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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심 5년, 증권맨서 조경관리사로 변신…"계급장 떼고 새 삶"

처음엔 무작정 공사 현장 찾아가 “일 주세요”

무보수 수습, 임시직도 자처하며 경험 쌓아

2021년, 시설 관리사로 퇴직 전 전직 성공


“은퇴 후에는 물러설 곳도, 두려울 것도, 쪽팔릴 것도 없습니다. 무엇이 무섭겠습니까. 일을 가리는 순간 게으름이 찾아옵니다.”

권 씨(58)를 증권맨에서 조경 관리사로 변모시킨 인생 2막의 신념이다. 실명보다 ‘버들치’라는 필명으로 기사에 남고 싶다는 그는 2015년 말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당시 50세였던 권 씨는 27년간 다니던 증권사에서 명예퇴직 한 후 계약직으로 전환했다. 계약직으로 다닐 수 있는 시간은 5년 남짓. 임금이 반으로 줄었고, 인생 2막은 그의 앞에 성큼 다가와 있었다. 취업이나 창업, 전업 투자는 선택지에서 지웠다. 소수만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대신 기능을 택했다. 퇴직 전 5년 동안 ‘기능직 도장 깨기’ 끝에 조경 관리사로 인생 2막을 열었다.

올해 2월 ‘버들치’ 권 씨는 5년 간의 공부 끝에 조경관리사가 됐다. / 사진=권 씨 제공




2016년, 그는 퇴직 전까지 뭐든 배워보자 결심했다. 퇴근 후 평일에는 야간 기술학원, 주말에는 기능학원에 다녔다. 최대 500만 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는 국민내일배움카드를 활용해 건설기술교육원과 서울기술연구원 등에 다녔다. 도배를 시작으로 지게차, 굴삭기, 대형면허, 타일, 건축인테리어, 전기공사, 건물보수, 소방안전관리자, 미장, 조경, 시설관리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배우며 인생 2막 이정표를 세워나갔다. 건축도장기능사, 거푸집기능사, 조경기능사 등 2016년부터 2020년까지 5년 동안 취득한 자격증이 8개에 달한다.

일단 배우고, 몸소 체험한 뒤 가지치기 해나갔다. 지게차나 대형 면허는 진입이 쉬운 대신 임금이 낮았다. 시설관리는 교대 근무가 있어 불규칙한 수면과 생활에 몸이 망가질 것 같았다. 타일과 도배, 굴삭기는 자격증을 딴다고 해도 진입이 쉽지 않았다. 그러다 정착한 분야가 조경 관리다. ‘선택과 집중’ 대신 문어발식 배움으로 ‘선택과 포기’를 반복하며 그에게 맞는 일을 찾아나간 것이다.

“일하고 싶습니다. 허드렛일이라도 좋아요.”


자격증과 일감 확보는 별개다. 기능은 숙련도가 중요한 만큼, 경험이 없다면 취업으로 이어지기 쉽지 않다. 많은 5060이 구직에서 한계와 맞닥뜨리는 이유다. 그는 “기술은 배우기만 해서는 안되고 일거리를 찾아내는 노력도 필요하다”며 “50대와 20대를 중 20대를 채용할 확률이 더 높으니, 기능이 원숙해질 때까지 돈을 덜 받거나, 더 오래 일하는 등 돌파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도 공사 현장에 찾아가 일면식도 없는 타일 업체 사장에게 ‘나를 써달라, 허드렛일이라도 괜찮다’고 간청한 경험이 있다. 그렇게 주말을 활용해 2개월을 따라다니며 타일의 세계를 경험했다. 미장 일을 하던 친구를 주말마다 따라다니며 1년 4개월 무급 수습도 자처했다.

그는 경험을 통해 ‘기능은 배우는 것이 아니라 훔치는 것’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기술을 친절히 알려주는 이는 없었다. “다 경쟁이니까요. 이해관계가 없는 이에게 친절하지 않은 건 어떻게 보면 너무나 당연해요.”

대형 면허를 따고서는 6개월간 야간 스쿨버스 운전자 일도 했다. 지하철 역사 내 소변기, 대변기를 붙잡고 화장실을 보수하는 일도 3개월간 해봤다. 임시직과 단기 계약직, 무보수 수습 등 불안정한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2021년 2월, 시설 관리자로 퇴직 전 전직에 성공했다. 인생 2막 준비 6년 만의 일이다. 6년 간의 경험을 담은 책 <버들치의 인생 2막>을 최근 세출간하기도 했다. 이후 그는 5번 이직해 현재 서울 강남구의 한 아파트의 조경 관리사로 근무 중이다.



아파트 정원을 가꾸는 모습. / 사진=권 씨 제공


이 나이에 이것까지…하지만 계급장 떼면 새 삶


아직 우리 사회는 사무직 선호도가 높고, 기능인에 대한 편견이 남아있다. 하지만 권 씨는 중장년이 기능직에 도전 못 할 이유는 하등 없다고 말한다. ‘나는 못 해’라는 생각이 부끄러움과 두려움의 또 다른 표현인지 잘 생각해 보고, 기능직에 대한 편견을 스스로 깨야 한다는 것이다. 적성을 따지는 배부른 버릇도 버려야 한다.

“기능인이 꼭 씨름 선수 같은 힘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고되긴 하지만 근육이 적응하기까지 일정 기간이 필요한 법이니까요. ‘이 나이에 이런 것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도 이겨내야 하죠. 직장 생활할 때의 계급장을 떼야 합니다.”

편견을 깨고 나면 기능직은 단점보다는 장점이 더 많다. 인기가 덜하기 때문에 젊은 층과의 경쟁에서 유리하다. 몸을 쓰다 보니 만성적인 소화불량과 불면증도 사라졌다. 일자리를 찾고, 오래 일하다 보면 장인은 아니더라도 기능공은 될 수 있다. 일당도 쏠쏠하다. 열심히 일하면 월 300만 원 이상은 가져갈 수 있다.

늦은 나이에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장벽이 높고, 아득하게 느껴질 수 있다. 배워도 미래는 불확실하다. 하지만 권 씨는 그동안의 경험 덕에 당당히 말할 수 있다. “너무 늦었다 생각 마세요. 배움에 늦음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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