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한시적으로 운영됐던 비대면 진료에 ‘호흡기’를 달기 위해 시범 사업을 시행한 지 한 달이 지났다. 정부는 산업계와 소통을 통해 시범 사업을 개선해나가겠다고 밝혔지만 업계의 어려움은 가중되고 있다. 동일 병·의원, 동일 질환 중심의 현행 비대면 진료 시스템은 구축이 어렵고 이용자들의 편의성이 크게 떨어진다는 설명이다. 3년간 비대면 진료 플랫폼을 운영하며 꽃을 피운 스타트업들은 사업 모델을 전환하거나 사업 자체를 속속 중단하고 있다.
3일 관련 업계 등에 따르면 정부의 비대면 진료 시범 사업이 시행된 지 한 달가량이 지났지만 스타트업들의 어려움은 지속되고 있다. 정부는 비대면 진료 시범 사업 현황을 점검하고 개선 방안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비대면진료 시범사업 자문단’을 출범시켰다. 현장 의견을 바탕으로 시범 사업에서 부족한 부분을 보완·발전시켜 비대면 진료의 제도화를 준비하기 위해서다. 다만 업계의 한 관계자는 “실무 회의에서는 각 직역 단체가 자신들만의 주장을 반복해 실질적인 논의가 이뤄지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팬데믹 기간 비대면 진료는 초진부터 허용됐고 약 배송도 가능했다. 하지만 세계보건기구(WHO)가 올해 5월 코로나19 비상사태 선언을 해제한 뒤 국내에서도 코로나19 감염병 위기 경보 단계가 ‘심각’에서 ‘경계’로 하향 조정돼 비대면 진료는 불법으로 전락했다. 정부는 국민 편익을 위해 비대면 진료의 시범 사업을 마련했다. 하지만 시범 사업은 크게 쪼그라들었다. 비대면 진료를 받기 위해서는 우선 병원을 방문해야 한다. 방문한 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던 질병만 비대면 진료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약 배송도 즉시 중단됐다. 진료를 받고 약을 수령하려면 약국을 찾아야 한다. 업계에서는 “비대면을 위해 방문해야 하는 상황 자체가 모순”이라고 지적한다.
지난 3년간 비대면 진료의 상당수는 플랫폼을 통해 이뤄졌다.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비대면 진료 이용자는 2020년 2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총 1379만 명으로 3661만 건의 진료가 이뤄졌다. 하지만 시범 사업 시행 이후 제한적인 허용으로 이용자의 편의성이 크게 떨어졌다. 플랫폼 이용자 A 씨는 “비대면 진료가 왜 제한되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해 보이는데 왜 못하게 하려는 것인가”라고 밝혔다. 또 다른 이용자 B 씨는 “약 배송이 안 되니 너무 불편하다”며 “(배송이 가능한) 약국을 찾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플랫폼의 기술적인 문제도 발생했다. 시스템상 동일 병원에 동일 질환으로 방문했는지 여부를 구분하기 어렵다. 이에 올 5월 원격의료산업협의회는 보건 당국에 시범 사업 설계 과정에서 산업계의 의견을 반영해달라고 호소했다. 장지호 원산협 공동회장은 “시범 사업을 설계하는 데 기술적 실현 가능성과 법률적 쟁점을 검토하기 위해서는 정부 주도를 전제로 이해관계자 간 협의 과정이 필수적”이라며 “비대면 진료 중단으로 국민의 혼란이 야기되지 않도록 현재 수준의 시범 사업을 우선 시행하고 협의 결과에 따라 보완 시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업 전환, 폐업 등이 잇따르며 코로나19 기간 꽃을 피운 스타트업 생태계가 붕괴되고 있다. 비대면 진료 플랫폼인 ‘쓰리제이’는 지난달 9일 비대면 진료 서비스를 중단했다. 쓰리제이는 ‘체킷’이라는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성병 검사 결과를 알려주고 비대면 진료까지 연계했다. 한국에서 ‘앳 홈 테스트’ 시장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또 다른 플랫폼 기업인 바로필은 지난달 30일을 기점으로 비대면 진료 서비스를 순차적으로 종료하겠다고 공지했다. 이달 14일 비대면 진료 등 모든 서비스를 종료하고 같은 달 31일 회원 정보, 진료 정보 등 그동안 축적된 데이터베이스를 일괄 삭제할 예정이다.
정부는 시범 사업이 진행될수록 비대면 진료의 운영이 안정화돼가고 있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시범 사업이 안정되고 있다는 건 결국 비대면 진료를 잘 쓰고 있던 이용자들과 의사들이 불편해서 포기하고 있다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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