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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아침에] 뱀을 풀어라

위험 모르고 안주하는 ‘삶은 개구리’에

日 기업가 “뱀 풀어야 냄비 탈출” 처방

구조 개혁 지체하는 韓도 개구리 신세

尹 뚝심으로 ‘뱀’ 역할 경제 뛰게 해야





​일본 최대의 화학 회사 미쓰비시화학의 고바야시 요시미쓰 전 회장은 집과 사무실에서 개구리를 키웠다. 일본어로 ‘바꾸다(가에루·変える)’와 발음이 같은 ‘개구리(가에루·かえる)’를 키우며 경영 혁신의 의지를 다졌다고 한다. 고바야시 전 회장에게 개구리는 ‘경고’의 상징이기도 했다. 그의 눈에는 시대가 급변하는데도 과거의 명성과 현상에 안주하며 저성장을 이어가는 일본과 일본 기업들이 뜨거워지는 물 속에서 서서히 죽어가는 개구리의 모습과 오버랩됐다. 수년 전 인터뷰에서 그는 “일본이 삶은 개구리가 되고 있다”면서 “‘중국이나 대만에 비하면 선진국’이라는 소리나 할 때가 아니다. 이제 패배를 자각하고 ‘기술 후진국’이 됐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고 쓴소리를 했다.

냄비 속 찬물에 개구리를 넣고 서서히 열을 가하면 개구리는 온도 변화를 느끼지 못한다. 냄비에서 뛰쳐나가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무는 개구리는 삶아져서 결국 죽음을 맞는다. 많은 조직이나 국가가 주변의 위험을 인지하지 못한 채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맞을 수 있다는 경고를 받아왔다. 이른바 ‘삶은 개구리 증후군’이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2009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당시 미국 경제를 삶은 개구리에 비유했다. 환경 운동가가 된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은 기후 온난화에 직면한 인류 전체를 삶은 개구리에 빗댔다.



바깥에서 보면 우리나라도 ‘개구리’ 신세다. 글로벌 컨설팅사인 맥킨지는 2013년 당시 구조적 위기를 감지하지 못하는 한국 경제를 ‘냄비 속 개구리’로 비유했다. 하지만 그 뒤로 10년이 흘렀는데도 개구리는 꼼짝하지도 않고 있다. 구조 개혁은 이뤄지지 않았고, ‘전봇대’와 ‘손톱 밑 가시’로 상징되던 낡은 규제들은 여전히 기업들을 옭아매고 있다. 경제·사회적 활력을 저해하는 저출생도 가속화했다. 맥킨지는 지난해 “이제 개구리를 냄비에서 꺼내야 한다”고 경고했지만 개구리는 여전히 냄비 안에 있다. 그 사이 냄비 속 물은 더 뜨거워졌고 경제 체력 저하와 만성적 저성장은 점차 현실이 돼가고 있다.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1.4%에 그쳐 25년 만에 처음으로 일본에 역전 당한 것이 확실시된다. 올해도 2%대 초반이면 감지덕지인 저성장 흐름이 예상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올해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이 미국(1.9%)보다도 낮은 1.7%로 떨어지는 데 이어 2030년 이후 0%대로 진입할 것으로 봤다. 기업이 처한 현실도 위태롭다.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감당하지 못하는 한계기업이 2022년 기준으로 역대 최고인 42.3%에 달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반도체·디스플레이·2차전지·미래차·바이오·로봇 등 6대 국가첨단전략산업의 수출 시장 점유율은 2018년 8.4%에서 2022년 6.5%까지 하락했다. 호주의 연구소가 공개한 미래 핵심 기술 64개 분야의 경쟁력 순위에서 한국은 한 분야에서도 1위에 오르지 못했다. 53개 분야의 1위를 거머쥔 나라는 얼마 전까지도 우리가 ‘한 수 아래’로 여겼던 중국이다. 혁신에 뒤처져 어느새 글로벌 경쟁력을 잃어가는 모습에서 1990년대 일본의 그림자가 비친다.

윤석열 정부는 노동·연금·교육 3대 개혁과 ‘킬러 규제’ 혁파, 금융·서비스·공공 3대 혁신 등을 통한 성장 동력의 재점화를 역대 어느 정부 못지 않게 강조하고 있다. 최근에는 저성장 탈출을 위해 세계를 선도하는 ‘퍼스트 무버’로의 전략 전환을 선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눈에 띄는 행동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3대 개혁은 국회와 여론의 벽을 넘지 못했고 기업들이 뛸 운동장은 산적한 규제와 불리한 세제 탓에 여전히 기울어져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냄비 속 물 온도는 올라가고 있다. “삶은 개구리에는 뱀을 풀어야 한다.” 고바야시 전 회장의 지론이다. 천적인 뱀에 놀란 개구리가 냄비 밖으로 뛰쳐나가듯이 점증하는 위기에 무뎌진 경제를 일깨우려면 강력한 동인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윤 대통령의 개혁 의지와 뚝심이 한국 경제를 뛰어오르게 할 ‘뱀’이 될 수 있을까. 적기에 뱀을 풀지 못하면 언젠가 ‘경제 위기’라는 원치 않는 독사가 출몰해 경제를 집어삼킬 수 있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뱀을 봐도 뛰어오르지 못할 정도로 무력해진 개구리가 그대로 삶아져 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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