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단체들이 충분한 검토 없이 정책을 추진하다가 철회 또는 혈세 낭비로 이어지는 사례들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부동산 경기가 얼어붙고 경제가 위축되면서 지자체의 재정 여건도 열악해졌지만 보여주기식·인기영합식 정책이 난무하는 상황이다.
경기도 김포시가 한 달 사이에 김포공항행 버스 이용 요금 환급 정책을 철회한 것도 사업성을 제대로 따지지 않고 성급하게 정책부터 공개한 데서 비롯됐다. 실제 환급이 이뤄지려면 보건복지부의 사회보장협의회 심의는 물론 지원 내용을 명시한 조례 제정까지 거쳐야 하지만 사업비 파악부터 잘못되면서 제대로 된 논의가 이뤄지지 못했다. 애초 정책 취지는 ‘지옥철’ 승객 분산이었는데 예산 부족 때문에 실제 정책 효과가 있는지 검증도 못 해보고 백지화됐다.
이번 정책은 처음부터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이 컸다. 김포골드라인 혼잡도를 낮추려고 70번 시내버스의 운행 횟수를 늘렸지만 지하철에서 버스로 넘어오는 승객이 많지 않은 상태에서 1만 원 환급이 큰 인센티브가 되기는 힘들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게다가 일찌감치 예산이 소진돼 매달 지역화폐 ‘김포페이’ 인센티브 지급이 조기 중단되는 상황에서 버스요금 지원이 가능한지 의문을 나타내는 전문가들도 다수였다. 2021년 1조 원까지 늘었던 지방세 수입이 부동산 경기 위축에 타격을 입으면서 김포시는 지난해 말 ‘세수확충방안마련 실무추진단’까지 꾸릴 만큼 세수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배강민 김포시의회 의원은 이달 1일 본회의에서 “시정에 시행착오가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된다”며 충분한 검토 없는 정책이 남발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충분한 검토 없이 처방전을 성급히 내놓았다가 실효성과 예산 문제로 단기간에 정책을 철회한 곳은 김포시만이 아니다. 서울시도 4월 김병수 김포시장이 제안한 김포~여의도 간 수륙양용버스 운영을 검토했다가 4일 만에 철회했다. 버스 한 대 가격이 20억 원으로 일반 버스 대비 20배에 달하는 데다 수송 인원과 속도도 기대에 못 미쳐 경제성·실효성이 낮다고 판단됐기 때문이다. 이미 2017년 타당성 조사에서 경제성이 부족하고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분석이 나왔는데도 다시 꺼냈다가 망신만 당했다.
비수도권에서도 이런 상황은 반복되고 있다. 울산시는 의견 수렴 없이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 최종현 SK그룹 회장, 신격호 롯데그룹 창업주 등 작고한 기업인의 조형물 제작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했다가 시민단체와 지역 정치권으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았다. 애초 편성된 250억 원의 예산은 시의회에서 삭감된 후 다시 복구됐지만 반대 여론에 부딪혀 결국 철회됐다.
강원도 원주시는 선로도 없이 관광열차를 구매했다가 유지 보수 비용만 날렸다. 시는 54억 원을 들여 지난해 9월 관광열차 2대를 납품받았지만 선로가 확보되지 않아 1년 가까이 방치되고 있다. 당초 관광열차를 운행하려던 6.8㎞ 선로가 국가철도공단 소유여서 용도 폐기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열차를 정비고에 보관하면서 유지 보수 비용으로만 매년 5000만 원의 혈세가 투입되고 있다.
강원도 춘천시는 지난해 11월 수억 원을 투입해 메리골드 꽃밭을 조성했지만 환경 여건이 고려되지 않은 탓에 한 달 만에 모두 동사했다. 정경옥 춘천시의원은 “동사로 발생한 혈세 낭비뿐 아니라 죽은 식물들을 제거하기 위한 인력 투입 등에 따른 추가적인 예산 낭비까지 있었다”며 “수종 선정 시 주변 환경이나 계절에 적합한 꽃인지 등 전문가의 조언을 받고 날씨 등을 미리 확인했어야 했다”고 질타했다.
최근 경남 거제시도 ‘가짜 거북선’ 폐기로 수십억 원을 날렸다. 거제시는 김태호 경남지사 시절인 2010년 20억 원을 들여 제작한 거북선과 판옥선을 폐기한다고 밝혔다. 거북선 제작에 수입 목재를 섞어 사용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고 바다에 띄웠던 거북선이 가라앉은 뒤 심하게 부식됐기 때문이다. 시가 매각에 나섰지만 낙찰자가 인도를 포기하면서 결국 잿더미가 될 운명에 처했다.
전문가들은 선출직인 지자체장들이 표를 얻기 위해 가시적인 선심성 정책을 쏟아내는 만큼 입법기관 등의 철저한 감시가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배정아 전남대 행정학과 교수는 “지자체에서 주민들이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는 선심성 전시 행정들을 쏟아내다 보니 재정적 결정이 정치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이런 사례가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지방의회나 국회의 견제 역할이 제대로 수행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