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꼬이듯이 아픈데 점점 더 심하게 아파요”
갑자기 배가 아프거나 복부에 말로 설명하기 힘든 불편감을 느끼는 경험은 사실 아주 드물지만은 않다. 의학적으로는 이처럼 복통을 주증상으로 호소하는 경우를 가리켜 '복증'이라고 한다. 복증은 일시적으로 증상이 나타났다가 자연히 가라앉는 경우가 많고 단순한 배탈 또는 소화불량 때문에 나타날 수 있는 증상이라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기 쉽다. 하지만 복강을 둘러싸고 있는 복막의 염증을 동반하는 급성 통증은 외과적인 응급 수술이 필요하다.
급성 복증의 가장 흔한 원인은 맹장염, 즉 충수돌기염이나 쓸개에 염증이 발생한 급성 담낭염을 들 수 있다. 장허혈과 장괴사, 장천공, 복부를 관통한 자상이나 복부 타박상에 따른 복강내 출혈 등도 급성 복증이다. 대장 내부의 압력이 높아지면서 장벽이 약한 부위에서 대장 점막이 바깥쪽으로 밀리며 생기는 대장 게실증이 악화되는 대장 게실염도 급성 복증의 원인 중 하나다. 급성 췌장염의 가장 중요한 임상 증상도 복통이다. 통증이 경미하게 시작했다가 참을 수 없는 수준으로 격심해지는 경과를 보인다. 여성의 경우 난소와 난관이 꼬이면서 심각한 통증을 보이는 난소염전, 난소에 생긴 종양이 크기가 작을 때 별다른 증상이 나타나지 않다가 커지면서 파열되는 난소낭종파열 등 일부 산부인과적 질환이 급성 복증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급성 복증의 증상은 원인 병소의 위치와 염증의 심한 정도, 복강 내 염증이 복막을 따라 퍼져나가는 속도에 따라 달라진다. 구역감, 피로감, 소화불량 등 비특이적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도 있다. 하지만 대개 복통과 같은 증상이 매우 빨리 진행된다. 첫 증상이 발생하고 수일 이내에 복부 전체로 진행되고 심한 통증이 지속된다면 급성 복증을 의심해볼 수 있다. 손으로 눌렀을 때 뿐만이 아니라 눌렀다 손을 떼는 동작에서도 심하게 배가 아프다면 반발 통증에 해당하므로 병원에서 추가 검사를 통해 증상의 원인을 찾아봐야 한다. 이 경우 의사의 진찰 소견과 함께 혈액검사에서 보여지는 백혈구나 다른 염증 수치의 증가, 복부 X선 사진 및 초음파, 컴퓨터단층촬영(CT) 등의 영상검사를 시행하게 된다.
일단 급성 복증을 일으킨 원인이 발견되면 염증이 생긴 원인 병소를 제거하거나 출혈 부위를 지혈하는 등 원인에 맞는 치료가 진행된다. 장에 구멍이 났거나 괴사가 일어났을 경우 장절제 및 봉합 등의 응급 수술이 필요하다. 적시에 적절한 수술을 받으면 잘 회복할 수 있지만 수 시간 이상 수술 등의 치료가 지연되면 합병증이 발생하고 심한 경우 사망에 이를 수 있다. 따라서 조기에 증상을 발견해 수술을 받을 수 있는 병원을 찾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전통적으로 외과에서는 각 염증 병소 및 장기의 종류에 따라 해당 전문의가 수술을 집도하고 치료를 시행했다. 그러나 급격한 고령화와 병원의 진단 기술이 좋아지면서 급성 복증의 진단이 늘어났고 상태가 좋지 않아 과거에 불가능했던 환자들의 수술도 가능해졌다. 그 결과 최근 외과에서는 급성 복증질환을 전문으로 신속하게 수술하기 위한 급성 복증 수술(Acute Care Surgery) 분야가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급성 복증은 환자의 상태, 염증의 심한 정도 등에 따라 수술 후 중환자실 케어가 필요한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환자가 갑작스럽게 증상이 발생해 응급실을 통해 병원에 내원한다. 환자의 현재 체력 상태 등 여러 변수를 고려해 일정을 정하는 다른 수술과 달리 급성 복증은 촌각을 다툰다. 24시간 안에 수술하지 않으면 자칫 위험한 상황이 생길 수 있다.
예를 들어 복막염을 방치하면 사망률이 48%에 이른다. 하루가 지날 때마다 사망률이 5~8%씩 증가하므로 응급실에서도 우선 치료 대상 환자로 분류된다. 이에 급성 복증을 전문적으로 진단하고 중환자 치료까지 가능한 전담 외과의사의 존재 여부가 중요하다. 급성 복증 환자의 빠른 진단과 수술, 수술 후 전문 중증 치료를 일원화해 시행함으로써 환자의 수술 후 성적 개선을 도모하고 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