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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일 칼럼]입시 개혁과 좋은 불평등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우리 사회에서 불평등은 해소돼야 할 사회악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물론 단순한 격차로서의 불평등은 바람직하지 못한 부분이 많지만, 다른 한편으로 불평등은 가능성과 기회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도 강하다. 가능성과 기회는 사회 구성원들에게 스스로 노력해 높은 성과를 추구할 동기를 부여하는, 어느 사회에서나 반드시 필요한 핵심 기제이기 때문이다. 노력하지 않는 사람보다 노력하는 사람이 더 높은 성과를 거둘 수 있게 하는 불평등이야말로 사회발전의 원동력이며, 이를 ‘이동성 높은, 좋은’ 불평등이라고 부른다. 개천의 미꾸라지가 열심히 노력해 용이 될 수 있다면, 미꾸라지와 용의 격차는 사회악이 아니라 오히려 적절한 동기유발 요인인 것이다.

이동성의 핵심에 교육이 있다는 점에는 별 이견이 없다. 흙수저로 태어나도 자신의 꿈을 위해 노력하고, 그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를 교육만큼이나 효과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시스템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얼마 전 사교육비가 또 크게 늘었고 소득 수준별 격차도 크다는 보도는 더욱 아프게 와 닿는다. 사교육비는 더 이상 새로운 뉴스도 아니고, 부모가 자식을 위해 사교육비를 지출하는 것도 문제 삼을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그 보도가 새삼 더 아픈 것은 그 연장선상에 세대 간 불평등이 고착화되는, 그래서 ‘나쁜’ 불평등이 보이기 때문이다.



사실 사교육만 탓할 일은 아니다. 흙수저든 금수저든 모든 학생이 자신의 역량을 충분히 계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공교육의 기본 역할이다. 그런데 이 기본 역할을 제대로 못하니, 사교육이 그 자리를 대신한 것뿐이다. 문제는 정부가 공교육 정상화는 제쳐두고, 원인이 아닌 증상에 불과한 사교육을 어떻게 해 보겠다고 입시 제도만 이리 저리 땜질하는 미봉책을 반복해 왔다는 점이다. 내신과 수능 성적으로 줄을 세워 그 순서대로 대학이 결정되는 입시의 본질은 실상 바뀐 것이 없다. 결국 내신과 수능에 최적화된 사교육 시장이 확대되는 추세에 입시제도가 오히려 밑거름 역할만 톡톡히 해 온 것이다. 새 정부의 교육개혁 화두도 인공지능(AI) 기반 교육, 창의 교육 등 화려한 수사로 점철돼 있지만, 이 역시 입시 개혁 없이는 공허한 외침일 뿐이다. 입시의 근간이 수능과 내신에 묶여있는 한, 아무리 창의 교육을 강조해 봐야 결국은 ‘입시용’ 창의성에 발 빠르게 대처할 사교육에 좋은 일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현 입시 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혁하지 않고는 사교육이 사라질 리 없고, 공교육 정상화도 기대하기 어려우며, 결국 나쁜 불평등이 더욱 견고하게 고착될 수밖에 없다.

획일화된 수능과 내신으로 학생들을 옥죄고 사교육만 부추기는 입시는 이제 그만 해야 한다. 대신 각 대학이 다양한 인재를 선발하고, 특성화된 교육 과정을 통해 개인의 개성이 최대한 발휘될 수 있는 인재양성으로 전환될 수 있도록, 대학 입시와 교육을 자율화해야 한다. 지방대 살리기도 자율화를 토대로 한 특성화에서 출발해야 가능하다. 수능 점수로 줄 세운 획일적인 입시에서는 수도권 집중이 불가피하고, 그만큼 지방대가 살아남을 길은 좁아지기 때문이다. 대학이 자율화되고 다양성이 확대돼야 초중고 교육도 기존의 획일적인 틀에서 벗어나 학생의 개성을 살리고 다양한 인재를 양성하는 과정으로 거듭날 수 있으며, 바로 그것이 진정한 공교육 정상화일 것이다.

지금까지 사교육에 의존해 수도권 상위 대학에 갈 수 있었던 부유층 학생이 앞으로는 그 대학에 가지 못하거나, 그 반대의 경우도 발생할 것이다. 이를 대혼란이라며 입시 자율에 저항하는 목소리도 있겠지만, 그것은 사실상 혼란이 아니라 사교육에 의존한 기득권의 소멸을 의미할 뿐이다. 우리 아이들의 미래가 더 이상 비싼 사교육이 아니라 본인의 개성과 노력에 의해 결정되는, 즉 ‘이동성 높은, 좋은’ 불평등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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