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반도체 제재 강화에 신음하는 중국이 대안 마련에 고심이다. 네덜란드 ASML로부터 반도체 장비 입도선매에 나서는 한편 엔비디아 인공지능(AI) 칩 대안으로 화웨이 칩을 대량 구매하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다음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 중 미국 주요 기업 대표들과 만찬을 계획하는 등 제재 회피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8일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10월 중국의 대 네덜란스 수입이 전년 동기보다 29.5% 급증했다고 보도했다. SCMP는 “10월 유럽연합(EU)과 중국 간 무역 규모가 전년 동기보다 7.5% 줄었으나 네덜란드만은 늘었다”며 “중국이 반도체 공급망에서 가장 중요한 기업 중 하나인 ASML의 첨단 노광장비를 대거 사들이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9월 네덜란드는 내년 1월부터 기존 극자외선(EUV)에 더해 구형 심층자외선(DUV) 장비의 대 중국 수출을 금지하기로 결정했다. 미국의 압력에 따른 결과다. 중국은 즉시 ASML 반도체 장비 사재기에 나섰다. 중국 세관에 따르면 9월 네덜란드로부터 수입한 반도체 장비 규모는 13억 달러로 1년 전보다 1850% 증가했다. 이에 3분기 ASML 매출 중 중국 비중은 46%로 올 1분기 8%에서 급격히 늘었다. 네덜란드 싱크탱크 클링겐다엘 연구소의 렘 코르테베그 선임연구원은 “중국이 손에 넣을 수 있는 모든 ASML 장비를 구입하고 있다”고 했다.
미국 제재에 AI 칩셋 수입이 끊긴 중국은 대안 찾기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당초 제재 유예 기간인 11월 중순까지 대량 수입을 추진했으나 미국이 한발짝 빠르게 10월부터 수출을 막아선 탓이다. 7일(현지 시간) 로이터는 중국 대표 IT 기업 바이두가 화웨이 AI칩 ‘910B’ 1600개를 주문했다고 보도했다. 총액은 4억5000만 위안(약 807억 원)으로 중 60%가 이미 전달됐고 연내 납품이 마무리될 전망이다. 로이터는 “화웨이 910B는 엔비디아가 중국 수출용으로 제조했던 A800·H800보다는 성능이 크게 떨어지지만 중국 내에서 구할 수 있는 가장 정교한 칩”이라며 “미국의 추가 수출 제재로 화웨이가 70억 달러(약 9조1000억 원)의 내수 매출을 확보할 전망”이라고 전했다.
중국 정부도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거액을 투자 중이다. 여기에 내수 판매처까지 확보되며 화웨이를 비롯한 중국 반도체 업계의 기술력 상승 속도는 더욱 빨라질 전망이다. 로이터는 “중국 국영기업들이 외국 기술을 국내 대안으로 대체하며 화웨이 기술 발전 조짐은 더욱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은 제재 대비와 함께 미국 기업 설득에도 나설 것으로 보인다. 블룸버그통신은 시 주석이 오는 11~17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에서 미국 기업 최고경영자(CEO)들과 만찬을 가질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블룸버그는 “시 주석이 중국 투자에 대한 외국 기업의 우려를 진정시키는 데 우선순위를 둘 것”이라고 했다. 당장 중국과의 거래가 중요한 기업을 설득해 미국 내 ‘우군’을 확보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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