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일 경제계에 협력 확대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다. 일본 정부는 포토 레지스트 등 반도체 소재 3종에 대한 한국 수출 규제 조치를 4년 만에 해제했다. 한국 정부는 대응 조치였던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취하했다. 윤 대통령과 한일 경제인들이 마주한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BRT)’에서는 양국관계 정상화에 따른 다양한 경제협력 방안이 논의됐다.
소재·부품·장비 산업 등에서 일본과 경제협력 필요성이 있는 중소기업계는 이번 합의를 환영한다. 많은 소·부·장 중소기업은 일본 기업들이 가지고 있는 원천기술을 여전히 필요로 한다. 한국에는 정보통신기술(ICT) 등 일본이 관심을 보일만한 첨단 기술을 가진 중소기업들이 많다. 양국 기업간 기술·인적 교류는 서로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한국콘크리트공업협동조합연합회는 2019년까지 회원사들과 함께 매년 3회씩 일본을 방문해 기술 교류를 해왔다. 하지만 정치적 이슈와 코로나19 등의 여파로 중단된 상태다. 이번 한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일본측과 새로운 인적 기술 교류를 재개할 계획이다.
지난 4년간 한일 갈등은 양국 모두에게 큰 경제적 피해를 남겼다. 양국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던 2018~2021년 유니클로·닛산 등 한국에 진출했던 일본 기업 수는 절반 가까이 줄었다. 수출과 투자도 부진했다. 같은 기간 중국과 미국을 향한 수출액은 각각 0.5%, 24.2% 증가했다. 반면 일본을 향한 수출액은 1.6% 감소했다. 일본이 한국에 투자한 금액은 7%, 한국이 일본에 투자한 금액은 11% 줄었다.
지금 대외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재편되고, 자국 우선주의가 급격히 확산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과거에만 얽매일 수가 없다. 문화적·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이웃인 한일 양국의 협력은 미래를 위해 매우 중요하다. 지난해 기준 한국은 일본의 3위 교역국이고 일본은 한국의 4위 교역국이다. 서로 핵심 경제 파트너다. 특히 중소기업에게 일본은 더 중요하다. 중소기업이 우리나라 총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7.2%이지만, 일본 수출 비중은 35.7%에 달한다.
한국과 일본이 협력하면 서로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일본은 한국과 협력을 통해 디지털 역량을 강화할 수 있다. 지난해 세계 디지털 경쟁력 순위 조사에서 한국은 8위, 일본은 29위 수준을 기록한 바 있다. 이미 우리나라는 디지털 분야에서 일본을 앞서있다. 따라서 일본은 한국과의 인적·기술적 교류를 할 유인이 충분하다. 한국 기업에게도 도움이 될 분야가 많다. 우리 핵심 산업인 반도체 분야에서 일본은 압도적 점유율을 가진 품목이 많고, 핵심 원천기술도 다량 보유하고 있다. 친환경 기후변화 대응 분야에서도 수소 등 기술특허에서 앞선 일본과의 협력은 필수다.
돌이켜 보면 2002년 한일 월드컵 공동 개최,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한국 국민이 보냈던 위로 등은 서로에게 큰 힘이었다. 이번 윤 대통령의 일본 방문이 한일관계 정상화를 넘어 새로운 미래를 위한 경제협력의 첫걸음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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