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공격적인 금리 인상이 낳은 안타까운 결과물이었다. 아시아 지역의 물가 상승 압력은 다른 대륙에 비해서는 억제될 여지가 크다. 하지만 재정정책을 긴축에서 중립으로 전환하고 이를 가능한 한 오래 유지해야 할 부담이 이전보다 커진 것도 사실이다. 아시아 각국의 금융 당국은 시장 안정에 전력을 기울여야 할 처지다.
아시아 중앙은행들도 통화 변동성 관리에 각별한 신경을 써야 한다. 최근 미 달러화 강세는 헤지(위험 회피)하지 않은 달러 부채에 대한 아시아 시장 내 채무자들의 상환 능력을 저하시켜 더 큰 시장 불안을 야기할 수 있다. 이는 미국 달러에 대한 인위적 수요를 증가시켜 달러 접근성을 제한할 뿐 아니라 리스크 회피 기조를 고착화할 수 있다. 미 달러화 부채는 미국 내보다 해외에 더 많이 산재해 있다.
실제로 중저소득 국가들의 대외 채무는 2015년 6조 3900억 달러에서 2021년 9조 3000억 달러로 증가했으며 대부분이 미 달러화 채무다. 은행을 매개로 한 아시아 채무자와 채권자 간의 복잡한 관계는 자금 흐름이 중단될 경우 포트폴리오 유출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
신흥시장과 아시아권 국가의 자금 조달에서 채권 시장과 비은행 금융기관의 역할이 중대해져 경제 충격의 완충제로서 미 달러의 유동성은 더욱 중요해졌다. 코로나19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 그리고 미국 은행권 위기에 이르기까지 최근 발생한 대형 사건들은 유동성의 수요와 공급 패러다임을 바꿔놓았다.
채권 시장의 규모뿐 아니라 수요에 맞춰 유동성을 제공하는 투자 펀드의 역할도 커지면서 유동성에 대한 수요는 급증했다. 그러나 은행을 통한 시장 유동성 공급만으로는 이 같은 수요 증가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다. 새로운 유동성 공급자가 그 공백을 메울 수 있겠지만 대부분은 충분한 ‘스트레스테스트(건전성 평가)’를 거치지 않아 불안하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고 연준의 긴축적 통화정책이 시작되자 아시아 은행 대부분은 충분한 완충 자본 유지와 레버리지 관리에 집중해왔다. 여기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완화된 통화정책에 힘입어 은행들은 완충 자본을 확충하고 익스포저(위험노출액)를 줄일 수 있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 은행들은 자본 여력이 충분한 데다 중국 본토 은행들을 필두로 대부분이 바젤Ⅲ 레버리지비율에 있어 2022년 상반기 기준 전년보다 향상된 모습을 보였다. 아시아 중앙은행들은 유동성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위해 성장 지향적인 통화정책을 앞세워 역내 채권 시장에 보다 건설적인 환경을 조성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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