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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반도체 경영진은 일본에서 무엇을 보고 왔을까? [강해령의 하이엔드 테크] <2·식각 편>

사진제공=연합뉴스




정보기술(IT) 시장에 관심 많으신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지난 ‘삼성 반도체 경영진은 일본에서 무엇을 보고 왔을까?’ 1편에서는 삼성전자 HBM 공급망과 연관된 일본 회사들을 살펴봤는데요. 이번 편에서는 낸드 장비 분야에서 일본의 강세를 살펴보면서 삼성 반도체 경영진의 지난달 출장 동선을 계속 추정해보겠습니다.

◇낸드, 더 좁고 깊게 뚫어라 -도쿄일렉트론과 펄스드(pulsed) DC

삼성전자 8세대 236단 V낸드. 사진제공=삼성전자


요즘 반도체 업계에서 낸드플래시 소식은 상대적으로 뜸하죠. 지난해에 이어 낸드 불황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인데요. 그럼에도 삼성전자 내부에서는 상당히 의미있는 낸드 제조 기술 연구개발(R&D)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낸드의 핵심 공정인 고종횡비(HARC) 식각, 그러니까 아주 좁고 깊게 반도체 회로를 뚫는 식각 기술 패러다임 전환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삼성전자는 이 연구를 일본 최대 반도체 장비 회사 도쿄일렉트론(TEL)과 상당히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다고 하죠. 이른바 펄스드(Pulsed)-직류(DC) 또는 '하이브리드 식각' 장비라는 분야입니다. 한번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저장 장치인 낸드플래시 구조입니다. 높다랗게 쌓은 막을 관통하는 ‘채널홀’ 식각이 낸드플래시 공정의 백미이자 고난도 기술입니다. 되도록이면 한방에 많은 층을 뚫는 기술 개발이 낸드 엔지니어들에게 주어진 미션이죠. 사진제공=삼성전자


요즘 낸드플래시는 저장 공간을 200단 이상으로 수직으로 쌓아 만듭니다. 이 200단 이상 초고층 낸드에 제대로 된 저장 공간을 만들려면 '채널홀'이라는 구멍을 수억개 뚫어야 합니다. 낸드의 가장 꼭대기부터 수백단의 층을 통과해 바닥까지를 관통하는 구멍입니다.

낸드 채널홀 공정은 아주 좁고 일정한 지름으로 많은 층수를 될 수 있으면 한번에 뚫어내는 게 포인트입니다. 낸드플래시의 단가와 생산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거든요.

도쿄일렉트론 플라즈마 식각 장비 속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고주파(RF) 전원이 공급해 식각 공간(챔버)에 주입된 가스를 플라즈마화하고, 여기서 발생한 양이온은 웨이퍼로 돌격해 깎아내야할 타깃을 ‘식각’하는 임무를 수행합니다. 이온의 공격적인 움직임은 고종횡비(높이/밑변), 즉 웨이퍼에 좁고 깊은 회로 구멍을 파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죠. 사진제공=TEL, MKS, 구글


그런데 단수가 높아질수록 이 구멍을 한번에 뚫기가 참 어려워집니다. 이 구멍을 뚫기 위해 공격수 역할을 하는 친구가 플라즈마 식각 공간(챔버) 안에서 플라즈마 상태에 이르렀을 때 발생하는 이온(Ion) 알갱이인데요. 다수 층에 구멍을 뚫기 위해 이온이 아래로 향할수록 비실비실해지고 제어하기가 어려워져 결국 끝까지 관통해내는 데 실패하거나, 이상하게 휘거나, 구멍 모양을 울퉁불퉁하게 깎아버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그래서 요즘은 아예 안전하게 두번·세번에 나눠서 구멍을 뚫고 다시 이어붙이는 더블·트리플 스택 방법을 쓰기도 합니다.

그래도 지금보다 훨씬 용량이 큰 낸드를 만들기 위해 기술은 끊임없이 진보해야 하죠. 한번에 좁고 깊은 구멍을 멋지게 뚫어보기 위해 삼성은 도쿄일렉트론과 함께 장비 패러다임 변화를 노립니다. 그게 바로 펄스드 직류(DC) 방식입니다.





이 펄스드 DC의 가장 핵심 키워드는 '마이너스 전압'입니다. 이 이야기를 위해 다시 플라즈마 상태의 이온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보려고 합니다. 채널홀 구멍을 뚫을 때 핵심 공격수가 이온이죠. 결국 낸드 단수가 높아지고 채널홀을 좁고 더 깊게 파려면 이온의 파괴력이 더 커져야 한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이건 마치 고전 컴퓨터 오락인 벽돌깨기 게임과 비슷합니다. 벽돌을 깨는 공(이온)이 아이템을 얻어서 빠르고 강력해질수록, 한번에 더 많은 벽돌을 깰 수가 있는 것과 상당히 유사하죠.

벽돌깨기 게임에서 공의 움직임을 강화하는 아이템 역할이 바로 '펄스드 DC'가 가지고 있는 마이너스 전압입니다. 이온이 칩의 아래로 더욱 공격적으로 전진할 수 있도록 끌어당기고 유도하는 강력한 아이템이죠. 아, 물론 기존에 식각 장비가 이온 움직임을 위해 전력을 얻었던 방식인 교류(AC) 형태의 고주파(RF) 전력만으로도 마이너스 전압을 만들어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치 맥박(pulse)이 뛰듯 쿵쿵 시간차를 두고 전해지는 펄스드 DC의 매운맛 마이너스 전압은 이온의 힘을 훨씬 증폭시켜서 낸드의 채널홀을 더 깊게 파낼 수 있게 합니다. 도쿄일렉트론이 개발 중인 하이브리드 식각 장비의 구조를 아주 간략히 보면 △기존의 RF 전력을 공급해 식각 공간 내부에 플라즈마 상태와 이온을 만든 후 △펄스드 DC로 이온을 칩 아래까지 끌어당길 수 있는 마이너스 전압을 늘리는 흐름으로 전개한다고 합니다. RF와 펄스드 DC 생성기(제너레이터)가 함께 유기적으로 동작하는 거죠. 기존 RF 제너레이터들로만 구성돼 있던 건식 식각 장비와는 다른 전력 플랫폼이 필요합니다.

아킹현상. 사진출처=구글


물론 펄스드 DC를 탑재한 장비의 문제점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RF 에너지가 식각 공정의 전원(電原)으로서 장악을 했던 이유는 펄스드 DC가 RF에 비해 전압이 압도적으로 많이 필요한 에너지원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비슷한 전력(전압 x 전류) 이라도 전압이 상대적으로 많이 가해진다면 반도체 공정이 이뤄지는 공간(챔버) 안에서 불꽃이 튀는 아킹(arcing) 현상이 상당히 심해진다고 합니다. 생산성에 악영향을 주는 부작용이죠.

과연 도쿄일렉트론은 챔버 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 아킹 현상과 같은 치명적 과제들을 극복한 새로운 솔루션으로 1000단 낸드 개발을 목표로 하는 삼성전자 낸드 엔지니어와 세계 기술자들의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을까요? 또 삼성 반도체 경영진은 도쿄일렉트론의 차세대 식각 기술에 대해 여전히 강한 신뢰를 보내고 있을까요.

도쿄일렉트론의 식각 장비. 사진제공=TEL


도쿄일렉트론은 펄스드 DC 외에도 다양한 반도체 장비 제품군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미 또다른 차세대 식각 장비군인 극저온(cryogenic) 에처로도 새로운 식각 패러다임을 제시한 적 있죠. 이외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삼성과 협력하고 있습니다. 최첨단 극자외선(EUV) 공정에서 웨이퍼 위에 바르는 소재인 포토레지스트를 관리하는 이른바 '트랙' 장비는 이 회사가 압도적인 세계 점유율을 보유하고 있고요. 각종 첨단 반도체 공정 분야에서도 미국 유력 반도체 장비 회사들과 비교해 경쟁력이 절대 밀리지 않습니다. 한국에 대규모 연구개발(R&D) 센터 현지화를 진행하면서 삼성, SK하이닉스와의 협력을 모색하고 있죠. 괜히 세계 4대 장비 회사에 드는 것이 아니고 우리나라 반도체 공급망에서 상당히 중요한 포지션을 차지합니다.

이제 다음 3편에서는 EUV 소재와 웨이퍼 업계, 일본 소부장 생태계를 짚어보면서 시리즈 마무리하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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