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과 교향곡의 거리는 인류가 진화해온 과정만큼이나 부단히 거리가 먼 것 같다. 그러나 지구 곳곳에서 연주되고 있는 장엄한 선율 속 교향곡이야말로 인류가 지금껏 발전해왔으며 앞으로도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원천이다.
진화생물학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이자 영국 세인트앤드루스 대학의 교수인 저자는 문화가 진화를 이끌어온 원동력이 됐다고 말한다. 인류가 다른 종보다 뛰어난 성취를 이뤄낼 수 있던 것은 문화가 가진 저력에서 기인한다. 다윈이 주창했던 진화론은 연속성 속에서 마음과 문화가 어떻게 진화해왔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기도 하다.
예컨대 인류가 가장 가까운 친척인 영장류와 명백한 차이를 가졌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지는 점은 영장류는 인류처럼 능숙하게 의사소통을 할 수 없다는 점이다. 저자는 동물들이 감성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복잡하고 자연적인 의사소통 체계를 가지고 있을 것이란 추측은 부정한다. 이 깊숙한 차이는 진화의 단계에서 수많은 변화를 파생시켰다.
모방과 혁신은 진화를 설명하는 키워드다. 모방은 인간 세계 외에도 자연 곳곳에 퍼져 있다. 다만 인간이 기술을 습득하고 사회성을 쌓는 모방의 성격은 전략적이다. 누구에게, 어딘가에서, 어떤 상황에 대한 정보를 얻어야 한다는 원칙이 명확하다. 이러한 원칙 아래 저자는 토너먼트 실험을 통해 대다수의 상황에서 모방이 보상을 이끌어낸다는 점을 증명한다.
앨런 윌슨의 문화적 추동 이론은 수많은 동물 중에서도 오직 영장류만이 거대해진 뇌를 가지고 있는 이유를 설명한다. 문화적 추동 이론은 혁신이 등장한 후 문화적 전달을 통해 확산됨에 따라 동물들은 새로운 방식으로 주어진 환경을 활용한다는 이론이다. 혁신성을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은 뇌의 크기와 직결됐다. 되먹임 효과도 그 사이에서 일어났다. 두뇌의 발달은 새롭고 유익한 습관(혁신)을 만들고 확산시키는 능력의 상승으로도 이어지기 때문이다.
영장류 중에서도 인류가 문화적 추동을 독보적으로 이룰 수 있던 까닭으로 문화적 전달 과정에서의 ‘공진화’가 제시된다. 혈족에게 문화를 가르치는 행위, 가르침의 도구로 사용된 언어가 함께 진화하면서 문화의 산물로서 기능했기 때문이다. 특히 언어는 이야기를 통해 전달되는 인류의 ‘다양하고 생산적이면서도 변덕스러운 문화적 세계’를 만들어낸 일등공신이다.
저자는 유전자와 문화도 공진화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자연선택으로 이뤄진 진화 과정에 더해 문화적 전달 또한 유전 형질에 영향을 끼친다. 오른손잡이와 왼손잡이는 이를 시사하는 대표적 예시다. 인류의 유전자는 오른손잡이를 선호하는 틀을 형성했지만 강력하지는 않다. 다만 훈육과 모방 등 부모의 영향은 뚜렷하기 때문에 소수지만 왼손잡이가 살아남을 수 있던 배경이 됐다.
농업의 번성은 문화의 가파른 진화를 이끈 주역이다. 복잡한 사회를 형성한 인류에게 대규모 협력이 이뤄지면서 타인을 이해하고 공유할 수 있는 심리가 발전했다. 예술의 진화 또한 비춘다. 예술은 인류의 모방 능력이 공통적인 감수성을 형성하면서 널리 향유되는 분야이자, 그렇기에 인류와 함께 진화하고 혁신하고 있는 궁극적인 문화의 일면이다. 이토록 복잡다단한 문화는 오늘날에도 완결되지 않은 상태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책은 536쪽의 두꺼운 분량이지만 쉽게 읽힌다. 2만 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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