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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과 '추상' 넘나드는 수묵의 세계

◆박대성 화백 '소산비경'展

가나아트 1호 작가 해외순회 기념

'수묵화의 현대화'로 미국서 호평

하버드·다트머스 등 美4개大와

도록 발간등 한국화 연구도 물꼬

소산 박대성. 사진제공=가나아트




가로 길이만 10미터에 달하는 ‘금강설경’. 오로지 검은색의 먹과 흰 색의 종이만으로 표현했는데도 빛과 색이 느껴져 신비로움을 자아낸다. 전통 수묵을 현대적으로 변용해 동시대 한국화의 세계화를 이끈 소산 소산 박대성(小山 朴大成)의 대표작이다. 한국 수묵화는 달과 눈을 좀처럼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 자리를 비워냄으로써 그 아득함을 표현한다. 박대성 작가는 한국화의 이 독특한 방식에 대해 “미술의 ‘술( 術)’은 기술을 뜻한다. 다들 ‘미( 美)’만을 추구하는데 사실 기술이 없다면 미술이라 할 수 없다”라고 설명했다.

수묵화로 미국을 사로잡은 원로 작가의 국내 전시에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전통 수묵을 현대적으로 변용해 동시대 한국화의 세계화를 이끈 소산 소산 박대성의 ‘소산 비경(小山祕境)’이다. 가나아트의 1호 전속작가이기도 한 박대성은 지난 2년간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LACMA), 하버드대학교 한국학센터, 다트머스대학교 후드 미술관 등 총 8곳의 해외 기관에서 순회 전시를 진행했다. 가나아트는 해외 기관에서 한국 수묵화의 확장 가능성을 보여준 소산의 행보를 돌아보기 위한 취지로 이번 전시를 기획했다.

1945년생인 작가는 한국 산수화의 거장으로 알려져 있지만 추상화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국내 미술 시장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해외에서는 다르다. 현재 미국 동부권에서는 한국 실험미술을 비롯한 수많은 추상 전시가 열리고 있지만 박대성의 작품은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호평을 얻고 있다.

작가는 2022년과 2023년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LACMA)과 다트머스대 후드미술관, 뉴욕주립대 스토니브룩 찰스왕센터, 메리 워싱턴 대학교 등 해외 유수의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최초의 한국 작가 초대전이기도 했던 LACMA 전시는 본래 일정보다 약 두 달간 연장될 정도로 좋은 반응을 얻으며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존 스톰버그(John Stomberg) 후드 미술관 관장은 “박대성의 작업은 한국 미술의 과거와 동시대 미학을 융합한다”면서 “박대성의 필법과 소재, 그리고 재료는 전통적이나, 동시에 그의 색채 사용, 작품의 크기와 구성은 현대적”이라고 평가했다. 박대성의 작품이 이처럼 콧대 높은 미국 미술계에서 쾌거를 이룬 가장 큰 이유는 작품의 압도적인 크기와 그 안에 담긴 ‘기술’이다.

박대성, 금강설경, Mt. Geumgang - Winter, 2019, Ink on paper, 199 x 1001 cm. 사진 제공=가나아트




박대성, 인왕산, 2022, Ink on paper, 125.5 x 100.5cm. 사진제공=가나아트


옛 법을 살려 새로운 것을 일으킨다는 의미의 ‘법고창신(法古創新)’ 정신도 그의 작품을 빛나게 한다. 서구의 추상화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기보다 의도적으로 생략하거나 변형해 자유롭게 재구성한다. 그는 자신의 작품에 추상화의 방식을 일부 적용해 과감하게 빼야 할 것을 빼고 변형해야 할 것을 변형했다.

경주를 대표하는 유적들을 마치 피카소의 작품처럼 어긋난 비율로 그려낸 ‘신라몽유도’에 서는 이러한 ‘수묵화의 현대화’ 방식이 거침없이 발휘된다. 미술 평론가인 윤범모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은 “그의 시각적 진화는 전통미술과 현대미술 등 양분화를 뛰어 넘는다”며 이같은 실험 정신을 높게 평가하기도 했다.

박대성, 신라몽유도, 2022, Ink on paper, 197.4 x 295.3cm. 사진제공=가나아트


작가는 정규 미술 교육을 받지 않고 스스로 스스로 한국화를 터득한 후 세계화의 길에 나섰다. 그러다 보니 한국화를 푸대접하는 국내의 현실이 아쉽기만 하다. 그는 “한국 수묵화를 저평가하는 곳은 한국 밖에 없다, 대학에서도 한국화 전공이 사라지고 있고, 교과서에도 동양화와 수묵화를 다루지 않는다”며 “수묵화는 문화 유산인 만큼 국가적으로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단지 박대성의 작품을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하버드대학교 한국학센터와 다트머스대학교 후드미술관, 뉴욕주립대학교 스토니브룩 찰스왕센터 및 메리워싱턴대학교는 전시 개최와 함께 심포지엄과 강연 프로그램을 마련해 한국화를 비롯한 한국 현대미술에 대한 국제적 학술 논의의 물꼬를 텄다. 미국 대학 4곳은 전시와 연계해 도록을 발간했다. 평론집 형식의 이 도록은 한국화 작가를 미술사적으로 비교 분석한 최초의 영문 연구서로, 향후 있을 박대성의 해외 활동과 한국화 연구에 좋은 토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전시는 가나아트센터에서 3월 24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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