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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론직설]"부처·기관들 전자정부 마이웨이…정보 시스템 1만7000개나 양산"

◆고진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장

'전자정부' 세계 3위인데 각각 자기만의 전략 펴는 한계

무수한 정보시스템 난무, 국민과 기업에 도움되지 않아

조직이기주의 '사일로 현상' 극복하고 하나의 정부 필요

통합 디지털플랫폼으로 행정·기업 혁신생태계 구축해야

고진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장이 8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수없이 난립한 공공 부문의 정보 시스템을 통합해 행정 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기업의 혁신 동력을 일으켜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성형주 기자




고광본 선임기자


“우리나라가 정보기술(IT) 강국답게 전자정부 측면에서 세계 3위입니다. 그런데 부처와 기관 등 공공 부문의 정보 시스템 구축 현황을 조사하니 무려 1118곳에서 1만 7060개의 정보 시스템을 구축해 서비스하고 있더라고요. 정부 부처들이 서로 잘하려 한 데다 고질적인 사일로 현상(조직 이기주의)까지 겹쳐 각자 ‘마이웨이’를 한 것이죠.”

고진(사진) 대통령 직속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 위원장은 8일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 내 위원장실에서 서울경제와 인터뷰를 갖고 “각 부처·기관들의 정보 시스템이 연계되지 않아 국민들이 통합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데다 벤처·스타트업 등도 공공 데이터를 잘 활용할 수 없어서 혁신 동력을 발휘하기 힘들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러면서 디지털 혁신 기술로 국정 운영 시스템을 재설계하기 위해 청사진과 전략, 로드맵을 다음 달 발표하겠다고 했다. 고 위원장은 “외환위기 당시 김대중 정부가 디지털·벤처 강국의 꿈을 내세워 위기를 극복했던 것처럼 윤석열 정부는 정부 통합 데이터 플랫폼으로 행정 서비스의 질을 고도화하면서 기업의 창의력을 높이고 소프트웨어·클라우드 스타트업 생태계를 촉진하겠다”고 밝혔다.

-정부 위원회의 장은 대체로 비상근직인데 고 위원장은 매일 출근하는 이유는.

△재작년까지 순차적으로 벤처 회사를 다 엑시트(차익 실현)해서 부담이 없다. 서울대 ICT연구센터(ITRC)도 그만뒀다. 비상근 위원장이지만 엄연히 책임감이 막중한 공직 아닌가. 외부 회의나 강연이 아니면 위원회에 몰두한다. 매주 오전 7시 반 조찬 회의에도 참석한다. 깊은 사명감을 갖고 임하고 있다.

고진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장이 8일 서울 종로구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에서 가진 서울경제와의 인터뷰 자리에서 저 멀리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을 배경으로 팔짱을 끼며 미소를 짓고 있다. 성형주 기자


-그런 공직관은 아무래도 가계의 영향을 받은 듯한데.

△할아버지(서울대 철학과 교수, 6대 국회의원, 전북대 총장 역임한 고(故) 고형곤)께서 아버지(국무총리 두 차례와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지낸 고건)에게 강조했던 공직삼계(公職三戒)가 있다. ‘돈 받지 마라’ ‘술을 너무 많이 마시지 마라’ ‘누구 사람이라고 낙인 찍히지 마라’였다. 여기에 아버지는 늘 뭔가를 혁신하는 ‘일일신(日日新·매일 새롭게 함)’을 추가했다. 제가 일일신하려면 비상근으로 되겠는가.

-들러리를 서지 않고 뭔가 혁신하겠다는 자세가 좋다. 문제는 윤석열 정부가 강조한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를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른다는 점인 것 같다.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가 지난해 9월 출범했지만 아직 종합 청사진과 로드맵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AI), 데이터, 인프라, 서비스, 산업 생태계, 일하는 방식 혁신, 정보 보호 분야의 민간위원(19명, 산학연 전문위원 포함시 총 72명)을 중심으로 행정안전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4개 부처와 함께 집단지성을 발휘하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재 140개 이상 과제를 도출했는데 우선순위를 조정해 다음 달 비전과 전략, 과제를 담은 로드맵을 발표하면 달라질 것이다.

-과거 정부나 기존 위원회처럼 백화점식 정책 나열에 그쳐서는 안 된다. 문재인 정부의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도 뜻은 거창했지만 용두사미로 끝나지 않았나.

△저도 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한 적이 있지만 정부와의 입장 차가 컸다. 저나 장병규 4차산업혁명위원장 등 민간위원들은 2019년 4차 산업혁명의 성공 요건으로 근로 기준 선택권, 고등교육 자율성, 생산의 3대 요소 변경(노동·자본·토지→인재·자본·데이터) 등 원칙과 전략을 담은 대정부 권고안을 채시했으나 정부의 기조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수용되지 않았다.



-그런 점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가 혁신 생태계 구축에 방점을 뒀으면 한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활동할 때 행안부와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을 통해 정부 부처와 산하 기관의 정보 시스템 구축 현황을 전수조사하니 모두 각자 운영하고 있었다. 무려 1118곳의 기관이 1만 7060개의 정보 시스템을 구축해 서비스하고 있어서 어찌나 많은지 깜짝 놀랐다. 부처들이 지난 25년가량 디지털 분야에서 서로 잘하려고 자기만의 전략을 편 결과다. 세계 3위라는 수준 높은 전자정부를 구축했지만 부작용도 나타났다. 부처·기관 간 정보 유통의 칸막이가 높아져 시스템과 데이터 연계의 장애물이 되는 측면도 생긴 것이다.



-전자정부의 역설 현상이 나타난 것인데 앞으로 통합 디지털플랫폼을 어떻게 만들려고 하는가.

△너무나 분절돼 있는 정보 시스템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통합 디지털플랫폼으로 만들고 순차적으로 클라우드에서 효과적으로 돌아가게 할 것이다. 민간 클라우드로의 전환도 추진할 것이다. ‘하나의 정부’ 관점에서 부처·기관별 데이터와 시스템의 높은 칸막이를 극복해 통합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의 데이터 융합 활용 방안도 근본적으로 검토 중이다. 통합·선제적 행정 서비스를 하면 국민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기업들도 효과적으로 빅데이터를 활용해 여러 창의적인 서비스를 내놓을 수 있다. 혁신 동력 활성화를 위한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디지털플랫폼정부를 구현했을 때 국민과 기업이 피부로 느낄 만한 변화는 어떤 게 있는가.

△국민이 자주 사용하는 서비스의 혁신을 꾀하기 위해 사업부와의 공조도 추진하고 있다. 복지 전달 체계의 경우 현재는 필요한 사람이 신청해야 혜택을 받을 수 있는데 디지털로 전기·가스·수도 사용량을 살펴보고 아날로그식으로 사회복지사·택배기사·우편집배원 등을 활용하면 사각지대를 해소할 수 있다.기업들이 수많은 공공 빅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다면 의료 등 혁신적 서비스를 내놓을 게 무궁무진하다. 클라우드와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등 IT 소프트웨어 역량도 크게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즘은 군의 정보도 민간이 많이 활용해야 방위산업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데.

△외교·안보처럼 특수한 분야는 정보를 따로 관리해야 하지만 국방 혁신 차원에서 군과도 협조할 방침이다.



-부정적 얘기를 많이 했는데 그래도 우리나라가 디지털 강국으로 저력이 있는 나라 아닌가.

△지난달 세계경제포럼(WEF) 초청으로 스위스 다보스포럼에 다녀왔는데 일본 디지털청장이 ‘코로나에 대응하면서 지자체가 감염자 정보와 백신 접종현황 등을 3.5플로피디스크에 담아 중앙정부에 보냈다'고 한탄하더라. 우리는 수십 년 전에 중단했던 것 아닌가. 다보스포럼에서 여러 세션에 참여했는데 많은 나라들이 우리나라의 경험과 성과에 관심을 보이더라. 이번에 보니까 클라우스 슈바프 WEF 회장은 증강현실(AR)·가상현실(VR) 등이 접목된 메타버스밸리(온라인)도 만들고 메타버스 세계의 호환성·포용성·접근성·보편성을 높인 세계 표준을 추진하고 있었다. 물론 우리가 벤치마킹할 곳도 있다. 지난해 11월 영국·덴마크 등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덴마크 행정기관은 스마트폰과 온라인으로 업무를 처리해 프린터를 쓰지 않은 지 10년쯤 됐다고 하더라.



-최근 열풍을 일으키는 대화형 AI 챗봇인 ‘챗GPT’를 보면 세상이 빠른 속도로 무섭게 변하는 것을 느낀다.

△그렇다. 챗GPT의 경우 글로벌 빅테크 기업 간 경쟁이 불붙었는데 우리는 투자 규모와 데이터 학습량에서 뒤처진다. 챗GPT의 바이어스나 불법인용 문제도 나오는데 국내 업체가 개발한 게 그렇게 한다면 치명타가 될 수 있다. AI가 트레이닝하는 데 콘텐츠의 저작권법 면책 등 안전 장치를 마련해줘야 하는 과제도 있다.

-미중 패권 전쟁으로 촉발된 기술 패권 시대의 심화에 맞춰 우리 국가 경영도 첨단화해야 한다.

△정부가 AI·빅데이터 등을 활용해 운영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할 때다. 그래야 과학적 정책 수립과 집행, 평가를 통해 국가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부처와 기관의 사일로 현상이 심해 만만치 않은 도전이 될텐데.

△혁신 과정에서 기득권을 내려놓으면 국가적으로 더 큰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각 부처와 기관이 우선 디지털과 데이터 공유 차원에서 대한민국이라는 원팀이 돼야 한다. 잘하는 곳에는 인센티브를 주는 시스템도 만들어야 한다. 특히 정보화 예산은 각 부처에서 디지털플랫폼정부 철학에 부합하게 수립하고 위원회의 판단을 가미해 기획재정부에서 정하도록 하는 게 맞다.

-윤 대통령이 ‘디지털플랫폼정부’에 깊은 관심을 갖고 위원회에 힘을 실어줬으면 한다. 나아가 현 정부 내에서 어느 정도 실현되면 아예 정부·기관들의 직무군별 인사라든지 근본적 혁신을 통한 플랫폼정부 구현에 나섰으면 한다.

△공감한다. 일단 디지털플랫폼정부 생태계 구축에 전념해야 한다. 대통령께서 디지털플랫폼 정부에 관심이 매우 높고, 필요한 경우 저한테 국무회의에 들어오라고 할 정도로 힘을 실어주고 있다.

◆He is…

1961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시라큐스대에서 인공지능으로 컴퓨터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4년 ㈜바로비젼(갤럭시아컴즈의 전신)을 창업해 세계 최초로 모바일 VOD 상용 서비스를 실현했다. 이후 국가과학기술심의회 ICT융합전문위원장, 대통령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 한국모바일산업연합회장, 한국메타버스산업협회장등을 역임했다. 윤석열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디지털플랫폼정부 태스크포스(TF) 팀장을 거쳐 대통령 직속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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