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현금이 가장 많은 이들은 이미 일터에서 은퇴한 65세 이상 고령자라는 이야기가 있다. 버블 경기가 가라앉은 이후 30년 이상 물가 하락을 경험했던 이들은 부동산처럼 현금화가 어려운 자산보다 현금 자체를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이는 각종 통계로도 증명된다. 세대주가 65세 이상인 세대 가운데 2억원 이상 저축해둔 ‘현금 부자’가 조사 대상의 40%를 넘었다.
21일 일본 내각부가 지난 6월 발표한 ‘고령사회백서 2023’에 따르면 지난해를 기준으로 세대주가 65세 이상인 가구가 저축한 금액의 평균값은 2414만엔(약 2억 1920만원)으로 나타났다. 또한 저축액을 보유하고 있는 가구의 중앙값은 1677만엔(약 1억 5227만원)이었다. 중앙값 수치는 저축이 아예 없는 가구를 제외하고 현 시점에서 저축한 금액이 낮은 가구부터 차례로 늘어놓았을 때 정확히 가운데에 있는 가구의 저축액을 의미한다.
일본 내각부는 평균 수명 등을 고려해 여유로운 노후를 보내기 위해 필요한 저축액은 2000만엔(약 1억 8161만원)으로 보고 있다. 이를 뛰어넘은 금액을 저축해 둔 세대는 조사 대상의 43%에 달했다. 또 세대원 모두가 65세 이상인 고령 세대 가운데 12.2%는 저축액이 4000만엔(약 3억 6352만원) 이상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를 근거로 내각부는 '65세 이상의 고령자로 구성된 세대 대부분이 일정 규모 이상의 자산 형성에 성공한 사례가 많다'고 추정했다. 다만 응답자 중 21%는 세대당 저축액이 500만엔(약 4544만원) 미만으로 안정적인 노후를 누리기에 다소 부족한 상태로 파악됐다.
백서는 경제적인 걱정이 없는 고령 인구는 조사 대상인 65세 이상 전체 인구 가운데 68.5%에 해당한다고도 밝혔다. 이들 가운데 12.0%는 가계에 여유가 있어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고 답했으며 56.5%는 가계에 여유는 그다지 없지만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고 응답했다. 그러나 응답 내용을 연령대에 따라 구분해보면 다소 차이가 드러났다. 65~74세 연령대에서는 경제적인 생활을 걱정하지 않는다고 답한 비율이 전체의 66.9%였다. 75세 이상에서는 이 비율이 70.3%로 더욱 높게 나타났다. 통상 후기 고령자라고 불리는 75세 이상 고령자들의 경제적으로 더욱 안정적이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이에 대해 현지 매체들은 후기 고령자로 분류되는 세대가 자산을 충분히 축적하는데 성공했거나, 양호한 건강 상태 덕에 장기간 노동을 해왔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일본의 고령자는 대부분 연금이나 저축에 기대어 생활한다. 이번 조사에서 고령자 세대, 즉 65세 이상으로 구성된 세대의 연간 평균 소득은 332만9000엔(약 3022만원)으로 전 가구 가운데 모자세대를 제외한 세대의 연간 평균 소득인 689만5000엔(약 6261만원)보다 눈에 띄게 낮았다. 반면 2명 이상으로 구성된 세대의 저축액을 연령에 따라 분석하면 고령자 세대의 저축액이 두드러지게 높았다. 세대주의 연령이 65세 이상인 세대(1588만엔, 약 1억 4419만원)는 전 세대의 저축액 중앙치(1104만엔, 약 1억원)보다 약 1.4배 가량 저축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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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전문가들은 노후에도 경제적 여유를 즐기기 위한 조건으로 세 가지를 지적했다. 첫째는 건강 유지가 그 무엇보다 우선이라는 점이다. 몸에 부담이 가지 않는 적당한 운동과 정기적인 검진 등으로 건강수명을 늘려야만 여유 있는 노후가 보장된다는 것이다. 건강을 유지할수록 일할 수 있는 기간이 늘고 의료비도 덜 지출할 수 있어서다.
두번째, 근로가 가능한 상태라면 일을 놓지 않는 것이다. 일을 계속하며 수입을 얻고 있다면 저축한 돈을 빼내 쓰는 시기를 최대한 미룰 수 있다는 이유다. 또한 일을 지속하면 사회와의 연결고리를 유지할 수 있는만큼, 건강하다면 자산이 있더라도 파트타임 등으로 근로를 이어가는 것을 추천했다.
마지막으로 노후 자산은 안전성이 높은 예금이나 국채 등에 넣어두되, 리스크가 크지만 자산을 불릴 수 있는 주식 투자 비율도 낮게나마 설정해 두라는 조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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