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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企 10곳 중 4곳 "지키기 어렵다"…중앙회 "최소 2년 유예를"

[중대법 확대 D-6개월-위기의 기업들]

<상> 산업 현장의 절규

고금리·고물가에 경영환경 척박

안전관리자 채용 사실상 어려워

6개월만에 준비해 대응 불가능

외국인 많아 본인 부주의도 큰데

"사장만 책임 묻는건 과해" 비판





경북 경주에서 11명의 직원으로 금속가공 공장을 운영하는 김인수(가명) 사장은 최근 걱정거리가 부쩍 늘었다. 경기가 꺾이고 수주 물량이 줄면서 사업 자체에 대한 어려움이 커졌는데 내년 1월부터 회사가 중대재해처벌법 대상이 돼 관련 준비를 서둘러야 하기 때문이다. 당장 안전관리 전담 인력을 들이는 것부터 쉽지 않다. 생산에 투입될 사람을 채용하는 것조차 빠듯한데 안전 전담 인력 고용은 더 힘들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최근 총무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직원에게 안전관리를 맡겼지만 불안하기만 하다. 업무 부담이 늘어난 탓에 불만이 이만저만 아닌 데다 안전관리에 대한 전문성도 부족해 보이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이 직원이 언제 회사를 그만둘지 모른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내년에 중대재해법 적용 기업이 될 경우 작업 중 사고가 발생하면 김 사장이 고스란히 처벌 대상이 될 수도 있다. 김 사장은 “영세 업체에서는 작은 불만이 생기면 바로 회사를 나가는 경우가 태반”이라며 “업무의 연속성이 떨어지고 맨파워가 약한 중소기업이 중요한 제도 변화를 견뎌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불과 6개월 후부터 중대재해법 대상이 50인 미만 기업으로 확대된다. 해당 중소기업인들 사이에서는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안전관리를 철저히 하자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법에 적시된 요건들을 충족하기가 사실상 힘들기 때문이다. 고금리·고물가로 경영 환경이 더욱 척박해지고 있어 제때에 준비를 마치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에 따라 관련 업계에서는 중대재해법 확대 적용 시기를 늦추고 정부의 체계적인 지원이 선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6일 고용노동부·중소기업중앙회 등에 따르면 내년 1월부터 중대재해법이 새로 적용되는 50인 미만 업체는 약 68만 곳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1년 6개월간 중대재해법 적용 대상이었던 50인 이상 사업장 4만 6000곳보다 10배가 넘는 규모다. 새로 법 적용 대상이 되는 업체들은 사업주, 경영 책임자가 사업장의 안전과 보건을 확보해야 하는 의무를 지게 된다. 이에 사업주는 전담 인력과 관련 예산을 갖추는 등 안전관리 강화 활동을 해야 하며 추후 사고가 났을 때 의무 위반이 드러나면 최대 1년의 징역 또는 10억 원 이상의 벌금 등이 부과된다.

법 적용 대상이 되는 기업들은 대부분 현 상태로는 법을 준수하기 어렵다고 호소한다. 실제 올 5월 중기중앙회가 50인 미만 사업장 250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 40.8%가 내년 1월부터 중대재해법을 지키기는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중기중앙회 관계자는 “전체적인 숫자로 보면 60%가량은 대응이 가능하다고 해석할 수 있지만 해당 기업이 68만 곳에 달하는 점을 감안하면 (40.8%는) 상당한 수치”라며 “단순 수치 계산으로 27만 개 기업의 경영자가 범법자가 될 수 있다는 게 엄연한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업계가 꼽는 가장 큰 애로 사항은 안전 인력 채용이다. 같은 설문조사에서도 의무 사항 중 가장 부담이 되는 조항으로 ‘안전보건 전문 인력 배치(24.4%)’를 가장 많이 꼽았고 ‘안전보건 관련 예산 편성 및 집행(15.2%)’ ‘안전보건관리책임자 등에 대한 업무 수행 평가 기준 마련 및 권한·예산 부여(10.8%)’ ‘위험성 평가 등 유해·위험 요인 확인·개선 절차 마련, 점검 및 필요 조치(5.6)’ 등이 뒤를 이었다.

업계는 50인 미만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처럼 안전 전문가를 새로 채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생산 인력 한 명을 더 뽑는 것도 많은 고민을 해야 하는 곳이 영세 업체다. 결국 대부분의 기업들은 기존 직원에게 안전 업무를 겸하게 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하지만 이 경우 기존 업무 부담도 큰 상황에서 새로운 안전 업무까지 맡는 만큼 전문성 저하와 생산성 하락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직이 잦다는 특성까지 감안하면 실질적 효과가 있겠느냐는 하소연도 나온다. 6명의 직원을 둔 한 석재 가공 업체 대표는 “내년부터 중대재해법이 적용된다는 공문을 받았지만 무엇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아예 모르겠다”며 “안전 직원을 새로 채용하는 것은 말이 안 되고 기존 직원 중 똘똘한 친구에게 맡기려고 하는데 충분한 조치인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전체 인력에서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영세 사업장의 특성도 기업인들을 공포에 떨게 하는 요소다. 외국 인력들과는 언어 소통이 원활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작업 지시도 잘 따르지 않는 경우가 많아 본인의 부주의로 사고가 많이 나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대표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과하다는 게 공통된 의견이다. 서울에서 가구 공장을 하는 장 모 씨는 “영세 중소 업체 사장들은 고령인 경우가 많은데 자신이 처벌 대상이 되는 데 대한 두려움이 큰 것 같다”며 “잘못하면 징역형이 될 수도 있다는데 그럴 바에 차라리 공장 문을 닫는 게 낫지 않겠느냐는 말도 한다”고 전했다.

지난 1년여간 중대재해법 적용을 받은 50인 이상 중소기업들조차 내년 1월부터 50인 미만 기업에 확대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고 본다. 직원이 50명 가량인 씰앤팩의 김민규 이사는 “지난 1년간 철저히 준비했다고 생각했는데도 몇 번의 사고가 발생했다”며 “처벌 위주로 돼 있는 현행법이 50인 미만 영세 업체로까지 확대 적용되면 혼란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법 적용까지는 6개월가량이 남아 있지만 아직까지 아무런 준비가 안 돼 있는 상태에서 안전관리 컨설팅, 담당자 채용, 직원들의 숙지까지 이어지려면 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중기중앙회 관계자 역시 “최소 2년 이상 유예를 연장해 영세 기업들이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더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기업인을 범법자로 만들고 처벌 강도를 높이는 것보다 사업장의 안전을 확보하자는 취지에 맞게 유예 기간 동안 정부 지원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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