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31일 폐원하는 서울백병원 소속 의사, 간호사들이 폐원 반대 의사를 밝히기 위해 오늘(4일) 오후 거리로 나선다.
이날 인제대학교 서울백병원 교수협의회는 "서울백병원 교수와 일반 직원들이 오후 5시께 병원에서 출발해 2km 남짓 떨어진 ‘가회동 백인제 가옥’까지 가두시위를 벌인 후 기자회견을 진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서울백병원은 백인제 박사가 1941년 백인제외과의원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연 것이 시초다. 백 박사는 현 서울백병원 위치에 의원을 차린 지 5년만인 1946년 12월 모든 사재를 기부해 국내 최초의 민립공익 법인인 ‘재단법인 백병원’을 탄생시켰다. 그가 생전에 거주했던 가회동 소재 가옥은 현재 서울시 민속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82년 역사의 서울백병원이 경영난을 이유로 폐원 수순을 밟고 있는 만큼, 상징성이 있는 장소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는 게 협의회의 입장이다.
실제 백진경 인제대 멀티미디어학부 교수 등 백인제 선생 후손들과 서울백병원 구성원들은 폐원 반대 이유 중 하나로 '인술제세(仁術濟世?인술로 세상을 구한다)를 백병원 창립 이념으로 내세웠던 백인제 박사도 반대했을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 2004년부터 누적 적자 1745억 원…인제학원 "경영난에 폐원 불가피"
서울 중구에 유일한 대학병원인 인제대학교 서울백병원은 지난 6월 폐원을 공식화했다. 학교법인 인제학원에 따르면 서울백병원은 지난 2004년 73억 원의 손실이 발생한 이래 줄곧 적자를 지속하면서 경영난에 시달려 왔다. 적자 폭을 줄이기 위해 태스크포스를 가동하며 방법을 강구해 봤으나 누적적자가 1745억 원에 달해 더이상 버티기 힘들다는 게 재단 측 입장이다. 인제학원 관계자는 "2004년 중앙대필동병원에 이어 2008년 이대동대문병원, 2011년 중앙대용산병원, 2021년 제일병원 등이 그랬듯 도심 공동화 현상으로 주변 거주 인구가 줄고 인근 대형병원들로 환자가 쏠리면서 경영상태가 악화일로를 걸었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의료 공백이 우려된다며 병원 부지를 도시계획시설 중 하나인 '종합의료시설'로 지정하겠다고 선포하고, 서울백병원 교수협의회와 일반 직원들이 비상대책위원회를 발족하는 등 폐원을 막기 위해 부단히 애썼지만 소용 없었다. 지난달 7일 '8월 31일부로 환자 진료를 종료하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병원 측은 원내 공지와 전화, 문자 메시지를 통해 외래 및 입원, 예약 환자를 대상으로 진료 종료일과 함께 진료 및 각종 서류발급 관련 사항 등을 안내하고 입원 중인 환자들에게 타 병원 전원 등을 지원한지 한달이 되어간다. 수련 중이던 인턴들은 형제 백병원 또는 타 병원으로 이동을 시작했고, 사업체 검진, 임상 연구 등 진행 중인 사업도 다른 백병원으로 이관 중이다. 그로부터 일주일 가량 지나서는 '의사 직군을 제외한 서울백병원 직원 330명을 9월 1일자로 부산백병원 또는 해운백병원으로 발령하겠다'고 통보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 일방적 폐원 통보에 "환자 5000여 명은 전원 조치도 어려워…이게 맞나"
그럼에도 서울백병원 교수와 직원들이 가두시위에 나서기로 한 건 재단 및 병원 경영진들과 정상적 대화가 불가능하다는 판단에서다. 조영규 서울백병원 교수협의회장(가정의학과 교수)은 서울경제와의 통화에서 "가능하다면 폐원을 막고 싶은 마음이 크다. 폐원이 불가피하다면 최소 세 달 정도는 진료를 유지해야 하는데, 두 달도 남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폐원 시점을 못박는 경우가 어디 있느냐"며 "타 병원 전원을 위해 진료의뢰서를 받지 못한 환자가 아직도 5000명이 넘는다"고 토로했다.
조 회장에 따르면 일방적인 폐원 통보를 받은 건 비단 환자들과 시민들 뿐만이 아니었다. 진료과 소속 교수들은 물론 간호사 등 내부 직원들조차 공지 문자를 통해 진료 및 운영 종료 일정을 접했다는 것이다. 이제 폐원까지 한달도 채 남지 않으면서 일반노조는 인제학원과 부산 지역 전보자에 대한 지원과 상계·일산백병원 충원 가능 인원 등에 대한 논의에 속도를 내고 있다. 반면 의사직 대상으로는 인사 발령 계획에 대한 언급조차 없는 상태다.
조 회장은 "경영진이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사이 교수들은 개원을 준비하거나 다른 병원으로 옮기는 등 뿔뿔이 흩어지고 있어 정확한 사직 규모를 파악하기조차 힘들다"며 "(이번 가두시위는) 재단의 일방적인 폐원에 반대하는 구성원들의 의지를 보여주기 위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현재 서울백병원 구성원들은 폐원 금지에 관한 가처분 신청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계획이 구체화되면 기자회견 등을 통해 공개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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