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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 부동산엔 왜 '소비자 보호'가 없나

이혜진 건설부동산부장

생활형숙박시설 주거 불가능한데도

제대로 된 정보 없이 '불완전 판매'

수분양자 이행강제금·값하락 고통

'금융'처럼 소비자 보호 방안 시급


국토교통부가 지난달 25일 생활형숙박시설(생숙)을 준주택으로 허용하지 않고 숙박업 신고 의무를 원칙대로 부여하겠다고 밝힌 후 국토부 홈페이지에는 수백 개의 댓글이 올라왔다. “오피스텔처럼 홍보해 당연히 주거가 가능할 것으로 알고 분양받은 사람이 태반입니다. 수분양자 중 60대 이상도 많은데, 생숙에 대해서는 당연히 모르고요.” 생숙이 주거용 오피스텔처럼 이용할 수 있다는 안내를 받고 분양 계약서에 사인을 했는데 이제는 주거가 불가능해져 값도 떨어지고 이행강제금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는 내용이 상당수다.

사실 생숙은 태생부터 주거가 불가능한 시설이었다. 2021년 뒤늦게 정부가 숙박업 신고 의무 규제 카드를 꺼냈지만 그러한 의무가 있든 없든 원칙적으로 주거용으로 사용하면 안 된다. 그런데도 부동산 개발 회사, 분양 대행사들은 ‘주거용으로도 쓸 수 있다’고 홍보했고 수분양자들도 이 같은 감언이설에 분양을 받았다. 고가의 수익형 부동산 상품을 팔면서도 부정확한 정보를 제시한 것이다. 문제가 되고 있는 생숙은 9만 6000실에 이른다. 수억 원에 달하는 분양가를 고려하면 수십조 원어치의 상품이 제대로 된 정보 제공 없이 팔렸다는 얘기다.

만약 이런 일이 금융권에서 일어났다면 어땠을까. ‘불완전 판매’로 규정돼 당국의 철퇴를 맞고 책임 정도에 따라 배상 결정이 났을 것이다. 판매 회사는 물론 직원들도 징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을 것이다. 소비자에게 상품의 구조, 원금 손실 여부, 상품의 위험성 등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팔면 이는 ‘불완전 판매’ 행위이며 처벌 대상이다.

그런데 부동산 시장에서는 불완전 판매가 비일비재하다. 생숙만의 일은 아니다. 지하철이 몇 년도까지 뚫린다, 길이 난다고 홍보하며 팔아먹은 아파트와 상가·오피스텔이 전국에 넘쳐난다. 위례신도시 입주민들은 심지어 1인당 1400만 원이 넘는 교통분담금을 내고 아파트를 분양받았는데 계획을 발표한 지 15년이 흘렀음에도 지하철 개통 시기는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또 중도금 대출금리가 4~5%대면 가능하다는 상담사의 얘기를 듣고 계약했는데 실제로는 7~8%대의 이자 고지서를 받아들고 당황한 이들도 적지 않다. 불가능한 임대 수익률을 확정적으로 올릴 수 있는 것처럼 홍보하고 판매한 지식산업센터, 분양형 호텔, 상가, 오피스텔이 수두룩하다. 전세 사기도 신축 빌라 건축주와 분양 컨설팅 업자가 짜고 농간을 부려 피해가 발생한 사건이 전체의 약 25%에 달한다.

물론 부동산 분양에 규율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나마 주택은 ‘주택 공급에 관한 규칙’에 따라 입주자 모집 승인, 공고문, 청약홈 등을 통해 소비자 보호 장치를 잘 갖추고 있는 편이다. 그러나 빌라나 수익형 부동산은 상대적으로 소비자 보호가 취약하다. 각각 건축물 분양에 관한 법률, 산업 집적 활성화 및 공장 설립에 관한 법률, 관광진흥법 등으로 분산돼 규율되고 있지만 분양 대행에 대한 별도의 규정이 없는 등 허점도 많다.



국민 자산의 양대 축은 부동산과 금융이다. 그중에서도 우리나라는 부동산을 포함한 비금융자산 비중이 2022년 기준 64%로 다른 나라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다. 게다가 선분양이 일반화돼 있다는 점에서 부동산 소비자에 대한 각별한 보호 장치가 필요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부동산 시장과 금융시장에서 소비자 보호 규제는 천양지차다.

지난 10여 년간 부동산 자산 가격 급등기에는 허위·과장 분양 광고에 넘어가 매입을 하게 된 경우라도 어쨌든 돈이 됐기에 소비자의 피해도, 불만도 적었다. 그러나 고금리로 인해 거품이 꺼진 뒤 소비자 보호 장치들의 미비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나마 최근에 부동산분양대행업자에 대한 규제와 전문성 제고를 위한 법률 제정안이 국회에서 논의 중이라고 한다.

이제라도 부동산 시장에 체계적인 소비자 보호 방안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머지않아 제2의 생숙, 전세 사기 사태를 맞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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