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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아침에] 자동차는 언제까지 ‘사치재’인가

당국, 車개소세 재정 ‘치트키’로 활용

개소세 만지작거릴 때마다 시장 요동

100% 소득환산에 복지 사각지대도

차를 ‘사치품’ 간주하는 선진국 없어





게임 용어에 ‘치트키’라는 게 있다. ‘속이다(cheat)’라는 단어에서 유래한 치트키는 유저들이 상대방을 속여 게임을 쉽게 이기려 할 때 사용하는 수법을 뜻한다. 추억의 인기 게임인 스타크래프트를 예로 들면 상대방이 어떤 전략을 구사하는지 엿보는 맵핵, 자원의 양을 무한대로 늘리는 미네랄핵·가스핵 같은 것들이다.

재정 당국도 수많은 치트키를 보유하고 있다는 웃픈 얘기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이달 1일부터 인하 혜택이 종료된 자동차 개별소비세다. 당국은 자동차 개소세를 경기 부양과 세금 확보를 위해 상황에 따라 세율을 달리 적용하는 탄력세로 운용해왔다. 개소세는 사치성 물품의 소비 억제를 위해 1977년 특별소비세라는 이름으로 처음 도입됐다. 자동차 개소세를 재정 운용 수단으로 본격 활용하기 시작한 것은 1998년부터다. 당시 외환위기로 위축된 소비 심리를 회복시키기 위해 당국은 개소세를 30% 감면했다. 그 뒤 2015년까지 6차례 이상 개소세 인하와 원상회복을 반복했다. 그러다가 2018년 내수 활성화를 위해 개소세를 30% 감면해 세율을 5%에서 3.5%로 낮췄고 코로나19가 발생하자 1.5%까지 재차 낮췄다. 이어 2020년 7월에는 다시 개소세 세율을 3.5%로 높여 6개월 단위로 찔끔찔금 연장하더니 이달부터 5%로 원상복귀시켰다.

당국이 자동차 개소세를 만지작거릴 때마다 시장은 요동쳤다. 인하 가능성이 흘러나오면 소비자들은 자동차 구매를 늦췄고 매장에는 재고가 쌓였다. 그러다가 인하 혜택 종료를 앞두게 되면 구매자가 대거 몰려 재고가 부족해지는 기현상이 반복됐다. 그때마다 자동차 개소세를 폐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폭발했지만 당국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개소세가 처음 도입됐을 당시만 해도 자동차는 부자들의 전유물이었던 만큼 저항이 크지 않았다. 하지만 46년이나 지난 오늘날 현대인의 필수품이 된 자동차를 오락용 사행 기구, 귀금속, 경마장 등과 동일 선상에 놓고 추가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당국도 이를 모르지 않겠지만 여전히 ‘자동차=사치재’라는 프레임을 고집하며 개소세를 부과하고 있다. 경기 운용과 세수 확보를 위한 주요 수단을 선뜻 포기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자동차가 사치재라는 해묵은 공식의 부작용은 복지 분야에서 더 심각하다. 가장 기본적인 복지제도인 생계급여의 경우 자동차의소득 환산율이 월 100%에 달한다. 25년가량 보유한 2000㏄ 승용차 가액이 150만 원이라면 월 소득 150만 원으로 인정돼 수급자에서 탈락하는 것이다. 100% 소득 환산이 적용되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1600㏄ 이하에 10년 이상 된 자동차 등 극히 일부에 불과하고 그마저도 월 소득환산율이 4.17%(연간으로는 50%)에 달해 탈락 가능성을 높인다. 오죽하면 생계급여를 받기 위해 멀쩡한 차를 팔고 경차로 갈아타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얘기가 나오겠는가. 자동차를 사치품으로 규정하는 프레임이 광범위한 복지 사각지대를 만들고 있는 셈이다.

건강보험도 마찬가지다. 재산에 대한 과도한 보험료 부과로 ‘은퇴 막는 세금’이라는 비판을 받는 건강보험은 4000만 원 이상 차량에 대해 보험료를 부과한다. 이 때문에 은퇴 전에 새 차를 장만해 4000만 원 이하로 가격을 떨어뜨리거나 자녀 명의로 구입해야 할 판이라는 볼멘소리까지 나온다. 이마저도 소득 중심 부과라는 개편 방향에 따라 최근에야 다소 완화된 것이다.

우리나라는 중국·미국·일본·인도에 이은 세계 5대 자동차 생산국이자 세계 3위 완성차 기업을 보유한 자동차 대국이다. 국내 자동차 등록 대수는 2500만 대가 넘는다. 국민 2명당 1명꼴로 자동차를 보유한 셈이다. 이제 일반 국민들이 동의하지 않는 ‘자동차는 사치성 재화’라는 공식을 고집하며 시장을 교란하고 복지 사각지대를 방치하는 낡은 행정은 그만둘 때가 됐다. 선진국 가운데 자동차를 사치재로 간주해 세금을 추가로 부과하거나 자동차 소유자를 복지 혜택에서 제외하는 나라는 없다. 마트 한번 가려고 해도 자동차 없이는 어려운 시대다. 우리가 아끼고 보호해야 할 농어촌에서는 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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