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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비 때마다 키다리 아저씨…물방울 모여 강물 이뤄"

◆창립 19주년 푸르메재단 백경학 상임 대표

치과로 출발, 국내 첫 어린이 재활 병원 설립

재활에서 자활로 확장…장애 청년 일자리 창출

"20주년 계기로 도시형 스마트팜 설립 추진"

안전하고 쾌적…발달 장애인 미래 일자리 모델

"땅만 있으면 건립 비용 대겠다는 기업 있어"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대표는 “재활병원은 기부의 기적이 만든 결과”라며 “장애인 자립과 자활을 위한 일자리 창출은 다음 도전 과제”라고 말했다. 이호재 기자




“물방울이 모여 강물을 이룹니다. 고비 때마다 키다리 아저씨의 기적이 일어났죠. 앞으로도 이런 기적은 계속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국내 1호 어린이 재활 전문 병원과 장애 청년 스마트팜(자동화 농장) 등을 운영하는 백경학(59) 푸르메재단 상임 대표를 다음 달 창립 19주년(3월 9일)을 앞두고 서울 종로구 신교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푸른 산’을 뜻하는 푸르메재단은 장애인의 재활 및 자립을 돕는 비영리재단으로 2005년 그가 주도해서 설립했다. 재단은 지난해 말 이사장 체제에서 상임 대표 체제로 전환해 창립 이후 가장 큰 변화를 맞았다. 백 대표는 “그동안 이사장을 맡았던 김성수 대한성공회 주교와 강지원 변호사의 옷자락만 붙잡고 쫓아왔는데 이제는 전면에 나서 재단을 이끌게 돼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그가 재활 병원 설립을 목표로 재단을 만든 것은 1998년 영국에서 겪은 아내의 교통사고 때문이다. 귀국한 뒤 재활 병원 입원까지 두세 달 기다려야 한다는 말에 그의 인생은 180도로 달라졌다. 백 대표의 자서전적 에세이 ‘효자동 구텐백(2010년)’에는 이렇게 기술돼 있다. “입원한 아내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우리가 영국과 독일의 재활 병원을 경험했잖아? 나중에 우리가 경험한 대로 환자의 부름에 늘 응답하고 환자를 인격체로 대하는 작고 아름다운 병원을 하나 만들면 어떨까? 아내가 화답했다. 그래요. 환자 중심의 병원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어요.”

처음엔 2007년 장애인 전문 치과부터 시작했다. “보통 사람도 치과 치료 받기를 힘들어하는데 장애 아동은 오죽하겠어요. 서울 시내 30여 곳의 치과를 방문했더니 장애인은 치료하지 않는다는 반응 일색이었습니다. 아파도 치과를 가지 못하는 현실이 가슴 아팠습니다. ”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 대표가 물심양면으로 성원을 보내준 기부자의 액자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호재 기자


그 뒤에 만든 어린이 재활 병원은 ‘기부의 기적’이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9년 건립 모금에 나선 후 1만여 명의 시민과 500여 곳의 기업·단체 등의 기부 행렬이 이어졌다. 2016년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서 문을 연 병원은 하루 500명의 장애 아동을 돌본다. 백 상임 대표는 “선한 기부가 또 다른 기적을 낳았다”고 회상했다. 초기 모금에 어려움을 겪던 와중에 장애인 벤처기업인이 주식을 담보로 대출 받아 10억 원을 내놓았고 이에 감명을 받은 고(故) 김정주 넥슨 대표가 200억 원을 선뜻 내놓았다.

발달장애 청년의 일터인 여주 스마트팜(푸르메소셜팜)도 키다리 아저씨 기적의 연속이었다. 농장 설립 캠페인을 시작하자 발달장애 아들을 둔 이상훈·장춘순 부부가 경기도 여주의 땅 3800평을 기부했다. 인근의 SK하이닉스는 건립 자금 상당액을 기부했을 뿐만 아니라 이곳에서 생산한 토마토를 전량 구매해주고 있다. 장애인 표준 사업장으로 지정된 이곳은 발달장애 청년 55명이 근무하고 있다. 4시간만 일하고 2시간가량 취미 활동을 하며 경제 교육 등도 받는다.



“흙을 만지고 열매를 따는 농업은 마음을 치유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해외에서는 ‘케어팜(치유 농업)’이라고 해서 사회복지로 정착하는 추세입니다.”

그는 “당초 목표한 재활 병원을 마련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했다. 백 대표가 말한 ‘갈 길’은 재활을 넘어 자립에 있다. 그는 “장애 아이를 둔 부모들의 최대 소원은 아이가 부모 도움 없이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것”이라며 “자립의 핵심은 일자리인데 발달장애 청년에게 적합한 일이 농사”라고 말했다. 노지에서 일하기는 어렵지만 온도와 습도 등 농작물 재배 환경을 자동으로 조절해주는 스마트팜은 가능하다는 것이다.

백 대표는 “여주 스마트팜은 교통 여건이 불편한 탓에 확장성에 한계가 있다”며 “직원 대부분이 여주와 그 주변 장애 청년”이라고 설명했다. 성남과 용인·고양·김포 같은 곳에 ‘도시형 스마트팜’이 조성되면 버스와 지하철로 접근이 가능해 혼자 출퇴근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립 생활로 이어질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백 대표는 “땅만 있으면 설립 자금을 대겠다는 기업이 몇 군데 있다”며 “내년 창립 20주년을 계기로 도시형 스마트팜 설립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생각”이라고 전했다.

가보지 않은 길을 연 재단의 선한 영향력은 이미 빛을 발하고 있다. 2016년 재활 병원을 설립하자 이를 모델로 삼은 공공 부문의 아동 재활 병원이 지난해 대전에 처음으로 설립됐다. 백 대표는 “도시형 스마트팜은 안전하고 쾌적해 장애 청년의 미래 일자리가 될 것”이라며 “재활 병원이 확산되는 것처럼 지속 가능하고 확장성 있는 장애인 일터의 모델을 만드는 게 소망”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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