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의 ‘베팅’ 발언 이후 한중 관계가 악화일로다. 이 와중에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5명이 중국 정부의 초청으로 중국을 방문했고 7명이 추가로 뒤를 이었다. 그것도 중국 정부의 비용 지원을 받아서다. 싱 대사의 발언이 한국의 주권을 훼손하는 망언이므로 강력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입장과 한중 관계의 중요성이 있으니 적당히 넘어가자는 입장이 대립하고 있다.
베팅 발언의 핵심은 한국이 미중 패권 경쟁에서 중국이 패한다는 쪽에 베팅하는 것은 잘못이고 후회할 것이라는 겁박이다. 서울 한복판에서 외교사절인 대사가 주재국에 대해 자국 뒤에 줄 서지 않으면 손해볼 것이라고 공개적인 협박을 한 것이다. 이것을 망언으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스스로 중국을 주인으로 섬기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아무리 정치적 이해관계가 다르다고 하지만 한국의 정치인으로서 싱 대사의 발언에 어떠한 유감이나 비판적 입장도 없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더욱이 예정된 일이었다고 해도 사건 직후 국회의원이 중국 정부의 초청으로 비용까지 제공받아 중국을 방문한다는 것은 국가와 국민의 자존심을 생각지 않는 무도한 일이다. 싱 대사의 망언보다 더 가슴 아픈 일은 망언이 발표되는 자리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앉아 있던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발언을 받아적던 민주당 인사들이었다. 그리고 뭉개진 국민의 자존심을 두 번 짓밟은 것은 민주당 의원들의 방중이었다.
민주당은 다음과 같이 자신을 변호한다. 중국은 중요한 경제 파트너이고 북한 문제에 협조를 얻어야 할 강국이므로 관계를 악화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1992년 수교 이후 중국은 우리 수출의 최대 시장으로 부상했다. 그러나 중국의 경제성장이 어느 정도 이뤄진 지금 수많은 우리 기업들이 중국 정부의 원칙 없는 자국 우선주의 때문에 사실상 쫓겨났다. 사드 배치 이후 한한령은 여전히 유효하며 국제정치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중국은 자국의 이익에 따라 정경 연계 전략을 사용했고 특히 과거 조선을 대하던 사고방식으로 우리를 대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것이 국민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줬고 베팅 발언도 그 연장선에서 나온 것이다.
중국은 더 이상 최대 시장이 아니라 주요 시장 중 하나일 뿐이다. 또 북한 문제에 있어 중국은 항상 북한을 편들었지 우리를 지지한 적이 거의 없다. 중국과의 관계가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관계 유지를 위해 국가적 자존심을 버리고 중화 사대주의를 보일 필요는 전혀 없다는 말이다.
중국의 초청을 받아 중국 방문길에 오른 민주당 의원들은 강경하게 맞서는 정부 대신 자신들이라도 중국을 설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베팅 발언 직후, 그것도 중국의 지원을 받아 방문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러고 싶다면 당연히 중국의 지원은 거절했어야 옳다. 우리가 돈이 없나, 아니면 자존심이 없나.
차제에 중국이 우리와 외교 관계를 갖는 많은 나라 중 하나일 뿐이고 지금은 조선시대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각인시켜야 한다. 대등한 관계에서 외교적 무례에 대해서는 반드시 납득할 만한 조치를 해야 하고 동북아에서의 세력균형과 패권 경쟁 과정에서 한국의 중요성을 인식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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