설비의 10% 정도에 달한다. 24시간 돌아가야 하는 기저 설비가 그만큼 부족하다는 얘기다.

-기저 설비 부족과 한전의 적자는 어떤 연관이 있나.

△원전 같은 저비용 주력 전원이 돌아가야 하는데 탈원전 탓으로 천연가스 발전에 의존하는 상황이 됐다. 재생에너지는 간헐성 등 때문에 발전량이 들쑥날쑥하는 단점이 있다. 잘못된 정책으로 인한 부담을 천연가스가 다 감당할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그러잖아도 천연가스는 비싼 연료인 데다 지난해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로 가격이 폭등하면서 발전비용이 급등했다. 이것이 고스란히 한전의 적자로 나타났다.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엄혹함을 모르고 에너지 안보를 우습게 여긴 자만이 빚은 참사다. 문재인 정부는 전기 요금도 제때 올리지 않아 한전의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

-새 정부 들어 전기 요금을 인상하고 한전채 발행 한도를 늘렸는데.

△한전채 발행 한도 확대는 불가피한 조치다. 그대로 두면 올 상반기 중 한전의 유동성 위기가 예상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임시변통에 불과하다. 한전의 추산에 따르면 전기 요금으로 현재의 적자 구조를 해결하려면 올해 ㎾h당 51원 정도 인상이 필요하다. 그런데 정부는 1분기에 ㎾h당 13원 10전 올렸다. 과거와 비교하면 큰 폭의 인상이라고 할 수 있지만 문제가 해결될 수준은 아니다. 더 올릴 필요가 있다.



-전기 요금 인상은 서민들의 어려움을 가중시킬 텐데.

△우리나라 전기 사용에서 주택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의 14% 수준이다. 나머지는 산업체와 건물에서 쓴다. 실제 전기 사용량이 적은 가구는 대부분 1인 가구여서 저소득 가구와 일치하지도 않는다. 저소득층 보호를 명분으로 전기 요금 인상을 주저하면 엉뚱한 결과를 낳는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정부가 요금을 억지로 눌러서 낮게 유지할 경우 에너지를 많이 쓰고 낭비하는 사람들은 이득을 보는 반면 적게 쓰고 절약하는 사람들은 손해를 입게 된다. 전기 요금을 통해 발전비용을 회수하지 않고 공기업 부채로 넘기거나 재정으로 보충하는 미봉책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전기를 낭비한 사람들의 책임은 면제해주고 국민 모두의 책임으로 전가하는 것이어서 공정하지 않다. 또 미래 세대에게 눈덩이 부담을 떠넘기는 부도덕한 일이다. 정말 전기 요금 인상으로 어려움을 겪는 가구들이 있다면 에너지 바우처 제도 등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바람직한 에너지 정책 방향은.

△우리나라는 OECD 주요 회원국 가운데 유일하게 전력과 가스를 공기업이 주도하고 있다. 주요국들은 민간 소유 기업들이 자유롭게 경쟁하는 시장경제에 맡기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정책과 가격을 모두 정부가 결정하는 과거의 유산을 개혁하지 않고 있다. 지금처럼 국가가 에너지 시스템을 모두 결정하는 것은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의 위상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한국의 수준과 역량에 맞는 선진화되고 자유화된 시스템으로 변화해야 한다. 무엇보다 에너지 정책은 과학과 경제성의 틀에서 결정돼야 한다. 이전 정권처럼 정치적 이념에 휘둘려 에너지 정책을 다루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He is…

1958년 대구에서 태어나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플로리다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8년부터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위원회 위원, 녹색성장위원회 민간위원 등을 역임했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3~2014년에 에너지경제연구원 원장을 지낸 데 이어 2015년 한국자원경제학회 회장으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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