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수출이 7개월 연속 역성장하는 가운데 무역수지 적자가 14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전 분기 대비 0.3%에 그치며 저성장의 공포가 몰려오고 있다. 유일호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3일 서울경제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무역 적자 및 저성장 위기 극복 방안에 대해 “수출 품목·시장 다변화에 힘쓰되 노동·규제·연금·교육 개혁을 과감히 시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 전 부총리는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는 자신들의 지기 기반인 노조와 싸우면서도 대타협을 통해 하르츠 개혁의 성공을 이끌어냈다”고 말했다.
-수출 감소와 무역수지 적자가 우리 경제에 먹구름을 몰고 오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 교란과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풀린 유동성이 맞물려 인플레이션이 나타났다. 고물가에 대처하기 위해 고금리 정책을 썼고 이로 인해 세계 경기가 위축되면서 우리 수출이 줄고 무역수지가 악화됐다. 특히 중국은 한국에 대한 수입 관세까지 올렸다. 단기적으로 수출 지역을 다변화하는 게 필요하다. 장기적으로는 반도체 등 일부에 치우친 수출 품목의 다양화를 추진해야 한다. 또 생산성 제고를 통해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
-중국의 기술 추격으로 우리 수출품이 설 자리를 잃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반도체를 제외한 대부분 업종의 경쟁력이 위태롭다는 얘기도 들린다.
△시장에서는 무한 경쟁이 벌어져 선두를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다. 부단하게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중국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 격차를 유지하거나 벌리는 노력이 필요하지만 일본이 선도하는 분야를 쫓아가는 노력도 필요하다.
-10년 내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일본보다 떨어질 것이라는 보고서가 지난해 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나온 적이 있는데.
△OECD의 경고를 겸허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우리가 노력하기에 따라 미래를 바꿀 수 있다. 잠재성장률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 민간에서 과감히 연구개발(R&D) 투자에 나서고 국가는 이를 선도하고 지원해야 한다. 쓸데없는 낭비가 이뤄지지 않도록 규제 완화를 해야 한다. 노동 개혁도 반드시 있어야 한다. 인구 감소에 대비해 이민 유입을 확대하는 정책을 펴야 한다.
-정부의 노동시장 개혁 정책에 대해 어떻게 보는가.
△노사 법치주의 확립, 채용 비리 근절, 회계 투명성 제고 등은 당연히 해야 한다. 근로시간 유연화도 필요하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고용 유연화에 대해 노사정 대타협을 이뤄내는 것이다. 해고가 쉬워지면 채용이 더 쉬워지고 비정규직의 임금이 증가할 수도 있다. 슈뢰더 전 총리가 자신들의 지지 기반인 노조와 싸우고 결과적으로 정권을 잃으면서도 성공시킨 하르츠 개혁을 우리도 본받아야 한다. 근로시간 유연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쉬는 시간, 휴가에 대한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
-노동시장의 이중 구조 문제가 심각하다. 한국의 비정규직 근로자 비율은 2021년 기준 28.3%로 영국(5.6%), 독일(11.4%), 일본(15.0%) 등 주요 국가들보다 훨씬 높다.
△비정규직 문제는 노동계층 양극화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 노동조합이 조직된 곳과 그러지 못한 곳의 차이다. 강력한 힘을 가진 양대 노총이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측면도 있다. 결국 노조·기업을 포함해 사회 전체가 서로 양보하며 대타협을 이루는 과정에 이 문제를 어느 정도 완화할 수 있다.
-미국의 1분기 경제성장률이 1.1%로 예상보다 낮아 경기 침체 속도가 빨라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 지역 은행의 도산이 이어지고 있지만 위기 상황으로 갈 것 같지는 않다. 대출이 위축되면서 투자가 급격히 줄면 실업이 급증할 수밖에 없고 그러면 미국 중앙은행(연방준비제도·Fed)이 기준금리 인상 정책을 바꿀 것이다. 하지만 실업률은 굉장히 낮은 편이라고 한다. 팬데믹 기간 중 일하지 않게 된 사람들이 통계에서 빠져 실업률이 과소 계상됐다는 얘기가 있다. 실제 실업률이 높다면 기준금리 인상을 중단시킬 것이다. 전문가들도 2분기까지는 별수 없지만 3분기 이후 좀 나아질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으니 두고 봐야 한다.
-4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7%로 우크라이나 전쟁 직전 수준으로 떨어졌지만 문재인 정부 시절 과도한 재정 집행, 올해 20조 원 이상의 세수 결손 예상 등으로 부양책을 쓰기 쉽지 않다.
△보통 통화정책으로 인플레이션에 대처하고 경기 부진은 재정 정책을 통해 커버하는 데 재정 여력이 없다는 게 고민이다. 감세도 정치적으로 쉽지 않다. 미국이 금리를 안정시키면 우리도 여력이 생기는 만큼 통화정책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해 말 GDP 대비 일반정부 부채(D2) 비율이 IMF 추산으로 54.3%다. 재정 건전성을 어떻게 관리해가야 하는가.
△불가피한 적자 요인들 때문에 재정 건전성이 금방 좋아질 수는 없다. 현재 국가부채비율이 그리 높지는 않지만 여기까지 오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기 때문에 조금만 방심하면 금방 60%, 70%로 올라갈 수 있다. 어떻게 해서든지 재정 적자 증가 속도를 늦추고 경기 회복으로 세수가 많이 들어올 때 건전성을 회복시켜야 한다. 정치권은 항상 돈을 쓰고 싶어하므로 재정 준칙 예외 조항이 남발되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여야 정치권의 포퓰리즘 경쟁이 극성을 부리고 있다.
△정치적 타협이 어느 정도 있을 수 있지만 이건 정말 아니다. 공항 건설 특별법, 반값 대중교통비 등 선심 정책이 하나둘이 아니다. 정치권이 다시 한 번 잘 생각해봐야 한다.
-윤석열 정부가 미래 세대의 운명이 달려 있다며 연금·노동시장·교육 3대 개혁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데.
△방향을 잘 잡았으므로 이 방향대로 잘 추진하는 게 중요하다. 연금 문제는 나름대로 서로 양보하는 타협안을 만들면 가능할 것이다. 반대 세력은 있지만 미래 세대에 아무것도 못 받을 수 있다는 위기 의식이 생겼다고 본다. 노동시장 개혁은 아직 본격적으로 이뤄진 게 없어서 좀 걱정된다.
-정부가 내년 총선을 의식해 과감하게 개혁에 나서지 못하는 것 같다.
△보통 대통령 취임 1·2년 내 힘 있게 개혁해야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있는 처지가 되지 못했다. 야당이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어서 개혁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총선을 잘 치르고 이를 토대로 3년차부터 제대로 해보려는 게 아닌가 싶다. 현실에 안 맞는 공약은 수정해야 하지만 기본적으로 약속한 것은 지켜야 한다. 그러려면 총선에서 개혁을 뒷받침할 수 있는 의석을 얻어야 한다.
-서비스산업발전법이 12년째 국회에 발목이 잡혀 있다. 비대면 진료, 타다, 로톡 등 온라인을 이용하는 신생 플랫폼 스타트업이 기득권의 횡포로 인해 고전하고 있다.
△비대면 진료는 의사들이 마구 반대하다가 이제 조금 누그러진 것 같다. 타협을 통해 일단 물꼬를 트고 효과가 있으면 확대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OECD 37개국 중 32개국이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고 있고 심지어 중국도 하고 있다. 6년여 전에 10~20년 내 중국이 절대 못 따라오는 게 의료라고 했는데 이런 식이면 곧 따라잡힌다. 온라인 플랫폼 서비스를 막는 것은 국민이 더 좋은 서비스를 받을 기회를 없애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문재인 정부 당시 임대차 3법 시행 직후 전세가가 급등하는 등 임대차 시장이 혼란스러웠다. 그 혼란의 끝이 전세사기로 이어지게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아파트 전세가 급등하니 수요자들이 빌라 전세로 갔고 사기꾼들이 부동산 업체들과 결탁해 매입해서 전세를 남발하고 그 돈으로 다른 곳에서 장사한 게 전세사기다. 한심한 일이지만 수습해야 한다. 워낙 규모도 크고 20·30대가 당한 부분도 적지 않으므로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
-우리 경제에서 시급히 해결해야 할 주요 과제들을 꼽는다면.
△우선 경기 침체, 무역수지 적자, 성장률 하락에 대응하는 단기 대응책을 잘 세워야 한다. 현 정부가 나름대로 지혜를 발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다음으로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과제가 성장 잠재력을 높이기 위한 개혁이다. 개혁은 쉽지 않은 데다 시간도 걸리는데 그 효과는 시간이 더 지난 뒤 나타난다. 아무리 현안이 눈앞에 있다고 해도 장기 과제를 차일피일 미루면 안 된다. 노동 개혁, 규제 개혁, 미래 먹거리인 R&D 투자, 교육 개혁 등이 성장 잠재력과 깊이 관련돼 있다. 크게 걱정되는 것은 인구 즉 저출산·고령화 문제이다.
-저출산 문제가 유교권 국가에서 더욱 심하다고 한다.
△동거 가족의 출산과 양육에 대해서도 유럽처럼 정부가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방안에 대해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 이민 개방 방안도 공론화해야 한다. 조선족에 대해 배려해주는 만큼 고려인들에 대해서도 문호를 열어줄 필요가 있다. 재외 동포의 국내 입국은 노동력 문제 해결과 출산율 제고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나아가 동남아인들에 대해서도 인력 조달 관련 규제를 완화하고 원하면 귀화도 할 수 있게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He is···
1955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기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온 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과 한국조세연구원장을 거쳐 2008년 18대 총선에서 정계에 입문해 재선 의원을 지냈다.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을 거쳐 박근혜 정부에서 국토교통부 장관과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역임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