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통계 안 잡히는 전세보증금, 가계대출에 넣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조지원의 BOK리포트]

개인간 주고받은 전세보증금 천조 추정

가계부채 넣으면 GDP 대비 비율 130%↑

스위스·호주 제치고 과다 부채 1위 등극

전세보증금 빼면 부채 심각성 축소 주장

굳이 신인도에 영향 줄 필요 없다 의견도

전세보증금, 금융·실물경제 영향 불분명

서울 송파구 한 부동산에 전세 관련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올해 1분기 말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01.5%로 집계되는 가운데 여기에 800조~1000조 원으로 추정되는 개인 간 전세보증금까지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전세라는 우리나라만의 특수한 제도를 빼놓는다면 가계부채를 과소평가해 적절하게 대응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반면 전세보증금이 소비 등 실물경제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될지 알기 어려운 상태에서 이를 포함하면 오히려 과대평가해 대외신인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반박도 나온다. 개인끼리 주고받은 전세보증금이 금융 시스템에 영향을 주게 될지, 나아가 소비 등 실물경제까지 파급 효과를 미칠 지에 따라 판단할 문제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의 한 은행 대출 창구 앞. 연합뉴스


박상현·김명실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28일 발표한 ‘빚 청구서가 날아오고 있다’ 보고서를 통해 기존 가계부채 국제통계에 집계되지 않는 전세보증금을 포함한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을 135.3%로 추산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발표한 2022년 말 전세보증금을 합친 전체 가계부채 규모 2925조 3000억 원을 기준으로 한 수치다. 여기엔 가계부채 통계에 포함되지 않는 전세보증금 1058조 3000억 원이 포함돼 있다.

김세직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가 최근 언론에 기고한 내용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우리나라 전세와 준전세 보증금 부채 규모를 851조 원으로 추정된다. 김 교수는 2021년도 큰 변화 없을 것으로 가정하고 가계신용 1862조 원을 합친 결과 2713조 원으로 계산했다. 이 경우에도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30%를 넘는다.

2021년 기준 OECD 31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 한국A는 전세보증금 포함, 한국B는 전세보증금 미포함 기준. 사진제공=한국경제연구원


현재 국제결제은행(BIS)을 통해 공개된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지난해 4분기 기준 105.0%다. 우리나라가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30%대로 높아진다면 현재 3위에서 1위 스위스(128.3%), 2위 호주(111.8%)를 제치고 조사대상국 중 가장 높은 수준으로 올라선다. 영국(83.5%), 미국(74.4%), 일본(68.2%) 등 주요국과의 격차는 더 크게 벌어진다. 올해 1분기엔 101.5%까지 낮아졌다고 하지만 전세보증금 추정치를 합친다면 결과는 비슷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말하는 전세보증금은 임차인이 자기 자본으로 집주인인 임대인에게 제공하는 경우를 한정한다. 전세보증금은 개인 간 거래에 해당하는 사적 부채로 전세제도 자체가 우리나라에만 있는 특수한 제도이다 보니 국제통계엔 빠져 있다. 임차인이 금융기관으로부터 받아서 임대인에게 제공하는 전세자금대출은 기존 가계부채 통계상 주택담보대출 안에 이미 포함돼 있다.

전세보증금이 일정 부분 부채 성격을 지니고 있으나 정책기관이 이를 가계대출 통계로 포함해서 봐야 하는지를 놓고선 오랜 논란이 있었다. 아직 학계에서 합의된 바도 없다. 여기서 살펴봐야 할 것은 두 가지다. 전세보증금이 금융시스템에 영향을 주느냐, 또는 민간소비 등 실물경제에 영향을 주느냐다.

서울의 한 재건축 단지에서 작동 중인 크레인 모습. 연합뉴스




먼저 가계대출 통계에 넣어서 봐야 한다는 측면에선 전세보증금이 사실상 임대인들의 부채인데 공식통계에 반영되지 않아 가계부채를 과소평가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경연은 올해 3월 발표한 자료를 통해 “전세와 반전세는 한국에만 있는 제도로 전세보증금은 사실상 임대인인 가계(household)들의 부채이지만 현재 가계부채 관련 공식 국제통계에는 전세보증금이 미집계돼 있다”고 했다.

김세직 교수도 2018년 ‘한국의 전세금융과 가계부채 규모’ 논문을 통해 전세보증금이 직접금융 형태인 만큼 가계부채에 포함해야 한다고 했다. 논문에 따르면 김 교수는 “전세 부채를 고려하지 않고 금융기관으로부터의 간접부채만으로 가계부채의 총량을 추정하면 가계부채 문제의 심각성을 크게 과소평가할 수 있다”며 “그 결과 적절한 위기 예방 정책을 실시할 시점마저 놓쳐버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번에 보고서를 낸 하이투자증권도 “가계부채가 적정 수준을 넘어서면 과도한 채무부담으로 인해 가계소비가 오히려 위축되고 실물경제 성장세를 제약하는 등 부채의 부정적 효과가 순기능을 상회하게 된다”며 “현재 GDP 대비 105%(전세보증금 미포함)~135%(전세보증금 포함) 수준을 보이는 한국의 가계부채 수준을 정상적 상황으로 보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2002년 4분기부터 2023년 2분기까지 가계신용 잔액 추이. 2020년 2분기 464조 7000억 원에서 올해 2분기 기준 1862조 8000억 원으로 늘었다. 자료=한국은행 스냅샷


다만 전세보증금을 가계부채로 포함해서 보는 것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많다. 한국은행 등 당국이 GDP 대비 가계부채 지표를 보는 것은 과다 부채가 금융 시스템에 영향을 주게 될 것인지를 살펴보고 여기서 실물경제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주게 될 가능성이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전세보증금은 특성상 금융이나 실물경제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는지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단순히 부채 비율 수치만 높이는 효과에 그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00%에서 갑자기 130%대까지 급등한다면 의도치 않게 대외신인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우리나라는 이미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00%를 넘는 높은 수준으로 전세보증금을 포함하나 안 하나 부채가 경제에 부담이 된다는 사실엔 큰 변함이 없는데 굳이 의도치 않는 부작용을 감수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학계에서는 통상적으로 가계부채로 인한 성장 둔화가 발생하는 기준을 GDP 대비 80%로 보고 있다. 이를 넘는다고 해도 성장이나 금융에 미치는 영향이 비례해서 늘어난다는 연구 결과가 없다. 전세보증금 특성상 자산가격 하락이나 소득 감소, 금융기관의 신용공급 축소 등 위험에 노출된다고 보기도 어렵다.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 연합뉴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임대인 입장에서 전세보증금은 이자를 내지 않는 돈이기 때문에 그로 인해 소비가 위축될 일이 없다”며 “반대로 임차인 입장에서도 전세보증금은 이자를 포기하는 대신에 주거 서비스를 받기 위해 소비 지출을 하는 셈이라 내수에는 큰 영향이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또 개인끼리 주고받는 전세보증금은 금융기관을 통해서 빌린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금융 시스템과의 연관성은 거의 없다는 평가다. 다만 역전세나 깡통전세 등으로 보증금 반환 위험이 커질 경우엔 금융안정에 영향을 줄 가능성은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제학자는 “미국이나 유럽 등 해외에서도 일부 사적 부채가 있으나 이를 통계로 넣지 않는데 우리만 굳이 넣을 이유는 없다”며 “금융기관을 통해 발생한 대출만 보더라도 가계부채가 이미 심각한 수준이라 대응 수준이 달라질 가능성도 크지 않다”고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다.

※ ‘조지원의 BOK리포트’는 국내외 경제 흐름을 정확하게 포착할 수 있도록 한국은행(Bank of Korea)을 중심으로 국내 경제·금융 전반의 소식을 전합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