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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상논단]체계적인 디리스킹 전략이 필요하다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

미중 관계개선 노력 성과 적지만

"승자독식 아닌 공정한 경쟁" 표방

韓도 긴호흡의 실사구시 정책 필요

개방성 유지하며 '다변화 전략' 짜야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이 6일부터 나흘간의 일정으로 중국을 방문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을 지낸 실세 재무장관의 중국 방문은 양국 간 경제적 긴장을 완화하고 소통의 폭을 넓힐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지만 결과는 그리 만족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중국은 옐런 장관의 방문을 계기로 미국의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고율 관세 폐지 등 실질적 제재 완화를 기대했으나 옐런 장관은 즉답하지 않았다. 방문 첫날 리창 중국 총리와의 회담에서 옐런 장관은 미국의 대(對)중국 경제정책 목적이 디커플링(탈동조화)이 아니라 공급망 의존도를 낮추는 디리스킹(위험 경감)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또 미국이 승자 독식이 아닌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공정한 규칙에 기반한 건강한 경쟁과 기후변화와 같은 글로벌 과제에서 협력을 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귀국 기자회견에서 국가 안보를 위해 취해진 조치들이 양국 관계를 불필요하게 악화시키지 않도록 중국의 새 경제팀과 내구성 있고 생산적인 대화 채널을 만드는 데 이번 방문의 의미가 있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시진핑 국가주석과의 회동이 이뤄지지 못한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미중 간 관계 개선이 이뤄진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최근 중국이 첨단 반도체 등에 쓰이는 희귀 금속 갈륨과 게르마늄에 대한 수출 통제를 미국의 대중 반도체 수출 통제 완화 카드로 사용하려 한 것과 관련해서도 미국 상무부는 단호한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또 핵심 공급망 탄력성을 구축하기 위해 동맹 및 파트너들과 협력하겠다는 점도 강조했다. 미국은 조만간 인공지능(AI) 반도체 등 첨단 분야 투자 제한 행정명령을 예정하고 있다. 이에 대응해 중국은 갈륨·게르마늄에 이어 전기차, 풍력발전 모터 등의 핵심 원료인 희토류나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광물인 리튬으로 수출 통제를 확대할 가능성까지 내비치고 있다.



그러나 외견상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양국의 입장이 파국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미국의 대중 견제 핵심 기조는 지난해 10월 발표된 국가안보전략(NSS)에 이미 나타나 있다. 조 바이든 정부 외교 전략의 실질적 설계자로 알려진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이 수차례 강조한 ‘좁은 운동장, 높은 장벽’ 전략이 바로 그것이다. 중국과 분리할 건 분리하고 협력할 건 협력하겠다는 것이다. 코로나19를 계기로 적나라하게 드러난 공급망 붕괴, 양극화 심화에 따른 중산층 몰락, 에너지 가격 폭등, 자원의 무기화 등 시장 실패가 수반된 글로벌화의 어두운 면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신자유주의적 기조에서 벗어난 적극적인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전면적 디커플링은 가능하지도 않고 양국 모두 경제적 피해가 크기 때문에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반도체지원법과 같은 적극적 산업 정책을 통해 국내 제조업 기반을 재건하는 것이 미국의 계획이다. 동시에 첨단 반도체, AI, 양자컴퓨터와 같은 민감한 최첨단 기술이 미국과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 우려 국가들로 유출되지 않도록 철저히 핵심 분야 기술을 통제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이 생각하는 중국과의 상생이 무조건적 협력이 아닌 공정한 경쟁을 전제로 한 조건부 상생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옐런 장관이 기자회견에서 밝힌 미국의 입장은 일관성이 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 낀 우리 처지가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속담에 종종 비유되고는 하지만 이는 우리 스스로를 과소평가한 것이다. 미국의 ‘좁은 운동장, 높은 장벽’ 전략을 무시할 수도 없지만 무조건 수용할 필요도 없다. 반도체·2차전지 등 핵심 산업의 제조 능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주변 국가가 아닌 중심 국가로서의 레버리지도 가능하다. 중국에 대한 공급망 재편이 하루아침에 이뤄질 수는 없다. 이념을 내세우기보다는 경제 안보와 경제 발전을 동시에 고려하는 긴 호흡의 실사구시적 정책이 필요하다. 새로운 세계 경제 질서하에서 글로벌 중추 국가로서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서는 개방적인 통상 국가라는 정체성을 지키면서 무리한 탈중국보다는 체계적인 탈위험과 다변화 전략을 수립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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