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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유야무야 된 노동개혁

한기석 선임기자

핵심인 노동유연성 목표에서 빼고

경사노위원장에 엉뚱한 사람 앉혀

주52시간제 개편은 아예 망쳐 놔

애초 노동 개혁 의지 있었나 의심





윤석열 정부가 지난해 6월 언론사 논설위원들을 초청해 새 정부의 경제정책방향을 설명했다. 민간 중심 역동 경제를 포함한 4대 정책 방향에 대한 설명을 듣다가 노동시장 개혁 부분에서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노동 개혁은 근로시간제도의 합리적 개편, 연공급 위주의 임금체계를 직무·성과 중심 임금체계로 전환, 미래지향적 노동시장을 구축하기 위한 과제 발굴 등 세 가지 과제로 이뤄졌다. 근로시간제 개편은 작은 사안이고 임금체계 전환은 노사 간에 알아서 하면 될 일이고 미래 과제는 뜬구름 잡는 얘기다. 노동 개혁의 핵심이라고 할 노동 유연성이 보이지 않았다. 며칠 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주 52시간 근로제 개편을 새 정부의 첫 번째 노동정책 과제로 제시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노동 유연성에 대해 “해고는 가장 어려운 문제”라며 “현재 추진 과제로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어려운 문제는 풀지 않겠다는 이 장관의 말은 지금 생각해도 이상하게 들린다. 4차 산업혁명이 진행 중인 지금 노동시장은 과거와 완전히 달라졌다.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 바뀌고 있는 자동차산업을 보자. 차 부품 수는 줄어들고 생산공정은 단순해지고 로봇은 많아지고 있다. 모든 변화는 생산 인력 감축이라는 한 방향을 가리킨다. 전에는 기업이 ‘쉬운 해고’를 하면 노동자가 죽었지만 이제는 ‘쉬운 해고’를 하지 못하면 기업과 노동자가 같이 죽는다.

노동 유연성 제고는 어느덧 불가피하고 시급한 생존 과제가 됐다. 정부는 노동 유연성을 높이는 동시에 노동자가 일자리를 다시 얻을 때까지 마음 편하게 지내도록 사회안전망을 강화해야 한다. 진짜 노동 개혁은 노동 유연성과 사회안전망 강화라는 두 축으로 이뤄져야 한다. 새 정부가 내놓은 노동 개혁은 노동 개혁이라고 부르기가 민망한 수준이다.

윤 대통령이 지난해 9월 김문수 전 경기지사를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했을 때 이 정부가 제시한 고작 그런 정도의 노동 개혁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윤 대통령은 “현장을 잘 아는 분이다. 진영에 관계없이 노동 네트워크도 갖고 있다”며 인사 배경을 설명했다. 그가 노동운동을 한 것은 1980년대다. 1990년대부터는 정치를 했고 이후 언젠가부터 극우 아스팔트 길을 걸었다. 그런 그가 40년이 지난 지금 노동 현장을 잘 알 수도 없고 대단한 노동 네트워크를 갖고 있을 리도 없다.



경사노위의 전신은 1998년 외환위기 때 생긴 노사정위원회다. 당시 김대중 정부는 나라가 망할 수도 있는 절박한 상황에서 노동자 임금 삭감, 고용 유연화 같은 난제를 다루기 위해 노사정위를 만들었다. 노동자와 대화 없이 정부가 밀어붙였다면 외환위기를 헤쳐 나오기는 아마도 어려웠을 것이다. 경사노위는 노동자·사용자·정부가 노동 관련 정책을 협의하고 타협하는 기구다. 경사노위원장에게 가장 많이 필요한 능력은 소통이다. 김 위원장에게서 소통 이미지가 떠오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다.

그는 최근 광주글로벌모터스를 방문한 뒤 페이스북에 “감동 받았습니다. 노조가 없습니다”라고 썼다.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은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자의 권리다. 윤 대통령은 노조를 부정하는 사람을 노조와 대화하는 자리에 앉혔다. 이쯤 되면 윤 대통령이 노동 개혁을 할 생각이 있기는 했는지 의심이 든다.

그동안 진행돼온 근로시간 개편 과정을 보면 이런 봉숭아학당이 없다. 논의는 윤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얘기한 주 120시간 근로에서부터 시작해 92시간·69시간·60시간을 거친 뒤 멈췄다. 논의의 하이라이트는 대통령실 참모가 대통령의 ‘주 60시간 이상 근로는 무리’ 발언을 대통령 개인 생각이라며 부인한 것이다. 이제 대통령까지 부정 당했으니 누가 무슨 권위로 논의를 이어갈까.

윤 정부가 내세운 개혁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노동 개혁이다. 이것 하나만이라도 한다면 윤 정부는 성공한 정부로 기억될 것이다. 이렇게 대단한 노동 개혁인데 목표는 잘못 잡고 엉뚱한 사람을 데려다 쓰고 그나마 첫 과제부터 망쳐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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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석 기자 여론독자부 hank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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