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맥주 회사들이 소비자들에게 알리지 않고 알코올 도수를 낮춘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지난 17일(현지 시각) 영국 데일리메일은 유명 맥주 브랜드들이 소비자에게 사전에 알리지 않고 알코올 도수(ABV)를 낮춰 왔다고 보도했다. 올해 초 포스터(Foster’s)는 알코올 도수를 4%에서 3.7%, 올드 스페클드 헨(Old Speckled Hen)은 5%에서 4.8%로 낮췄다는 것이다. 지난 1698년에 세워져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양조장인 셰퍼드 님(Shepherd Neame)도 지난 3월부터 자신들이 만드는 비숍스 핑거(Bishops Finger)와 스핏파이어(Spitfire)의 알코올 도수를 각각 5.4%에서 5.2%, 4.5%에서 4.2%로 낮췄다고 최근에야 밝혔다.
현지에서는 양조업계가 세금을 낮추기 위해 꼼수를 썼다는 비판이 나온다.
앞서 영국 조세 당국은 오는 8월부터 주세 정책을 일부 변경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본래 영국은 같은 용량의 술이라도 알코올 도수를 3단계로 구분해 도수가 높을수록 세금을 많이 물리는 방식으로 차등 부과했다. 반면 새로운 주세 규정은 알코올 도수별 세금 부과 방침을 더욱 강화했다. 이에 따라 세금 부담을 피해 가기 위해 맥주 업체들이 소비자에게 알리지 않고 알코올 도수를 낮췄다는 것이다.
예컨대 새 제도에 따르면 비숍스 핑거의 경우 원래 도수를 유지하면 맥주 500mL 한병 당 52펜스(약 740원)의 세금을 내야 한다. 하지만 5.2%로 낮추면 50펜스(약 715원)만 내면 되기 때문에 병당 약 25원을 절감할 수 있게 된다. 영국 셰필드 대학 콜린 앵거스 연구원은 “모든 양조장이 알코올을 0.3%만 줄여도 약 2억5000만파운드(약 4100억원)의 세금을 절약할 수 있다”고 했다.
문제는 업체들이 세금을 적게 내 결과적으로 원가 부담은 낮추면서도 맥주 가격은 그대로 유지한다는 데 있다. 때문에 소비자들에게 돌아가는 혜택은 사실상 없다.
현지에서는 이런 행태를 빗대 ‘드링크플레이션’(drinkflation)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기업들이 제품 가격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제품의 크기나 중량을 줄여 사실상 값을 올리는 효과를 만든다는 것을 의미하는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에 빗댄 것이다.
이에 대해 매체는 “병과 캔의 모양이나 크기에는 변화가 없고 같은 양의 액체가 들어 있기 때문에 드링크플레이션이 슈링크플레이션보다 더 교활하다”며 “소비자들이 같은 돈을 내고 자기도 모르게 몇 달씩이나 약한 도수의 맥주를 마셔온 것”이라고 비판했다.
소비자들의 비판에 직면한 맥주 회사들은 서로 다른 해명을 내놓고 있다. 올드 스페클드 헨을 만드는 그린 킹(Greene King)은 인플레이션을 거론하며 “원자재 포장비, 에너지 가격이 상승하는 등 생산 비용이 증가한 데 따른 조치”라고 했다. 사실상 세금을 포함한 원가를 낮추기 위해 알코올 도수를 낮췄다는 점을 인정한 셈이다. 반면 셰퍼드 님은 “소비자들이 건강한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하면서 점점 알코올 함량이 낮은 음료를 선호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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