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중등교원을 대상으로 사용후핵연료 문제를 강의할 기회가 있었다. 강의 끝에 나온 질문들은 어느 자리에서나 반복되는 걱정들이다. 사용후핵연료와 같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을 안전하게 묻을 수 있는 곳이 있겠느냐, 우리나라도 지진이 빈번해지는 데 과연 문제가 없는 것이냐, 활성 단층은 어떻게 피하느냐와 같은 질문이다. 좀 더 깊게는 적어도 10만 년 동안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걸 어떻게 장담하느냐다.
지구상에서 원전이 가동되기 시작한 이래 과학자들은 이 문제 해결을 위해 국제적으로 협력하면서 기술을 개발해왔다. 각국 정부와 전담 사업자는 국민들과 꾸준한 대화를 통해 후손들에게 짐을 떠넘기지 않고 우리 세대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넓혀왔다. 핀란드가 가장 먼저 결정질 암반에 처분장을 건설했고 2025년부터 폐기물을 처분할 것이다. 스웨덴은 지난해 같은 암반에 건설 허가를 얻었고 프랑스는 올 1월 점토층에 건설 허가를 신청했다.
모든 나라가 채택하는 최상의 처리 방법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을 튼튼한 용기에 담아 적합한 암반의 깊은 곳에 묻는 것이다. 국제기구와 전문가들은 1980년대 말부터 이 방법의 장기적 안전성을 주장해왔다. 엄격한 인허가 심사를 거쳐 처분장 운영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이 이의 타당성을 입증한다.
땅속에 묻는 방법이 안전할지에 대한 질문에 답하자면 이렇다. 우리 국토에는 결정질 암반이 곳곳에 분포하고 깊은 곳에서는 지하수가 10만 년 동안 수백 m를 흐르지 못하기 때문에 처분에 필요한 안전성은 여유 있게 확보할 수 있다. 우라늄과 같은 물질이 땅속에서 움직이려면 지하수에 녹아 이동하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진은 땅속의 단층이 움직일 때 발생하는 현상이어서 활동성 단층 바로 위에 처분장을 짓지 않는 한 피해를 볼 가능성은 없다. 암반 자체가 워낙 견고해 500m 깊이에서는 지진동(지진의 움직임)이 지표보다 4분의 1 정도로 줄어들고 폐기물 용기는 암반에 묻혀 있기 때문에 상대적인 충격이 가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암반 조건에서는 활동성 단층이 없고 지하수의 흐름이 느린 결정질 암반을 고려하는 것이 최선이다. 우리도 이제 늦어질 대로 늦어진 적합지 선정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국회는 그 절차를 담은 특별법 제정 논의를 계속하고 있으며 발전 사업자는 초읽기에 몰린 원전 내 임시저장시설의 확충 작업에 착수했다. 이 시설에 대한 지역사회의 우려는 처분장 부지가 정해져야 해소되겠지만 법률적 토대를 우선 마련하면 숙제 해결을 위한 첫 단추를 끼우는 셈이다.
지상시설에서 안전하게 저장했다가 지하 깊은 곳에 처분하는 기술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산업통상자원부·원자력안전위원회가 공동의 책임과 목표를 가지고 ‘사용후핵연료관리핵심기술개발사업단’을 설립해 개발하고 있다. 이 국책사업에는 4개 주관연구기관, 대학과 산업체 등 44개 참여기관, 해외 10여 개 유관기관 등 700여 명이 특별한 사명감을 가지고 기술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이 문제 해결을 위한 한 발 떼기가 참으로 쉽지 않지만 우리 세대에서 해결할 수 있도록 핵심 기술을 차질 없이 준비해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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