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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에어' 작가는 사실 장녀 컴플렉스…"우리는 돈을 벌어야 해" [커튼콜 인문학]

■뮤지컬 브론테 넘버로 풀어보는 영국의 여류작가 3인 이야기

가문의 장녀로 산 현실주의자 샬럿 브론테 '제인에어'

'글쓰기에 미친 인간' 에밀리 브론테 '폭풍의 언덕'

끝내지 못한 원고로 고뇌한 앤 브론테, '아그네스 그레이'



[커튼콜 인문학]은 뮤지컬과 연극 무대 위에 오른 작품의 배경지식을 스토리 형식으로 소개합니다.

*주의사항: [커튼콜 인문학]은 스포를 포함하고 있으니 주의하세요.



“나는 책을 아주 많이 팔고 싶어! 우리가 우리의 힘으로 서 있으려면 돈을 벌 줄 알아야 해”

K-장녀, 아니 E-장녀의 목소리는 단호했습니다. 심오한 예술의 세계를 뽐내는 대신 좀 더 밝고 진취적인 결말을 요구했죠. 누구에게? 자신의 동생 에밀리에게요.

“왜 이렇게 초조한 거야?”

에밀리 역시 단호했습니다. 돈 얘기만 하며 글쓰기를 자꾸 자본과 연결하는 언니가 답답했죠. 폭풍처럼 몰아지는 자신의 영감을 쉴 새 없이 써내려가기만 해도 시간과 체력이 부족한데 말입니다. 막내 앤은 한 발 뒤로 물러나 있습니다. 언니들의 싸움을 바라보며 앤은 어쩌면 조금 위축 됐는지도 모릅니다. 놀라운 감각을 갖고 있는 큰언니 샬럿과 한 번 글쓰기를 시작하면 마치 신내림이라도 받은 듯 온 영혼을 다 해 글을 쓰는 작은 언니 에밀리… 언니들은 분명 글쓰기에 미친 인간들이었고, 자신은 아니었습니다. 밝은 얼굴로 ‘우리 잘 해보자’며 언니들을 화해 시키고 나면 공허함이 밀려왔겠죠. 분명 자신도 작가인데… 막내 앤의 자존감은 그렇게 점점 내려갑니다.

뮤지컬 ‘브론테’의 한 장면. 사진제공=네버엔딩스토리




장녀병의 서막…장녀가 아닌데 장녀가 되었다


개막만 하면 ‘전석 매진’ 기록을 세우고 있는 창작뮤지컬 ‘브론테’ 이야기입니다. 뮤지컬의 배경은 여자가 글 쓰는 일 따위가 허락되지 않은 빅토리아 시대입니다. 빅토리아 시대는 영국에서 산업혁명 직후 빅토리아 여왕이 재위하던 1819년부터 1901년까지의 시간을 일컫는데요. 당시의 영국을 세계사는 ‘대영제국’이라고 부릅니다. 어마어마한 해군력으로 영국이 세계 곳곳에 식민지를 건설하고, 산업도 비약적으로 발전한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 10대 필독서로 여겨지는 올리버트위스트, 이상한나라의앨리스 등 주옥 같은 문학 작품들도 모두 이 시기에 탄생합니다.

샬럿 브론테. 사진=네이버 지식백과


뮤지컬은 실화를 기반으로 합니다. 실제로 브론테 가문의 세 자매는 당시 음울하고 외로운 요크셔 황야에서 가난한 목사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이렇게 음울한 배경과 달리 세 자매는 매일 활기찬 생활을 합니다. 그들은 ‘글쓰기에 미친 인간들’이었거든요. 힘들고 슬픈 일이 생기면 세 자매는 상상 속으로 도망쳤어요. 서로의 상상을 응원하고 상상에 살을 붙이며 세 자매는 그렇게 가난의 시대를 견뎌냅니다.

가난을 상상으로 극복할 수 있었던 건 장녀 샬럿 덕분입니다. 사실 샬럿은 장녀가 아닙니다.

“망할 기숙학교 더 망할 폐병으로 언니들이 먼저 떠난 뒤 남겨진 브론테 중 첫째가 된 나” <뮤지컬 브론테, 우리들 만의 놀이>

언니들이 죽어버린 탓에 강제로 장녀가 된 여성이죠. 어머니도 일찍 돌아가신 탓에 일찍이 두 동생의 ‘엄마 역할’을 할 수밖에 없었죠. ‘장녀병’이 시작된 겁니다. 당시 여자가 먹고 살 길은 결혼 혹은 가정교사 뿐이었지만 샬럿을 글쓰기만이 삶의 모든 것이라 여기는 두 동생을 지지해 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기꺼이 ‘비즈니스’를 시작합니다. 자매의 이름을 남자처럼 바꾸고 출판을 기획하죠. 자신도 글을 쓰면서 동생들의 집필을 독려하고, 출간을 의뢰한 후 돈을 벌 궁리를 하는 등 이 모든 일이 샬럿의 일이었습니다.

동생들, 너희는 꿈을 꾸렴…나는 돈을 벌게!


에밀리 브론테, 사진=네이버 지식백과


둘째 동생 에밀리 브론테는 그런 샬럿과 잘 맞지 않았습니다. 에밀리는 뮤지컬에서처럼 실제로도 자매들 중 가장 키가 크고 어두운 푸른 빛의 눈동자를 가진 여성이었습니다. 에밀리는 원래 몰래 글을 썼지만 언니 샬럿이 그 글을 보고 에밀리를 작가로 데뷔 시키기 위해 노력합니다. 샬럿은 자매들의 글을 읽고 평가하고 출간 가능성이 있는지 검토해야 하는 책임이 있었습니다.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하루라도 빨리 동생들을 구출해야 했으니까요. 자매들은 매일 밤 자신이 쓴 글의 내용을 서로 읽어주며 평가를 했는데요. 샬럿은 에밀리의 작품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특히 에밀리가 쓰고 있던 ‘폭풍의 언덕(네, 그 유명한 폭풍의 언덕이 맞습니다.)’에 대해서는 어마어마한 혹평을 하기도 했습니다.

샬럿: "죽어서 뼈가 된 시체를 끌어안고 우는 남자라니. 대체 어떤 낙인이 찍히고 싶은 거야"
브론테: “넌 항상 자유를 외치지만 너를 움직이는 건 세상의 기준”

<뮤지컬 브론테, 찢겨진 페이지처럼>

뮤지컬 브론테. 사진=네버엔딩스토리


뮤지컬에서는 속에서 자매들이 결국 갈라서는 것처럼 나옵니다. 그 이후 샬럿은 영국 근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수작, ‘제인에어’를, 에밀리는 ‘폭풍의 언덕’을 집필합니다. 제인에어는 출간 당시부터 큰 인기를 끌었어요. 샬럿이 쓴 ‘제인에어’는 요즘으로 치자면 로맨스 웹소설 느낌입니다. 에밀리의 말처럼 세상의 기준에 따라 움직인 작품이죠. 반면 폭풍의 언덕은 당대에 많은 비난을 받았습니다. 보수적인 빅토리아 시대에 지나치게 앞서나간 소설이라는 평가였죠. (물론 지금은 제인에어보다 폭풍의언덕을 문학적으로 더 고평가하는 분위기입니다. (저는 제인에어가 더 좋아요.))

그렇다면 동생들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였던 샬럿은 왜 에밀리의 작품을 혹평했을까요? 샬럿은 대중이 좋아할 만한,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읽을 만한 소설이야말로 가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래야만 동생들을 먹여살릴 수 있었죠. 동생들이 그렇게도 좋아하는 ‘글쓰기’를 통해서요. 뮤지컬 브론테는 동생들의 꿈을 지켜주면서 한편으로는 경제적으로 자립하려 하는 샬럿의 고뇌가 넘버 곳곳에 묻어납니다.

“나는 내가 쓴 글로 돈을 벌고 싶어!우리가 쓴 소중한 원고를 장작으로 태우긴 싫잖아! 이제 솔직해지자 에밀리!”

비극으로 끝난 세 자매의 삶, 위대한 명작이 남았다


뮤지컬 ‘브론테’는 비극으로 끝을 맺습니다. 결국 샬럿은 동생들이 모두 결핵으로 요절하고 홀로 남겨지는데요. 샬럿은 쓸쓸하게 동생들의 유품을 정리하며 슬픔에 빠집니다.

에밀리: 커러벨의 제인 에어.

앤: 반응이 아주 뜨거워.

에밀리: 샬럿 브론테, 결국 해냈네.

사실 뮤지컬은 스토리라인을 단순하게 만드느라 세 자매의 복잡한 감정과 갈등이 많이 생략했습니다. 그래서 자매들이 각자의 역작을 내고 비극으로 쓸쓸하게 삶을 마감하는 장면이 지나치게 서둘러 마무리되는 듯한 느낌입니다. 샬럿과 헤어진 후 에밀리는 점점 병들어갑니다. 그리고 이후 샬럿은 제인에어로 승승장구하죠. 동생들이 샬럿을 그리워하는 건지, 혹은 부러워하는 건지 알 수 없었습니다.

또 막내 앤을 그저 언니들 사이에서 갈등을 중재하는 천진난만한 소녀로 그린 부분도 아쉬웠습니다. 재능 있는 언니들 때문에 얼마나 많은 열등감을 느꼈을지, 완성하지 못한 소설을 들고 고통스러워하는 앤이 가여웠고, 사실 뮤지컬만 봐서는 앤이 자살을 한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앤 브론테 역시 ‘아그네스 그레이’라는 명작을 남긴 작가인데요.)

소설 제인에어 표지. 사진=위키백과


이후 샬럿 브론테도 38세에 사망합니다.(세 자매가 모두 너무 일찍 죽었습니다.) 정확한 사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빈부격차가 극심했던 빅토리아 시대에 다른 가난한 가족이 그랬듯 브론테 가문의 사람들도 병약했다고 해요. 죽기 전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동생들을 그리워하고, 미안해했을까요. 많은 장녀들이 그랬듯, 책임감을 버리지 못하고 괴로워했을 겁니다. 뮤지컬 속 죽어가는 샬럿을 보며 마음이 아팠어요. 혼자만 삶을 유지하는 것도 괴로웠을 겁니다. 그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열심히 살았을 뿐인데 세상의 모든 비극이 자신의 것인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을까요. 만약 샬럿이 옆에 있다면 꼭 이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비난이 쏟아져도 멈추지마. 오직 너는 너를 믿어야만 해.(뮤지컬 브론테 중, 에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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