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군수사령부 소속 군무원 A 과장(서기관)이 장병의 생명과 직결된 ‘방탄 헬멧’ 수십억 원어치를 구매하는 과정에서 선검사 요건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고 허위 검사 보고서를 제출한 것으로 드러나 감사원이 정직의 중징계를 요구했다.
감사원은 8일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한 ‘방탄 물품 획득 사업 추진 실태’ 감사 보고서를 공개했다. 올 5월 발표된 ‘장병 복무 여건 개선 추진 실태’ 감사에서 성능 미달의 방탄복 5만 벌이 군에 보급됐다는 결과가 나온 지 석 달 만에 또다시 군의 방탄 물품 부실 관리 실태가 적발된 것이다.
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육군본부는 2021년 12월 경량 방탄 헬멧이 ‘선납품·후검사’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해 예산을 쓰지 못할까봐 방위사업청에 선납품·후검사를 요청한 것으로 조사됐다. 선납품·후검사는 국가 재난이나 해외 파병 지원 등 긴급 소요일 경우에만 해당된다.
특히 A 과장은 경량 방탄 헬멧에 위장포 탈부착을 위해 붙어 있는 벨크로(찍찍이)를 제거한 뒤 방탄 성능 시험을 해야 한다는 의견을 무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벨크로를 붙인 채 시험을 지시한 것이다. 이에 성능 시험을 실시한 미국 방탄 성능 시험 기관(NTS)은 헬멧 외부의 벨크로 때문에 함몰 깊이를 잴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A 과장은 재시험 등의 대책을 찾지 않고 상급자에게 ‘모든 성능 항목이 충족된다’고 보고했다. 이후 완제품 검사 결과서까지 허위로 작성해 ‘적합’으로 판정, 육군본부에 통보한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원은 해상·상륙작전을 수시로 진행하는 해군과 해병대원에게 지급되는 방탄복의 문제점도 확인했다. 바닷물이 들어갔을 때 성능이 떨어지는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감사원은 방탄복 구매 요구서에 해수 침투 시 저항 관련 성능 기준을 포함하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통보했다.
심지어 각 군에서 방탄 헬멧과 방탄복 등을 보급한 뒤 사람 눈으로만 교체 여부를 점검하는 주먹구구식 업무 처리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때문에 해병대 예하부대에는 20여 년 전에 납품된 부력 방탄복이 활용되거나 구멍이 나 방수 기능이 훼손된 방탄복이 여전히 사용되고 있어 감사원은 제대로 된 유지·관리 방안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육군과 해군·해병대의 방탄복은 9년까지 쓰게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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