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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2g 초미숙아 생명' 살린 기적의 손…"인큐베이터 혁신 도왔죠"

살아날 확률 1% 안됐던 사랑이, 病 없이 어느새 5살 돼

신생아 10명 중 1명 이른둥이…'이슬된 아기'에 미안해

부모 목소리 들을 수 있는 '국산 보육기' 개발 이끌어


"우와, 사랑이 몸무게가 많이 늘었네. 엄마가 맛있는 거 많이 해주셨나보다. "

"우리 사랑이 뭐 잘 먹더라. 선생님한테 말씀 드려볼까."

올해 초 서울아산병원 신관 1층에 자리잡은 어린이병원 외래진료실. 정의석 신생아과 교수가 엄마 손에 이끌려 진료실 문을 나서는 이사랑(5·여) 양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아빠 미소를 지었다. 정 교수는 “사랑이를 살리려고 수많은 밤을 지새웠지만 정작 본인은 전혀 기억 못하니 낯설어 하는 게 당연하지 않느냐”며 “6개월에 한 번 정도만 외래에 와도 될 만큼 건강하게 자라난 모습에 오히려 희망을 얻는다”고 말했다.

◇ 열달 못 채우고 세상 밖 나온 이른둥이들…전신 합병증 위험에 노출


정 교수와 사랑이의 첫 만남은 5년 여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랑이는 유난히도 추웠던 2018년 1월 말, 예정일보다 4개월 일찍 세상 밖으로 나왔다. 엄마 뱃속에서 자란 지 6개월 남짓에 불과했던 사랑이의 출생 체중은 302g. 당시 기준으로는 국내에서 태어난 가장 작은 아기였다. 미국 아이오와 대학교가 400g 미만으로 태어나 생존한 신생아를 등록하는 사이트에도 전 세계에서 26번째로 작은 아기로 기록됐을 정도다.

태어난지 이틀째(왼쪽) 300g 남짓 나갔던 사랑이는 서울아산병원 의료진의 집중치료를 통해 3개월 뒤 안정을 찾고 자발적인 호흡이 가능해졌다. 사진 제공=서울아산병원




재태기간(임신주수) 37주를 채우지 못했거나 출생 체중 2.5kg 미만으로 태어난 아기를 일컬어 '세상에 빠른 출발을 했다'는 뜻의 순우리말인 '이른둥이'라 부른다. 출생 체중이 2.5kg보다 낮으면 단순히 저체중이지만 1.5kg보다 낮으면 극소 저체중, 1kg보다도 낮으면 초극소 저출생 체중아로 구분한다. 정식 명칭은 아니나 서울아산병원에서는 500g도 채 되지 않는 이른둥이를 ‘초초극소 저출생 체중아’라고도 부르고 있다.

정의석(왼쪽) 서울아산병원 신생아과 교수가 신생아중환자실에서 인큐베이터에 누워있는 이른둥이를 진찰하고 있다. 사진 제공=서울아산병원


체중은 신생아의 건강상태를 대변하는 가장 중요한 지표다. 체중 1kg 미만으로 태어나는 이른둥이들은 대개 호흡기계부터 신경계, 위장관계, 면역계 등 신체 모든 장기가 미성숙하다. 임신 후기에 이뤄져야 할 발달과정을 거치지 못한 탓이다. 출생 직후부터 신생아 호흡곤란증후군·동맥관개존증·태변 장폐색증·괴사성 장염·패혈증·미숙아망막증 등 각종 합병증 위험에 노출된다. 재태기간과 출생 체중이 작을수록 합병증 발생 빈도와 중증도는 높아지 게 마련. 아무리 작은 주사 바늘도 그 길이가 아기의 팔뚝만 하다 보니 수술은 커녕 인공호흡기·심폐보조기 같은 의료장비의 도움을 받거나 검사를 위한 채혈조차 쉽지 않다.

◇ 수차례 위기 찾아왔지만…‘1%’ 미만 생존확률에 도전


사랑이도 예외는 아니었다. 폐포가 완전히 생성되기도 전인 24주 만에 태어나 출생 직후 소생술을 통해 겨우 심장이 뛸 수 있었고, 기관지 내로 폐표면활성제를 투여 받으며 간신히 호흡을 유지했다. 위기감이 극에 달했던 건 태어난 지 일주일째였다. 몸 속에 머금었던 양수가 빠지면서 체중이 295g까지 떨어진 것이다. 5년 전만해도 국내외를 통틀어 체중 300g 이하에서 생존한 사례는 극히 드물었다. 1%도 되지 않는 생존 확률에 모두가 고개를 저을 때, 주치의인 정 교수는 스승의 가르침을 떠올렸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의 아이여도 우리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치료를 포기하지 말고 하자” 현재 서울아산병원의 신생아과 시스템을 가능케 한 피수영·김기수·김애란 교수가 입버릇처럼 했던 말이다. 서울아산병원 신생아중환자실은 1996년 선제적으로 '24시간 전문의 상주 시스템'을 도입했다. 국내 최초로 신생아 임상전문 간호사제도를 도입한 데 이어 의사, 간호사, 약사, 영양사가 포함된 영양집중지원팀을 운영한다. 이른둥이들에게 개별화된 집중 영양관리를 비롯해 최적, 최고의 치료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정 교수와 신생아중환자실 의료진들은 장장 169일 동안 사랑이의 생존을 위한 집중치료에 매달렸다. 여러 차례 위기상황이 닥쳤지만 사랑이는 단 한 차례 수술 없이 모든 장기가 정상인 상태로 퇴원했다. 그 무렵 사랑이의 체중은 만삭아 평균치인 3kg을 찍었다. 그런 인연으로 정 교수는 신생아과 식구들 사이에서 사랑이의 '병원 아빠'로 통한다.



◇ 저출산에도 이른둥이 비중 매년 늘어…10명 중 1명 꼴로 증가


저출산 인구 절벽 시대에도 이른둥이 출생 비중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 결혼 연령대가 올라가면서 출산연령이 상승한 데다 인공수정·시험관 등 난임시술을 통해 태어나는 이란성 다태아(쌍둥이) 출산율 증가도 영향을 끼쳤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2021년 전체 출생아 26만 500명 중 8.1%(2만 1219명)이 정부의 난임시술비 지원을 받았다. 2006년 전체 출생아 중 난임 시술을 통해 태어난 아이가 1.2%(5453명)에 그쳤던 것과 비교하면 15년 만에 7배 가까이 치솟은 셈이다.

정의석(왼쪽부터) 서울아산병원 신생아과 교수가 사랑이의 퇴원을 앞두고 사랑이, 사랑이 부모님과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사진 제공=서울아산병원


전체 출생아 중 다태아 비중은 2011년 2.9%(1만 3900명)에서 2021년 5.4%(1만 4000명)으로 10년새 2배 가량으로 뛰었다. 자연스레 보통 아이보다 많이 작은 이른둥이도 늘어가는 추세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국내에서 태어나는 전체 출생아 10명 중 1명은 이른둥이로 나타났다. 서울아산병원에서는 최근 5년 동안 500g 미만인 초초극소 저출생 체중아 33명이 태어났고 23명이 생존했다. 생존율로 따지면 66%로 2021년 학술지에 보고된 대한민국 전체 생존율(28%)은 물론 일본 전체 생존율(55%)을 상회한다.

◇ 중환자실 밖 엄마·아빠 목소리 들려주려…국산 인큐베이터 개발


정 교수는 “매년 생존율이 상승하고 있어 보람을 느끼지만 미처 지켜내지 못한 34%의 아이들에게는 여전히 미안하다"고 털어놨다. 그가 해외 제품에 의존해 온 보육기(인큐베이터)의 국산화에 공을 들인 것도 그런 아쉬움에서다. 국내 기업인 JW중외제약(001060)이 최근 선보인 하이브리드 보육기의 개발 자문을 맡은 정 교수는 "이른둥이를 낳은 후 출산의 기쁨을 누리지 못한 채 가슴 아파하던 부모님들이 코로나19 기간 짧은 면회시간마저 갖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움이 컸다"며 "그 대안으로 엄마, 아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가족 중심적 인큐베이터를 만들었다"고 소개했다.

정의석 서울아산병원 신생아과 교수는 어린 아이들이 사회적 구성원이 될 때까지 안심하고 치료 받을 수 있도록 소아청소년과 의료진에 대한 제도적 지원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사진 제공=서울아산병원


조금 일찍 떠나온 엄마 자궁처럼 따뜻하고 촉촉한 환경을 제공한다는 보육기의 본래 취지와도 부합하는 아이디어라 개발 과정에서 전격 반영됐고, 해당 보육기는 최근 상용화돼 원내 도입을 앞두고 있다. 그는 “애써 살려낸 이른둥이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안심하고 치료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려면 고도의 전문성과 시스템 못지 않게 현장 의료진들이 안심하고 일할 수 있는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며 "체중과 관계없이 모든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 하루빨리 갖춰져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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