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환 공포증을 일으키듯 구멍이 송송 뚫려 바닷속에 자리잡고 있는 커다란 물체는 다름 아닌 방파제다.
이 방파제는 높은 파도나 태풍, 해일 등의 높이와 강도를 줄여주는 일종의 인공 암초로서 기후변화로 인한 침식 현상을 완화해 줄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호주의 디자인 회사 리프 디자인 랩이 개발한 이 장치는 기후변화로 잦아진 태풍이나 해일 등으로부터 해안가를 보호하고 침식 등으로 인한 지형 변화도 막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 침식완화 장치는 너비 2m, 무게 1800㎏의 조형물로, 상단은 좁고 아래로 갈수록 넓어지는 구조다. 원기둥 모양의 직선형에 수면 위로 노출돼 있는 일반적인 방파제들과 확연히 구별된다.
주로 해저 바닥 모래에 고정하는데 파도가 해안에 닿기 전 이 장치를 통과하며 부서지도록 설계됐다. 부두, 항구 등의 벽면에 붙일 수도 있다.
겉 표면에 구멍이 나고 속이 빈 구조는 방파제뿐 아니라 해양 생물들의 서식처의 역할을 한다. 홍합이나 굴 등 어패류가 침식완화장치에 붙어 자랄 수 있기 때문이다. 작은 해양 생물들도 몸을 숨길 수 있다.
실제 지난해 10월 호주 빅토리아주 앞바다에 침식완화장치 46개가 설치됐는데, 약 1년이 후인 지난 13일 여러 어패류와 산호 등이 서식하고 있다고 리프 디자인 랩은 밝혔다.
회사 측은 “해양 생물다양성 회복을 돕기 위한 것”이라며 의도된 설계라고 말했다.
속이 비어있는 디자인은 제작 과정에서도 친환경적이다. 필요한 재료를 크게 줄일 수 있어서다. 뿐만 아니라 굴 껍데기 등 폐기물을 혼합해 콘크리트 함량을 낮췄다.
독특한 외형과 해양 생물들이 모여드는 특성 덕에 레저 활동에도 활용된다. 회사 측은 방파제가 물에 잠길 때에는 스노클링을, 수면 위로 드러날 때에는 천연 암초처럼 탐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침식완화장치는 현재 호주 빅토리아주 포트 필립 베이, 클리프턴 스프링스, 그레이터 질롱시 등에 설치됐다. 향후 5년간 멜버른대 내 국립해안기후센터에서 멸종위기의 산호초 등 해양생물의 서식지로 기능할 수 있도록 모니터링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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