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상속을 둘러싼 분쟁의 양상이 변하고 있다. 종전에는 부모가 사망한 이후 유언이 있는 경우 유언의 효력을 다투거나 서로의 특별수익에 대해 다투는 등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부모의 생존상황에서 상속분쟁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추세다. 성년후견제도가 전면적으로 시행된 이후 나타난 현상으로, 제도의 신설 취지와는 달리 부모 생전에 더 많은 재산을 물려받기를 원하는 자녀들의 수단으로 이용된 데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성년후견제도는 기존의 금치산·한정치산 제도를 폐지하고, 보호가 필요한 자의 의사와 능력을 고려해 단순히 재산행위뿐만 아니라 치료, 요양 등 복리에 관한 폭넓고 효율적인 보호를 위한 취지에서 도입된 제도다. 일반적으로 치매로 인해 정상적인 법률행위가 불가능하거나 어려운 경우에 후견이 개시되는 경우가 많다. 후견은 법정후견과 임의후견으로 나뉜다.
현재는 법원에 의해 후견이 개시되는 ‘법정후견’이 주로 이용되고 있는데, 후견인은 피후견인을 대리해 법률행위를 하는 등 피후견인의 재산과 신상을 보호하는 업무를 수행하게 된다. 후견인은 법원에 의해 선임되는데, 주로 배우자나 자녀 등 가족이 선임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해관계인들(피후견인의 잠정 상속인들) 사이의 대립이 극심한 경우에는 중립적 지위에 있는 제3자로 전문가 후견인을 선임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후견이 개시된다고 해서 후견인이 피후견인의 재산을 마음대로 사용하거나, 처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경우를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 법원은 후견인이 피후견인을 대리해 피후견인의 중요 재산을 처분하는 경우 또는 의무만을 부담하게 되는 경우 등 특정한 법률행위에 대해서는 사전에 법원의 허가를 받도록 했다. 후견인의 무분별한 처분 행위 등을 견제하고 감독하는 역할을 하기 위해서다.
부모에 대한 후견 개시가 사망 이후 상속에 관한 분쟁의 종결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법원의 감독, 견제 기능을 통해 적어도 후견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불필요하거나 불명확한 재산의 처분이나 유출을 막을 수 있다. 이와 같은 후견제도의 기능 때문에 일방의 자녀에게 재산이 증여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 다른 자녀들이 부모 사망 후 상속받을 재산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에서 후견제도를 활용하는 것이다. 이처럼 실무상 후견제도가 자녀들의 재산 확보 수단으로 초점이 맞춰져 활용되고 있다고 해서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적어도 후견이 개시되고, 유지되는 동안에는 피후견인의 신상이 후견제도의 범위 내에서 보호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부모의 재산에만 관심이 있고, 부양은 외면하는 일부 자녀들의 행태를 제도적으로 보완한다는 점에서 후견제도의 순기능이라 볼 수 있다. 다만, 법원을 통한 후견은 피후견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진행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따라서 자신이 원하는 후견인을 미리 지정해 계약을 체결하고, 치매 등으로 인한 정신적 제약이 발생하면 그를 통해 후견이 개시되도록 하는 ‘임의후견’을 적극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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