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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시장 개입해도 환율조작국 걱정 없다?…분위기가 달라진 이유 [조지원의 BOK리포트]

“환율 개입 도움됐다” 이창용 공식 언급

美 눈치 보느라 쉬쉬했는데 분위기 변화

IMF·BIS 등 국제기구도 시장 개입 인정

'환율 저평가→수출 개선' 연관 없다 해석

美 환율조작국 지정·관세 부과 근거 약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5월 4일 오전 인천시 연수구 송도컨벤시아에서 열린 제56차 아시아개발은행(ADB) 연차총회 비즈니스 세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제공=한은




외환당국(기획재정부·한국은행)은 원화 가치가 급등하거나 급락할 때 이를 조정하기 위해 시장에 개입한다. 환율 변동성이 우려된다고 공식 발언하는 ‘구두개입’을 하거나 직접 달러를 사고파는 ‘실개입’을 통해 원화 가치가 출렁이는 것을 막는 것이다.

각국 외환당국이 시장에 개입한다는 건 누구나 아는 일이지만 환율은 주변국들과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혀있기 때문에 해놓고도 안 한 척 쉬쉬하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주요 현안 대부분을 보고받는 금융통화위원조차 시장에 얼마나 개입했는지 물어보기가 조심스럽다고 할 정도로 민감한 사안이다.

그런데 최근 외환시장 개입을 공식적으로 언급하거나 이를 정책 수단으로 인정하려는 논의가 전개되는 등 국제 사회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나아가 환율 변동성을 줄이기 위해 외환시장에 개입할 경우 미국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거나 상계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는 우려도 줄고 있다. 최근 외환시장 개입이라는 민감한 이슈를 둘러싼 변화를 점검하려고 한다.

8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딜러가 업무를 보고 있다. 이날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전날보다 1.4원 내린 1,321.4원에 마감했다. 연합뉴스



① 시장 개입해 환율 움직여도 그럴 수 있다는 美

최근 선진국이나 신흥국에서 대규모 외환시장 개입을 하더라도 과거와 달리 큰 문제가 되지 않고 지나가는 일이 종종 발생하고 있다. 먼저 지난해 9월 22일 일본 외환당국은 엔·달러 환율이 145.9엔까지 오르자 1998년 6월 이후 24년 만에 엔화 약세에 대응해 사상 최대인 2조 8382억 엔 규모의 외환시장 개입을 단행했다.

당시 우리나라도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돌파하는 등 변동성이 커지자 대규모 시장 개입이 이뤄졌다. 외환당국은 지난해 3분기 역대 최대인 175억 4300만 달러에 이어 4분기에도 46억 400만 달러의 순매도 개입을 단행했다. 이에 지난해 6월 말 기준 4383억 달러였던 외환보유액은 10월 말 4140억 달러까지 4개월 만에 240억 달러 이상 줄었다.

그런데 그간 외환시장 개입에 민감하게 반응해왔던 미국 재무부는 당시 이를 두고 달러 강세 때문이라며 한국이나 일본의 시장 개입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아예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달 14일(현지시간) 국제통화기금(IMF) 고위급 패널 토론에 참석해 “지난해 9~10월 광범위한 외환시장 개입이 통화 절하를 막는 데 효과적이었다”고 공개적으로 시장 개입을 언급했다.

물론 지난해는 달러화 초강세로 각국의 통화가치 안정이 시급한 이례적인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외환시장 개입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는 그 전부터 있었다. 2020년 7월 토마스 조단 스위스중앙은행 총재는 외환시장 개입과 마이너스 정책금리가 핵심적인 정책 조합이라고 강조했다. 스위스는 스위스프랑의 절상 압력을 완화하기 위한 외환시장 개입을 지속하고 있다. 이외에도 인도네시아 중앙은행 총재 역시 자국 통화 안정을 위한 시장 개입 필요성을 주장하는 등 외환시장 개입에 대해 많은 발언이 나오고 있다.

한국은행 신축 통합별관 외관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② IMF·BIS 새로운 정책체계 도입 추진이 주요 배경

이러한 변화가 왜 나타났는지 이해하려면 IMF와 국제결제은행(BIS) 등 국제기구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논의를 알아야 한다. 한은의 이아랑 차장, 나승호 국장, 채동우 조사역 등이 함께 작성해 한국경제학회 학술지에 게재한 ‘자본이동 및 환율 변동성에 대응한 통합적 정책체계 논의와 시사점’ 논문은 이를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논문에 따르면 IMF와 BIS는 물가목표제와 자유변동환율제로 대표되는 현 체제를 일부 수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IMF는 2020년 통화정책, 거시건전성정책, 외환시장개입, 자본이동관리조치 등을 중심으로 하는 ‘통합정책체계(IPF·Integrated Policy Framework)’을 발표했다. BIS도 비슷한 내용의 ‘거시금융안정체계(MFSF·Macro-Financial Stability Framework)’를 마련해 지난해 7월 최종보고서가 제출됐다.

세부적인 내용은 다르지만 단순하게 요약하면 IMF와 BIS 두 기관 모두 자본유출 시 당국이 외환시장에 개입하는 것을 정책 수단으로 공식 인정하자는 것이 핵심이다. 특히 IMF는 외환시장이 충분히 성숙하지 않은 신흥국은 대외 금융충격이 발생했을 때 외환시장 개입 등을 통해 통화정책 독자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봤다. IMF 아시아·태평양 국장으로 오래 근무한 데다 총재 부임 이후 BIS 이사까지 맡은 이 총재가 시장 개입을 대놓고 언급한 것도 이러한 변화를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서울 명동 하나은행 본점에서 직원들이 미 달러를 체크하고 있다. 연합뉴스



③ ‘자국 통화 절하→수출 증대’ 공식 깨지자 변화

그렇다면 왜 이런 논의가 진행되고 있을까. 가장 큰 이유는 자국 통화 절하가 수출경쟁력 향상으로 이어지는 과거 이론이 더는 현실과 맞지 않게 됐기 때문이다. 자국 통화가치가 떨어지면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면서 수출이 늘어나고 경기 침체 영향이 상쇄된다는 것이 지금까지 경제학 교과서에 적힌 내용이다. 환율이 절하되면 일정 시간이 지난 이후 무역수지가 개선된다는 ‘J커브 효과’도 이런 논리를 바탕으로 한다.

그런데 J커브는 물론이고 환율 절하의 수출 개선 효과는 옛말이 됐다. 우선 국제교역의 달러화 비중 증가, 글로벌 가치사슬 고도화 등 교역 환경이 크게 변했다. 오히려 자국 통화가치 약세는 외화 채무를 보유한 자국 기업의 재무제표 악화로 이어지면서 투자 동력을 떨어뜨린다. 이는 올해 초 신현송 BIS 조사국장의 발표와도 일맥상통한다. 신 국장은 “달러가 약세여야 기업의 자금 조달 여건이 완화돼 한국 수출이 잘 된다”며 “교과서에서는 자국 통화가 절하되면 경쟁력이 생겨서 수출이 늘어난다고 배우는데 오히려 달러가 약해지고 자국 통화가 강할 때 수출이 잘 된다”고 말했다.

원화로 예를 들면 원·달러 환율이 상승(원화 가치 절하)하면 수출은 늘지 않는데 수입물가를 끌어 올리는 효과만 나타난다는 것이다. 실제로 3월 이후 원·달러 환율이 1300원을 넘고 원화의 실질실효환율(상대적인 수출가격경쟁력을 볼 수 있는 지표)은 94로 기준선(100)보다 낮은 저평가 국면이 이어지고 있으나 무역수지 적자가 14개월 연속 이어질 정도로 수출 흐름이 좋지 않다. 반면 3월 수입물가는 전월 대비 0.8% 오르는 등 환율 상승에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IMF와 BIS가 나선 것은 환율이 수출에 미치는 영향 변화를 감안하지 않고 통화정책을 운용하면 과도한 긴축으로 경기 침체가 나타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아랑 한은 차장은 “기존엔 물가안정을 위해 금리를 올리면 환율 절상이 수출 위축으로 이어지면서 경기를 긴축시킨다고 생각했다”며 “그런데 실제로는 환율이 수출에 미치는 영향이 없다면 경기 긴축을 위해 금리를 더 과도하게 올릴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부문을 조정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산항 일대. 연합뉴스



④美 환율조작국 지정이나 관세 부과 논거 약화

그렇다면 IMF와 BIS의 정책체계 변경이 우리한테 어떤 변화를 가져오게 될까. 앞서 언급한 논문에 따르면 가장 큰 변화는 앞으로 환율 불균형이 국제무역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일이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아랑 차장은 “국제무역 긴장이 지속되거나 고조될 수 있지만 적어도 환율 저평가를 이유로 한 무역 제재의 근거는 상당히 약화됐다”고 평가했다.

쉽게 말해 외환시장 개입을 근거로 한 미국 재무부의 환율조작국 지정이나 미국 상무부의 상계관세 부과 등의 논거가 약화된다. 외환시장 개입을 통해 환율 변동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는 국제적인 컨센서스가 형성된 데다 미 정부의 판단 근거가 되는 IMF의 입장 변화도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미 바이든 행정부에선 트럼프 행정부에 비해 환율 조작이나 관세 부과 등이 쟁점화되지 않고 있다. 상품 수출입보단 기술·자본에 대한 제재가 주요 수단이 된 상태다.

다만 글로벌 금융불균형을 완화하기엔 충분치 않다는 평가도 나온다. 외환시장 개입 등은 신흥국이 외부충격에 대응하는 입장에서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의 FIMA 레포(Repo) 제도와 같은 보완책이나 미국 연방준비제도(Feb·연준)의 상설 통화스와프 체결 국가 확대 등이 거론된다.

국내 정책과 관련해서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란 평가다. 이미 우리나라 외환당국의 정책 기조가 환율 수준을 시장 결정에 맡기되 환율 변동성이 크게 확대될 경우 ‘스무딩 오퍼레이션(미세 조정)’한다는 방침이기 때문에 IMF와 대체로 부합다는 것이다. 다만 IMF의 IPF 등이 구체화 돼 정책 조언까지 이어지려면 상당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 ‘조지원의 BOK리포트’는 국내외 경제 흐름을 정확하게 포착할 수 있도록 한국은행(Bank of Korea)을 중심으로 국내 경제·금융 전반의 소식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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