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가 3주년을 맞았다. 공교롭게도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영국 경제가 러시아를 비롯한 세계 주요 경제국 가운데 가장 저조한 성적을 낼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을 내놓았다.
영국은 투자에서 수출과 고용에 이르기까지 사실상 모든 측면에서 다른 주요 국가들에 뒤졌다. 싱크탱크 학자인 존 스프링포드는 이에 대해 “최대 교역 상대에 무역·투자 및 이민에 대한 장벽을 설치한 국가는 무역량·투자액과 국내총생산(GDP)에 막대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영국은 노동력 부족에서 소기업들의 수출 부진, 영국과 유럽을 오가는 유로스타 열차의 통행량 축소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는 영국이 EU에 남아 있었다면 국민총생산(GDP)이 4% 증가했을 것으로 추산했다.
영국인들도 속았다고 생각한다. 한 서베이에 따르면 영국민의 과반은 유럽연합(EU) 탈퇴가 잘못이었다고 믿는다. 또한 3분의 2는 EU 재가입을 위한 국민투표를 원한다. 현 총리이자 브렉시트 지지자인 리시 수낙은 탈퇴의 정당성을 역설하지만 자신도 브렉시트가 만들어낸 일련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영국은 아직도 자국과 EU 회원국인 아일랜드 사이의 국경 문제를 풀지 못했고 이로 인해 경제성장은 더욱 타격을 입었다.
영국민에게 브렉시트는 무너져 내린 자신감의 일부였다. 2008년 금융위기 이래 영국의 생산성은 가파르게 추락했고 끝내 회복하지 못했다. 집권당인 토리당의 내핍 정책은 공공 지출을 삭감하고 불평등을 확대하며 일반의 두려움을 고조시키면서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어려운 시기가 닥칠 때마다 기회주의적인 정치인들은 외국인들에게 책임을 돌리곤 하는데, 보리스 존슨이 그랬다. 그는 브렉시트가 영국이 앓고 있는 모든 질병을 치료할 것이라는 약속과 함께 이에 따른 경비·혜택에 관해 거짓말을 했다. 일단 브렉시트를 통해 족쇄를 풀고 나면 거품을 빼고 생산성을 높인 “글로벌 브리튼”이 템스강의 싱가포르가 될 것이라던 존슨의 판타지는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사실 지금 영국은 사회복지 지출 확대, 중요 산업 분야에서의 연이은 파업과 임금 정체 심화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의 존 번 머독 기자에 따르면 지금과 같은 상황이 이어지면 평균적인 영국 가정의 경우 내년 말쯤에는 슬로베니아의 평균 가정보다 빈곤해진다.
브렉시트의 영향은 경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필자는 지난 수년에 걸쳐 마거릿 대처에서 데이비드 캐머런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국 총리와 대담을 나눴다. 이들 개개인의 정치 철학은 달랐지만 모두가 세계 무대에서 영국이 담당해야 할 역할에 대한 야심 찬 구상을 갖고 있었다. 이들은 영국이 미국과 중국 같은 초강대국의 반열에 서지 못할 것이라고 시인하면서도 국제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활기찬 글로벌 플레이어가 될 것이라는 자신감을 보였다. 영국은 역내 3대 경제 대국 가운데 하나로 EU 내에서 강력한 발언권을 행사했다. 또한 유엔 안보리 거부권, 워싱턴과의 긴밀한 관계와 강력한 국방력 덕분에 특별한 지위를 누렸다. 무엇보다도 영국은 국제적인 이슈에 아이디어와 어젠다를 창출하는 오랜 전통을 지녔다. 한마디로 영국은 어느 곳에서나 신중하게 받아들여지는 묵직한 목소리를 가졌다.
그러나 지난 10년 사이 국방비 지출은 제자리걸음을 했고 외교 예산과 해외 지원 예산, 심지어 BBC의 실질적인 기금마저 칼질을 당했다. 브렉시트와 함께 영국이 담당해야 할 더 큰 역할에 관한 논의가 실종됐고 정치인들은 지나치게 글로벌한 듯 보이는 이슈로부터 도망쳤다.
심지어 워싱턴도 EU 회원국이 아닌 국가에 시간을 거의 내주지 않는다. 언론인 닐 아스처슨이 한때 우려했듯 그레이트 브리튼은 리틀 잉글랜드로 전락했다.
영국의 성장을 회복하고 국가적 야망을 확대하며 거대한 힘의 경쟁터인 신세계의 설계자라는 핵심 위치로 돌아갈 치료법은 분명 존재한다. 물론 이를 위해서 영국은 EU에 복귀해야 한다.
리시 수낙은 자신의 이름을 남기고 영국의 국운을 되살리는 방법을 찾고 있다. 그는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문제를 풀어낼 해법을 갖고 있다. 그가 필요로 하는 것은 그 해법을 실행할 용기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