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최대 규모의 장학재단을 설립해 1조 7000억 원을 기부한 이종환 전 삼영화학그룹 회장이 13일 별세했다. 향년 99세.
1924년 경남 의령에서 태어난 고인은 마산고를 졸업한 뒤 일본 메이지대 경상학과를 2학년까지 다니고 학병으로 끌려갔다. 소련·만주 국경과 오키나와를 오가며 사선을 넘나들다가 해방을 맞았다.
광복 이후 정미소 사업과 동대문시장 보따리 장사를 거쳐 플라스틱 제조업으로 눈을 돌렸고 1958년 사출기 1대로 삼영화학공업사를 차렸다. 플라스틱 바가지·컵·양동이를 만들어 팔았다. 이어 포장용 필름 사업에 뛰어들어 성공을 거두자 기술 개발을 통해 과자·라면 포장지, 투명 포장지 등 고난도 합성포장재 생산에 도전했다. 음식물을 싸는 투명 랩을 최초로 개발한 것도 삼영화학공업이었다.
거대 송전탑에 매다는 초초고압 애자 개발에도 도전했다. 이 회장이 세운 ‘고려애자’가 세계에서 네 번째로 초초고압 애자를 생산했고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것을 100% 국산화했다. 아흔을 바라보던 2009년 선박용 대형 디젤엔진 생산에도 뛰어들어 중공업 분야로 사업을 확장했다. 삼영중공업 등 10여 개 회사를 거느린 삼영화학그룹으로 발전시킨 ‘창업 1세대’ 기업인이었다.
2000년 6월 장학재단을 통한 재산의 사회 환원을 결정했고 2002년 4월 설립한 관정이종환교육재단에 지금까지 1조 7000억 원을 쾌척했다. 자산 규모로 아시아 최대의 장학재단이다. 고인은 장학재단을 만든 이유를 “돈을 움켜쥐고 있자니 걱정만 커졌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앉는 일도 많았다”며 “그러다가 기부를 결정하고 나니 얼마나 마음이 편안해졌는지 모른다”고 설명했다.
2014년 600억 원을 기부해 서울대 관정도서관을 헌정하면서 서울대 사상 최대 기부액을 기록했다. 고인은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2009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고 2021년에는 제22회 4·19문화상을 수상했다.
유족으로는 장남 이석준 ㈜삼영 대표이사 회장 등 2남 4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이며 발인은 15일 오전 8시 30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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