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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하면 할수록 적자…이러다 수술 못받는 환자 나올 수 있다"

■정홍근 대한정형외과학회 이사장 인터뷰

정형외과 개원의 10명 중 3명 수술 포기…낮은 수술수가가 원인

도수치료·물리치료 등 비급여 항목 많은 비수술치료로 수입 유지

해외는 물론 타 진료과 비해서도 낮아…종국엔 국민 피해 키울 것

정홍근 대한정형외과학회 이사장이 서울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 제공=대한정형외과학회




“얼마 전 아끼던 제자로부터 작은 동네의원을 열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수술을 더 잘 하고 싶다며 2년간 외상외과 전임의 과정을 밟은 친구라 내심 기대가 컸는데 수술실 없이 주사치료만 한다더라고요. 훌륭한 외과의사가 되겠다는 사명으로 평생을 달려온 후배들이 적자를 견디지 못해 포기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이게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정홍근 대한정형외과학회 이사장(건국대병원 정형외과 교수)은 5일 서울경제와 만나 “정형외과 수술 수가가 터무니 없이 낮다 보니 수술을 포기하는 개원의가 늘어나고 있다”며 씁쓸해 했다. 의사가 부족한 건 둘째치고 수술을 할 수 있는 의사도 수술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게 정 교수의 진단이다.

정형외과에서 수술적 치료는 뗄래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다. 그런데 학회 조사 결과 정형외과 개원의 10명 중 3명을 수술을 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술을 하려면 기본적으로 수술방이 필요하다. 넓은 공간에 수 억원을 호가하는 수술장비와 기기를 구비하고 간호사 등 수술보조인력도 더 많이 고용해야 한다. 한 마디로 원가 자체가 높다. 반면 수술비는 몇 십만 원에 불과하다 보니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수술을 포기한 채 도수치료, 물리치료, 주사치료 등 비수술적 치료만 한다는 얘기다.

정 이사장은 “아무리 간단한 수술도 최소 1시간 이상 소요된다. 하루 8시간을 꼬박 투입한다고 가정할 때 외래 진료를 보며 주사치료를 하는 편이 6~7번씩 수술하는 것보다 4~5배 가량 수입이 많을 것”이라며 “대출을 받아 개원하는 마당에 수술까지 하며 적자를 감당할 수 없으니 이런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고령화로 수요가 급격히 늘고 있는 인공관절치환술의 국가별 수가를 보면 열악한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퇴행성관절염이 생긴 무릎 연골을 제거하고 인공관절로 바꿔주는 인공슬관절치환술의 국내 시술비용은 2022년 기준 424.23달러로 미국 메디케어에 공개된 시술료(1408.3달러)의 약 3분의 1 수준이다. 중국은 인공슬관절치환 시술료가 6996달러로 16배 이상 높게 책정되어 있다. 한국보다 물가가 싸다고 알려진 중국 병원들이 유명 외국 회사에서 들여온 고가의 의료기기를 사용하고 빠르게 선진화가 진행될 수 있었던 이유다.
정 이사장은 “한국의 의료 수준은 일본, 중국보다 앞서 있는 것은 물론 미국에 가서도 더 배울 게 없을 정도로 뛰어나다. 그런데 이게 맞나 의심될 정도로 수술비 차이가 크다”며 “이런 수가 시스템으로는 정형외과 의사들이 수술을 지속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비단 동네의원만의 문제는 아니다. 수술을 받으려면 최소 몇달씩 기다려야 하는 대학병원에서조차 정형외과는 대접을 받지 못한다. 상급종합병원 지정 기준인 전문 진료 질병군 중 정형외과 질환은 3%에 불과하다. 정형외과 수술을 할수록 병원의 중증도가 낮아져 상급종합병원 퇴출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얘기다. 심지어 정형외과는 다른 진료과보다도 수술 수가가 낮다. 수술 시간당 행위 수익을 비교하면 정형외과가 외과의 0.4~0.8배 수준이다.

정 이사장은 “갑상선암 근치적 절제술은 인공관절 치환술보다 적은 시간이 소요되는 데도 비용이 120만 원 내외로 2배 이상 높다”며 “병원 입장에선 수술을 할수록 적자에 중증도마저 낮아지는 정형외과 수술을 달가워하기 힘든 구조”라고 말했다.

이른바 ‘내외산소’(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로 불리는 필수의료 분야에 대한 기피현상이 심화되는 가운데 얼핏 봐서는 정형외과의 위기를 알아차리기 쉽지 않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정형외과 전공의(레지던트) 지원율은 2018년도 163.3%에서 2020년도 187.8%까지 올랐고 2022년에도 182.4%를 기록했다. 그런데 정작 수술을 하려는 정형외과 전문의는 줄고 있다. 수련기간이 끝나고 나면 전임의로 남으려 하지 않는다는 게 단편적인 예다. 병원당 전임의를 5명 이상 뽑을 수 있는데, 전임의가 1명이거나 아예 없는 수련 병원이 절반이나 된다.

정 이사장은 “정형외과는 팔, 다리, 관절 별로 분과가 나뉘고 외과와 비교해도 수술의 종류가 많다. 전임의 2년을 더 한다고 해도 수술을 쉽게 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라며 “지금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환자들이 수술을 제대로 받기 어려운 상황이 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어렵게 쌓아올린 정형외과 수술 실력이 퇴보할 뿐 아니라 피해가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갈 수 있다. 그는 “자칫 동남아시아에서 실력이 낮은 의사를 수입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며 “제로섬 게임을 유도하는 상대가치의 틀을 깨고 고질적인 저수가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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